생성은 공짜가 됐는데 왜 회사는 더 느려졌는가 - AI 시대, 가치는 "만들기"에서 "거르고·쌓고·엮기"로 옮겨갔다
AI를 도입한 팀이라면 한 번쯤 이 의문에 부딪힌다. "분명 다들 빨라졌다는데, 왜 회사 전체 지표는 그대로지?" 개발자는 코드를 몇 배 빨리 뽑고, 기획자는 문서를 순식간에 만든다. 그런데 정작 제품이 더 빨리 나오지도, 비용이 눈에 띄게 줄지도 않는다. 이 글은 그 역설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AI가 "만드는 일"을 공짜로 만든 시대에 가치가 정확히 어디로 옮겨갔는지를 추적한다.
1. 먼저 벌어진 일 - “더 많이 만드는데 더 느려졌다”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숫자가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다.
개발자 1만 명 이상을 분석한 Faros AI의 연구를 보면, AI 도구를 많이 쓰는 팀은 과제를 21% 더 처리하고 PR(코드 변경 요청)을 98% 더 많이 병합했다. 생성량만 보면 거의 두 배다. 그런데 같은 기간 PR을 사람이 검토하는 시간은 오히려 91% 늘었다. 만드는 속도는 두 배가 됐는데, 그것을 확인하고 통과시키는 길목이 그만큼 막혀버린 것이다.
더 결정적인 건 산출물의 품질이다. 구글이 매년 내는 DORA 보고서는 AI 도입이 25% 늘 때 배포 안정성이 7.2% 떨어지고 처리량도 1.5% 감소했다고 측정했다. 개발자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66%가 “거의 맞는데 완전히는 맞지 않는 AI 결과물”을 가장 큰 불만으로 꼽았고, 절반 가까이는 “AI가 짠 코드를 디버깅하는 게 직접 짜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린다”고 답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개인의 산출량은 분명히 늘었는데, 조직 전체의 전달 속도는 제자리거나 오히려 느려졌다. 개인 생산성과 조직 생산성 사이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2. 핵심 원리 - 생성이 10배 쉬워지면, 검토 부담도 10배가 된다
역설의 정체는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생성이 10배 쉬워지면, 그 결과를 검토하는 부담도 10배가 된다.
생성이 쉬워졌다고 해서 “그럴듯한 것”이 곧바로 “운영 환경에서 실제로 돌아가는 것”이 되는 건 아니다. 둘은 전혀 다른 문제다. 누구나 그럴듯한 화면과 코드는 뽑아낼 수 있지만, 검증 없이 그대로 도입하면 당장은 빨라 보여도 장애와 사고로 이어지고 기술부채가 쌓인다. 게다가 완성된 듯 보이는 산출물일수록 어디가 비어 있는지가 오히려 가려진다. 깔끔하게 정렬되고 주석까지 달린 코드는 사람이 짠 것보다 더 신뢰받는 권위 편향을 얻어, “보기엔 괜찮은데(Looks good to me)” 하며 오히려 덜 깐깐하게 검토된다.
실제 데이터가 이 직관을 뒷받침한다. 오픈소스 PR을 분석한 결과 AI가 만든 코드는 평균 10.83개의 결함을 담아, 사람이 짠 코드(6.45개)보다 약 1.7배 많았고, 그중에서도 심각도가 높은 결함이 더 많았다. 그러니 검토자는 같은 한 건을 보더라도 더 오래, 더 의심하며 봐야 한다. 한 연구에서 시니어 엔지니어가 AI가 제안한 코드를 검토하는 데 평균 4.3분, 사람이 짠 코드에는 1.2분을 썼다.
여기서 균열의 진짜 원인이 드러난다. 내 시간은 줄어도, 그 결과물을 받아드는 동료와 리뷰어의 시간은 늘어난다. 생성이 10배 쉬워지면 그것을 일일이 뜯어 검증해야 하는 부담도 10배가 되고, 그 부담은 만든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에게 전가된다. 특히 이 전가는 부서 단위로 일어난다 - 한 부서가 AI로 산출물을 쏟아내면, 그것을 검증해야 하는 다른 부서(AI를 쓰기 어렵거나 검토를 떠안은 쪽)에 부담이 통째로 쌓인다. 개인의 장부에는 이득으로 잡히지만, 조직의 장부에는 비용으로 잡히는 것이다. 합산하면 오히려 느려지는 이유다. (물론 GPT 5.5와 Opus 4.5부터 이러한 현상은 현저히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생성은 빨라졌지만, 병목은 검증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검증은 사람의 일이다.
3. 그래서 “생성”은 해자(방어막)가 아니다
이 역설이 가리키는 결론은 분명하다. 생성하는 능력 그 자체는 더 이상 경쟁력의 원천(해자)이 되지 못한다.
역사가 같은 패턴을 이미 보여줬다. 1990년대에도 처음엔 “홈페이지 만들기”가 하나의 시장이었다. 클릭 몇 번으로 홈페이지를 완성해 준다던 웹에디터는 한때 혁신이었지만, 곧 모든 도구가 할 수 있는 평범한 기능이 됐다. 그리고 “홈페이지 만들기”라는 범용 시장은 오래가지 않고 용도별로 쪼개졌다 - 쇼핑몰은 카페24로, 콘텐츠는 블로그로, 커뮤니티는 카페로, 남은 시장은 워드프레스로. “원스톱으로 다 만들어 줍니다”가 이긴 게 아니라, 각 용도에서 가장 깊이 파고든 전문 플랫폼이 이겼다.
AI 웹빌더도 같은 길을 갈 것이다. “프롬프트 한 줄로 사이트를 만들어 준다”는 범용 카테고리는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남들이 금세 따라오기 때문이다. 생성 능력은 빠르게 평준화된다.
그렇다면 해자는 어디서 나오는가. 두 군데다.
- 내부 해자 - 쏟아지는 생성물을 운영 가능한 수준으로 걸러내고, 무엇을 받아들일지 규율하는 사람과 조직력. 2절에서 본 “검증의 병목”을 거꾸로 뒤집으면, 그 검증을 가장 잘 해내는 조직이 곧 해자를 가진 조직이다.
- 외부 해자 - 고객이 쓸수록 데이터·거래 이력·워크플로우가 쌓여 떠나기 어려워지는 구조. 결제·물류·앱 생태계가 엮인 커머스 플랫폼이 강한 이유(네이버쇼핑,쿠팡 등), 지식이 축적되는 협업 도구(깃허브,피그마,노션 등)가 강한 이유가 여기 있다. 생성만 해주는 도구는 더 나은 생성 도구가 나오면 즉시 교체당하지만, 쌓이는 구조를 가진 쪽은 살아남는다.
이제 이 두 해자를 하나씩 풀어 보자. 내부 해자는 “사람의 가치가 어디로 옮겨갔는가”(4·5절)의 문제이고, 외부 해자는 “조직이 무엇을 쌓아야 하는가”(6·7절)의 문제다.
4. 개발자의 가치가 이동한다 - “코더”에서 “검증자”로
AI의 코드 생성 완성도가 90~95%에 이르는 시대다. 하지만 나머지 5~10%가 제품의 품질·보안·안정성을 결정한다. AI가 잘못된 코드를 내놓거나 기술부채를 양산하려 할 때, 그것을 알아채고 통제하며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 - 그 사람의 가치는 오히려 올라간다.
핵심은 이것이다. AI가 90%를 해도, 그 90%가 우리 업무에 맞는지 판단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다. 개발자의 가치는 더 이상 “코드를 빠르고 정확하게 타이핑하는 능력”이 아니라 “이 코드가 우리 도메인에 맞는지 검증하고 책임지는 능력”으로 옮겨간다. 범용 AI에 “이거 분석해 줘”라고 물으면 일반적인 답이 나오지만, 특정 산업의 수년치 도메인 지식을 녹여 만든 결과물은 단순한 프롬프트로 재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단순한 프로그램은 AI에 복제되어 죽고, 도메인이 깊은 제품은 산다.
그런데 이 “검증하는 힘”은 개인의 자질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조직 구조 자체가 검증을 돕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1967년 컴퓨터 과학자 멜빈 콘웨이가 남긴 콘웨이의 법칙이 그 이유를 설명한다.
“시스템을 설계하는 조직은, 그 조직의 의사소통 구조를 복제한 설계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기획팀·백엔드팀·프론트팀으로 직군을 나눠 두면, 하나의 기능을 이해하기 위한 정보가 네 곳(기획서·API 코드·화면 코드·DB 스키마)에 흩어진다. AI에게 맥락을 주려 해도, 사람이 그 흩어진 조각을 일일이 모아야 한다. AI의 한정된 컨텍스트(한 번에 참조하는 정보량) 상당 부분이 “다른 팀 코드를 찾아 읽는 데” 낭비된다. 반대로 같은 도메인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한 팀으로 묶으면, 그 모듈에 필요한 맥락이 팀 안에 응집되어 AI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직군 분리는 컨텍스트를 분산시키고, 도메인 통합은 컨텍스트를 응집시킨다. AI 시대의 조직 설계가 “직군별 분리”에서 “도메인별 통합”으로 가야 하는 이유다.
도구가 아무리 강력해져도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다. 책임이다. AI가 만든 버그, AI가 놓친 예외, AI가 쌓은 기술부채 - 그 모든 것의 책임은 그 코드를 승인하고 배포한 사람에게 있다. “AI가 그렇게 했는데요”는 답이 될 수 없다. 계산기로 답을 내고 “계산기가 풀었는데요”라고 하지 않듯, AI로 결과를 냈어도 그건 내가 한 것이고 내가 책임지는 것이다.
5. 그렇다면 가치는 어디서 나오는가 - “토큰 경제학” (토크노믹스)
검증과 책임이 사람의 일로 남았다면, 새로운 부가가치는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여기서 경제학의 오래된 틀을 빌리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기업의 수익성은 두 축으로 결정됐다.
- 원가관리 - 원재료·노동·설비 같은 투입 비용을 통제하는 방어적 활동. “얼마나 새지 않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단가 협상·공정 개선이 수단이고, 그 상한은 구조적으로 막혀 있다(원재료를 공짜로 살 수는 없으니까).
- 가격발견 - 고객이 느끼는 가치를 읽어 가격을 설계하는 공격적 활동. 원가에 마진을 얹는 게 아니라, 고객의 지불의사에서 거꾸로 가격을 발견하는 것. 브랜드·차별화·네트워크 효과가 여기서 작동한다.
AI 시대에는 핵심 자원이 자본·노동에서 토큰(AI가 처리하는 언어의 단위, 곧 AI 사용 비용)으로 바뀌면서, 이 두 축이 그대로 평행 이동한다.
- 토큰 효율관리 - 같은 일을 더 적은·더 싼 토큰으로 해내는 설계 역량. 반복 요청을 캐시에 올리고, 작업 난이도에 따라 모델 등급을 나눠 쓰고(단순 분류는 경량 모델, 복잡한 추론은 최고 모델), 불필요한 맥락을 덜어내 입력을 압축한다. 원가관리가 “구매팀의 협상”이었다면, 토큰 효율관리는 “엔지니어의 설계”다.
- 토큰 가치발견 - 같은 토큰 투입으로 더 높은 산출 가치를 뽑아내는 설계 역량. 같은 1달러어치 토큰으로 누군가는 인턴 수준의 결과를, 누군가는 10년차 전문가 수준의 결과를 뽑는다. 그 편차는 전적으로 조직의 설계 역량에 달려 있다.
| 축 | 일반 경제학 | 토큰 경제학 |
|---|---|---|
| 통합 개념 | 수익성 관리 | 토큰 생산성 관리 |
| 방어적 축 (투입 통제) | 원가관리 | 토큰 효율관리 |
| 공격적 축 (산출 발견) | 가격발견 | 토큰 가치발견 |
| 비용 절감 주체 | 구매팀 | 엔지니어 |
이 표가 핵심이다. 비용을 깎는 일도, 가치를 발견하는 일도 이제 기술 조직의 설계 문제가 된 것이다. 3절에서 말한 “내부 해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 검증할 줄 알고, 토큰을 가치로 바꿀 줄 아는 설계 역량.
6. 개인이 빨라지는 것과 회사가 빨라지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 1절의 역설로 되돌아온다. 개인이 AI를 잘 쓰는 것과, 회사가 그 덕에 성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많은 회사가 AI 시대에 대응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개인에게 AI 구독을 풀어주고 “각자 알아서 생산성을 내라”고 한 뒤, 개인 평가에 “AI 활용도”를 얹는다. 결과는 산발적인 성공과 고만고만한 개선, 그리고 전사 확산의 부재다. 도구를 지급한 것을 지원이라 착각한 대가다.
이 문제를 2×2 지도로 보면 분명해진다. 가로축은 범위(개인 → 회사), 세로축은 깊이(도구를 장착하는 단계 → 가치사슬을 발견하는 단계)다.
①과 ②는 “도구를 장착한” 단계다. 개인이 AI를 잘 쓰면 본인 생산성은 몇 배가 되지만 그 편차는 각자의 손끝에서 끝나고, 회사의 매출·비용에는 직접 닿지 않는다. 전사에 도구를 깔면 “우리도 AI 회사”라는 자기증명은 되지만, 라이선스 수와 매출 사이에 연결선이 없다. 많은 대기업이 ②에 머물다 재무 지표에서 답을 내지 못한다.
진짜 고비는 ②에서 ③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도구를 깔았다고 가치사슬이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 자기 업무에서 “이렇게 반복하면 투입 대비 산출이 맞는다”는 레시피를 발견하는 순간에만 선이 넘어간다. 그 순간부터 비로소 회사의 매출·비용과 직접 연결되는 선이 생긴다 - 반복 업무가 사람 손에서 파이프라인으로 넘어가는 첫 지점이기 때문이다.
판별식은 단순하다. “AI가 도구 안에서만 도는가, 아니면 운영 흐름에 묶여 자동으로 호출되는가.”
- “편집기를 켜서 AI로 작업한다” → 개인 착용. 사람이 도구를 부른다.
- “오류 알림이 울리면 AI가 1차 분석을 붙여 담당자에게 던진다” → 자동사냥. 흐름이 사람을 부른다.
후자에서만 “토큰 한 단위가 회사 비용·매출을 직접 움직인다”는 라인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자동화를 아무 흐름에나 걸어선 안 된다. 조직의 병목, 곧 Critical Path에 걸어야 한다. 버그·장애·고객 문의(CS)처럼 사람 손을 끝없이 잡아먹는 반복 영역이 바로 그곳이다. 이런 영역을 자동화로 덜어내지 못하면, 정작 사람이 집중해서 고민해야 할 일 - 무엇을 만들지 정하고, 그 결과를 검증하는 일 - 에 쓸 시간 자체가 남지 않는다. 2절에서 본 역설(생성이 쉬워질수록 검증할 거리는 늘어난다)을 떠올리면, 사람의 시간을 어디서 회수해 어디에 다시 투입하느냐가 곧 조직의 속도를 가른다. AI를 가장 많이 쓰는 조직이 아니라, 가장 옳은 길목에 거는 조직이 빨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가 관리해야 할 지표는 “개인이 AI를 얼마나 쓰는가”가 아니라 “워크플로우 수준의 가치사슬을 얼마나 많이 발견하고 체계화했는가”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흐름에 박힌 워크플로우는 다음 주기에도, 다음 고객에게도 그대로 이식된다 - 이것이 3절에서 말한 “쌓이는 구조”의 실체다.
7. 결국 가치는 “만들기”에서 “거르고·쌓고·엮기”로 옮겨갔다
이제 흩어진 조각이 하나로 모인다. AI가 “만드는 일”을 거의 공짜로 만들자, 가치는 만드는 데서 빠져나와 세 방향으로 옮겨갔다.
- 거르기(검증) - 쏟아지는 생성물 중 무엇이 운영 가능한지 가려내고 책임지는 일. 병목이 생성에서 검증으로 옮겨간 만큼(2절), 가장 잘 거르는 조직이 가장 빠른 조직이 된다(4절).
- 쌓기(축적) - 고객 데이터·거래 이력·워크플로우가 쓸수록 쌓여 떠나기 어려워지는 구조를 만드는 일. 생성은 복제돼도 축적은 복제되지 않는다(3·6절).
- 엮기(연계) - 회사 대 회사의 계약, 법으로 정해진 의무, 외부 기관과의 데이터 연계처럼 AI가 혼자서는 넘볼 수 없는 제도권 영역과 맞물리는 일. 여기서 만든 흐름은 기능 하나로 복제되지 않는다.
이 셋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전부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거르고·쌓고·엮는 구조”라는 점이다. AI가 생성을 평준화할수록, 차별화는 생성 바깥의 이 구조에서 나온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비유. 19세기에 철도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철도가 운송업을 끝장낼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정작 운송업은 사라지기는커녕, 철도라는 새 기술 위에서 마차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정교한 산업으로 커졌다. 사라진 것은 운송업이 아니라, 끝까지 마차를 고집한 운송업자들이었다.
AI도 마찬가지다. AI가 소프트웨어를 죽이는 게 아니다. AI는 소프트웨어를 더 거대하게, 더 정교하게 만들고 있다. 한 사람이 AI로 과거 열 명분의 코드를 만든다면, 그건 개발자가 필요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같은 인원으로 열 배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기술의 등장이 아니라, 그 기술에 맞게 조직을 다시 설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생성이 공짜가 된 시대에 죽는 것은 “만들 줄 모르는 회사”가 아니라, “만들 줄만 아는 회사”다. 살아남는 쪽은 잘 거르고, 잘 쌓고, 잘 엮는 회사다.
마차 시대의 조직 구조로 철도를 운영할 수 없었듯, AI 이전의 방식으로 AI 시대의 제품을 만들 수는 없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AI를 얼마나 쓰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거르고, 무엇을 쌓고, 무엇과 엮이고 있는가”다.
8. 그런데 그 “공짜”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 전체가 딛고 선 전제 - “생성이 공짜가 됐다” - 를 한 번 의심해 보자. 사실 그 공짜는 진짜 공짜가 아니다.
오늘 우리가 쓰는 토큰 값은 그것을 만드는 데 드는 원가의 한참 아래, 원가의 1/20 수준에 풀려 있다. 그 차액은 누가 대고 있는가. 저변을 깔려는 프론티어 랩과, 그 뒤에 줄 선 VC·빅테크 자본이다. 더 많은 사람이 AI에 익숙해지고 습관·데이터가 쌓일수록 나중에 값을 매길 시장이 커지므로, 지금은 일부러 밑지고 경험을 뿌리는 것이다 - 한시적인 ‘보조금 잔치’인 셈이다.
그리고 이 잔치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이유는 다른 글에서 따로 짚었다. 요지만 옮기면 이렇다. 개인은 그저 보조금의 대상이라 누리면 되지만, 기업은 “AI로 정말 생산성이 올랐는가”를 증명해야 한다. 기업이 끝내 증명하지 못하면 적자를 메우던 유일한 흑자원(기업 API)이 무너져 모델 전체가 붕괴하고, 반대로 증명해내는 순간 그 가치엔 제값이 붙어 보조금 축제가 끝난다. 어느 쪽이든 지금의 가격은 한시적이고, 토큰 값은 결국 제 원가를 향해 오른다.
값이 오르는 순간, 5절의 토큰 효율관리·토큰 가치발견은 “잘하면 좋은 일”에서 “못 하면 죽는 일”로 성격이 바뀐다. 같은 결과를 더 싼 토큰으로 뽑고, 같은 토큰으로 더 높은 가치를 뽑는 설계 역량이, 마진을 가르는 게 아니라 생존을 가르게 된다. 그리고 그때 살아남는 건, 생성이 싼 동안 그 바깥에 거르고·쌓고·엮는 구조를 미리 세워둔 회사다. 데이터와 워크플로우를 쌓아 둔 쪽은 토큰 값이 올라도 그 축적이 비용을 상쇄하지만, 생성만 싸게 받아 쓰던 쪽은 가격이 정상화되는 순간 원가 구조가 통째로 무너진다.
그러니 결론은 한 번 더 뒤집힌다. 생성이 공짜인 지금은, 사실 공짜가 끝나기 전에 해자를 파두라고 주어진 유예 기간이다.
생성이 공짜라서 거르고·쌓고·엮어야 하는 게 아니다. 머지않아 생성마저 다시 비싸질 것이기에, 그 값이 오르기 전에 거르고·쌓고·엮어 두어야 한다.
9. 그리고 우리는 이미 강을 건넜다 - 값이 올라도 못 떠나는 이유
값이 오르면 보통은 수요가 준다. 비싸지면 덜 쓰니까. 그런데 이 재화는 다르다. 값이 올라도 우리는 떠나지 못한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기 때문이다.
지금 수많은 개발자가 AI 없이는 코드 한 줄 짜기조차 버거운 지점을 넘어섰다. 연구자들은 이를 불완전한 이해 위에 코드를 쌓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 부른다 - 내비게이션에 길을 맡긴 운전자가 지도 읽는 법을 잊듯, AI에 구현을 맡긴 개발자는 스스로 길을 찾는 감각을 잃는다. 더 역설적인 건, 숙련 개발자는 오히려 AI를 켜면 작업이 19% 느려진다는 측정까지 있는데도 손에서 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느려지는 걸 알면서도 못 끊는다 - 그건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의존의 문제다.
그래서 LLM이 멈추는 순간, 일도 멈춘다. 2025년 6월 ChatGPT가 15시간 넘게, Claude도 같은 달 글로벌 장애로 멈췄을 때, 적지 않은 개발자가 화면 앞에서 무기력하게 손을 놓았다 - 한 추산은 그 몇 시간의 정지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노동시간을 날렸다고 본다. 더 깊은 층위에서는, 사고 자체를 AI에 넘기는 인지 오프로딩이 비판적 사고력을 갉아먹는다는 상관관계가 보고된다 - 특히 어릴수록 의존이 깊고, 한 번도 길러본 적 없는 능력은 애초에 생기지도 않는다. 근육과 같다. 안 쓰면 퇴화하고, 퇴화하면 더 매달리게 된다.
이쯤 되면 가격은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다. 수요가 가격에 둔감해지는 순간, 가격 결정권은 통째로 공급자에게 넘어간다. 보조금이 끝나고 값이 제 원가를, 나아가 그 이상을 향해 올라도, 중독된 수요는 빠지지 않는다. 파는 쪽에 이보다 좋은 시장은 없다. 8절에서 토큰 값이 오른다고 했지만, 진짜 무서운 건 값이 오르는 게 아니라 값이 올라도 끊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해두자. 나는 이것을 아편중독이라 부르지 않는다 - 끊어내야 할 병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건 차라리 코카콜라가, 치약이 우리 일상에 스며든 방식에 가깝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매일 손이 가고, 없으면 허전하고, 어느새 삶의 기본값이 되어버리는 것. 그렇게 습관에 스며들어 끊을 수 없게 되리라는 건 자명하다. 낯선 풍경도 아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위치 기능을 달고 나왔을 때, 사람들은 “사생활을 추적하는 장치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지금은 누구나 제 돈을 주고 그 위치추적기를 사서 한순간도 몸에서 떼지 않는다. 한 번 맛본 편의는 되돌릴 수 없다.
그러니 마지막 그림은 이렇게 맞춰진다. 개인 차원에서 이건 이미 끊을 수 없는 의존이다. “끊어라”는 조언은 공허하다 - 핸드폰을 버리라는 말처럼. 그러나 회사 차원에서 살아남는 건, 중독된 개인이 아니라 그 의존을 구조로 바꿔낸 조직이다. 똑같이 AI에 매여 있어도, 그것을 거르고·쌓고·엮어 자기 해자로 바꾼 쪽은 값이 올라도 버티고, 그저 싸게 받아 쓰며 제 능력만 흘려보낸 쪽은 청구서가 날아오는 날 무너진다.
한 번 이 맛을 본 사람은 돌아가지 못한다. 인간은 기술을 발명할 수는 있어도, 결코 그 기술이 발명되기 이전의 세계로는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시시대로 돌려주겠다는 건 미국의 전쟁 위협일 뿐이지, 인류는 지금까지 단한번도 불도, 문자도, 바퀴도 되돌린 적이 없다.
그러니 진짜 질문은 “어떻게 끊을 것인가”가 아니라, “끊지 못할 이 의존을, 남의 해자가 아니라 나의 해자로 만들 수 있는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