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한 한 채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 - 그걸 만든 건 투기꾼이 아니라 세금이다
'똘똘한 한 채'는 투기 심리가 낳은 병으로 불린다. 그래서 처방도 늘 같다. 비싼 집에 세금을 더 물려 그 심리를 꺾는 것. 그런데 서울에서 15억짜리 집을 한 번 사고파는 데 드는 세금은, 그 집을 10년 넘게 그냥 갖고 있는 세금과 맞먹는다. 팔면 손해가 되도록 설계해 놓고 왜 안 파느냐고 묻고 있는 셈이다. 더 이상한 건 그 다음이다. 지금 준비되는 처방은 이 구조를 풀기는커녕 오히려 조이는 방향인데, 그러면 청구서는 집주인이 아니라 엉뚱한 사람에게 날아간다.
진단 - 우리 세금은 이사를 벌하고 눌러앉기에 상을 준다
한국은 부동산 세금이 적은 나라가 아니다. 취득세와 양도세를 합치면 OECD에서 결코 낮은 편이 아니고, 2026년 7월 국무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적한 것도 정확히 이 대목이었다. 문제는 총량이 아니라 걷는 시점이다.
이 진단과 뒤에 나올 실증 수치(전세 매물 감소, 재산세 구간별 인상률, 2.9% 등)의 출처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접 정리한 아래 자료다.
서울에서 15억짜리 집을 산다고 하자. 취득세로 대략 5천만원이 나간다. 그 집을 1년 갖고 있으면 보유세는 몇백만원 수준이다. 실효세율로 따지면 시세의 0.2% 남짓이다. 계산하면 결론은 하나로 떨어진다. 이사 한 번 하는 비용이 그 집을 10년 넘게 깔고 앉는 비용과 맞먹는다.
미국은 정확히 반대다. 취득세에 해당하는 것이 사실상 없거나 아주 작고, 대신 재산세를 매년 1~2% 낸다. 거기서는 1년 갖고 있는 비용이 이사 한 번 비용이다. 그래서 직장이 바뀌면 집을 옮기고, 아이가 크면 옮기고, 은퇴하면 또 옮긴다.
이것은 개별 사례의 착시가 아니라 국가 전체 통계로도 또렷하다. 한국의 부동산 세금은 총량으로 보면 결코 적지 않다. 오히려 GDP 대비 3.0%로 OECD 평균(1.6%)의 두 배다. 문제는 그 돈을 ‘언제’ 걷느냐다.
| 부동산 세제 구조 (GDP 대비, 2022) | 한국 | OECD 평균 |
|---|---|---|
| 부동산 총세수 | 3.0% | 1.6% |
| 거래세(취득·양도 등) | 1.01% | 0.49% |
| 부동산 세수 중 보유세 비중 | 29% | 56% |
| 부동산 세수 중 거래세 비중 | 50% | — |
부동산에 매기는 세금의 총량은 OECD 최상위인데, 그 절반을 살 때(거래세) 걷고 갖고 있을 때(보유세)는 세계 표준의 절반만 걷는다. 거래세만 떼어 봐도 한국은 영국(0.56%)의 두 배, 독일(0.44%)의 두 배, 일본(0.07%)의 열네 배다. 많이 걷어서 문제가 아니라, 거꾸로 걷어서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안 옮긴다. 직장이 바뀌어도, 집이 좁아져도, 늙어서 큰 집이 부담스러워져도 그대로 있는다. 이사 한 번이 10년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모두가 문제라고 부르는 그 현상이다. 한 번 사면 못 파니까, 이왕이면 제일 좋은 걸 하나만 산다. 똘똘한 한 채는 투기 심리의 산물이 아니라 산수의 결론이다.
그런데 이 눌러앉음은 개인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금이 이동을 벌하면, 같은 땅과 집이 그것을 가장 잘 쓸 사람에게 흘러가지 못한다. 일자리는 서울에 몰려 있는데 정작 그곳에서 일할 사람은 취득세와 대출 벽에 막혀 외곽으로 밀려나, 매일 왕복 몇 시간을 길에 버린다. 아이를 다 키우고 큰 집이 버거워진 노인은, 집을 줄여 옮기는 것이 이득이기는커녕 취득세와 양도세로 손해가 되니 그냥 눌러앉는다. 그래서 큰 집에는 노인 혼자, 좁은 집에는 아이 딸린 부부가 사는 미스매치가 굳어진다. 사람이 자리를 옮기며 같은 땅을 더 잘 쓰게 되는 흐름 - 도시가 살아 움직이는 힘 - 이 세금 한 겹에 막혀 멎는다. 집값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동력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두 세금의 성격 차이가 결정적이다. 취득세는 딱 한 번 내는 진입 장벽이다. 진입 장벽이 하는 일은 정해져 있다. 이미 들어온 사람을 지켜주는 것이다. 새로 사려는 사람에게만 물리고 이미 가진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 반면 보유세는 시간에 비례해 쌓인다. 20년 갖고 있으면 20번 낸다. 장기로 깔고 앉아 버는 전략의 수익을 매년 갉아먹는 유일한 세금이다.
| 취득세 | 보유세 | |
|---|---|---|
| 언제 내나 | 살 때 딱 한 번 | 가진 내내 매년 |
| 세금의 성격 | 진입 장벽 | 시간에 비례해 누적 |
| 겨냥하는 대상 | 새로 사려는 사람(무주택·청년) | 이미 가진 사람 |
| 실제로 하는 일 | 이미 들어온 사람을 지켜준다 | 눌러앉아 버는 수익을 갉아낸다 |
| 이사에 대해 | 이사를 벌한다 | 이사에 중립이다 |
그러니 지금 구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세금은 집을 새로 사려는 사람에게 무겁게 물리고, 이미 가진 사람에게는 거의 물리지 않는다. 그런데 새로 진입하려는 쪽이 무주택자와 청년이고, 눌러앉은 쪽이 기득권이다. 청구서가 정확히 거꾸로 가고 있다.
처방 - 나갈 때 받지 말고, 갖고 있을 때 받아라
해법은 단순하다. 취득세를 확 내리고 그만큼 보유세를 올린다. 걷는 총량은 그대로 둔다.
증세가 아니다. 걷는 시점을 옮기는 것이고, 그러면 걷는 대상이 바뀐다. 집을 굴리는 사람은 놓아주고, 안 쓰면서 깔고 앉은 사람에게 걷는다. 서울에 집이 없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안 가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이건 한 채도 짓지 않고 유효 공급을 늘리는 방법이다.
같은 논리가 정비사업 이주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주비는 공사 기간 동안 잠시 옮겨 살 집을 구하는 돈이고 입주하면 갚는다. 집을 사는 돈이 아니다. 그런데 이걸 대출 규제로 묶으면 취득세와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동 비용을 올려서 회전을 막는다. 속도가 늦어지면 금융비용이 불어나고, 비용이 불어나면 분담금이 커지고, 그러면 사업 자체가 동력을 잃는다. 별개 항목이 아니라 같은 항목이다.
“그럼 월세가 오르지 않나”
여기서 반드시 나오는 반박이 있다. 보유세를 올리면 집주인이 월세에 얹을 것이고, 결국 세입자만 죽는다는 것이다.
먼저 세금이 왜 가격에 얹히는지부터 정확히 봐야 한다. 대부분은 세금이 가격에 그냥 더해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경로는 다르다. 빵집에 세금을 물리면 마진이 얇아지고, 어떤 빵집은 문을 닫고 어떤 곳은 덜 굽는다. 세상의 빵이 줄어든다. 빵이 줄면 희소해지고, 희소하면 값이 오른다. 즉 전가는 공급 감소라는 통로를 통해서만 일어난다. (가격은 공급과 수요의 상대차이지 절대차가 아니다.)
그럼 질문이 바뀐다. 보유세를 올리면 임대 물량이 줄어드는가?
줄어들 수 있다. 집주인이 세를 빼고 자기가 들어가 살면 집은 그 자리에 있지만 임대 시장에서는 한 채가 사라진다. 매매 시장과 임대 시장은 다른 시장이다. 여기까지는 빵과 같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임대 물량이 하나 줄어들 때, 임차 수요도 하나 같이 줄어든다.
그 집이 임대 시장에서 빠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누군가 그 집에 들어가 살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는 어디서 왔는가. 어딘가에서 세를 살던 사람이다. 집주인이 팔았다면 산 사람이 원래 살던 전셋집이 시장에 나온다. 산 사람이 이미 다른 집을 갖고 있었다면 그 집이 나오고, 그 집을 또 누군가 사고, 연쇄가 이어진다. 사슬을 끝까지 따라가면 반드시 세입자에 도달한다. 아무도 안 사면 가격이 떨어지고, 떨어지면 결국 누군가 산다.
이것이 빵과의 진짜 차이다. 빵 먹던 사람이 빵집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빵집이 문을 닫으면 빵은 줄고 먹으려는 사람은 그대로라 값이 오른다. 집은 다르다. 임대 한 채가 시장에서 빠지려면 누군가 그 집을 사서 들어가야 하고, 그 매수자는 방금 전까지 세입자였다. 세입자 하나가 집을 사는 순간 임차 대열에서 빠지므로, 공급을 줄이는 바로 그 거래가 수요도 함께 줄인다. 공급 감소와 수요 감소가 같은 거래의 양면인 것이다. 빵 먹던 사람은 빵집이 될 수 없지만, 세 살던 사람은 집을 사서 세입자 대열을 떠난다. 그래서 보유세를 올려 임대 물량이 줄어도 - 물량이 줄면 값이 오른다는 통념과 반대로 - 월세는 오르지 않는다. 물량이 빠지는 만큼 그것을 찾던 수요도 함께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조건이 붙는다.
이 상쇄가 작동하려면 세입자가 실제로 그 집을 살 수 있어야 한다.
못 사면 어떻게 되는가. 임대 물량은 줄었는데 임차 수요는 그대로 남는다. 세입자가 여전히 세입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빵집 논리가 그대로 작동한다. 진짜로 월세가 오른다.
그럼 세입자가 집을 못 사게 막는 것은 무엇인가. 취득세다. 그리고 대출 규제다.
이제 왜 이것이 반드시 세트여야 하는지가 명확해진다. 보유세만 올리고 취득세를 그대로 두면, 집주인은 세를 빼는데 세입자는 그 집을 못 산다. 물량은 줄고 수요는 남는다. 그러면 재앙이 그대로 현실이 된다.
그리고 지금 정부가 준비하는 것이 정확히 그것이다. 거래세는 그대로 두고, 대출은 더 조이고, 실거주 의무까지 강제하면서 보유세를 올리려 한다. 세입자가 집주인으로 건너갈 다리를 전부 끊어놓고 임대 물량만 줄이는 설계다. 그건 실제로 전가된다.
같은 보유세인데 문을 여느냐 닫느냐(취득세와 대출 규제로)로 결과가 정반대가 된다. 나는 문을 열면서 올리자는 것이고, 그 반쪽이 없으면 보유세 인상에 반대한다.
그리고 이것은 가정이 아니다. 실험은 이미 한 번 끝났다
위의 이야기가 이론처럼 들린다면, 문을 닫고 물량을 줄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미 측정되어 있다.
2025년 6월 주택담보대출이 6억으로 묶였다. 문을 닫은 것이다. 그리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가 종료되면서 정부는 팔라는 신호를 보냈다. 임대 물량을 줄인 것이다. 대통령은 취임 1주년 회견에서 이 결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세 물량이 주는 건 당연해요. 다주택자들 양도세 유예를 끝내고 많이 팔라고 했고, 거기서 많이 팔았잖아요.”
이 설명은 한 가지 전제 위에서만 성립한다. 그 집을 살던 세입자가 샀다면, 전세가 줄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세입자 하나가 집주인이 됐으니 임차 수요도 하나 줄어든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상쇄가 바로 그것이다.
서울시가 토지거래 허가 대장을 주소 단위로 하나하나 대조해 그 전제를 확인했다. 살던 세입자가 그 집을 그대로 산 비율은 2.9%였다.
이유는 명확하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이 53.5%다. 15억짜리 집에 7억 5천 전세로 살고 있었다면, 그 집을 사려면 나머지 7억 5천을 현금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돈이 있는 세입자는 거의 없다. 그리고 대출은 6억에서 막혀 있었다.
그래서 나머지 97%의 집은 다른 사람에게 갔고, 세입자는 나왔다. 물량은 줄었는데 수요는 그대로 남은 것이다. 그 다음은 앞의 논리가 예고한 그대로다. 전세 매물이 24,850건에서 18,000여 건으로, 1년 만에 3분의 1이 사라졌다. 이사 갈 곳이 없어 전체 계약의 55.4%가 갱신계약이 됐다. 전세와 월세의 비중이 46.7% 대 53.3%로 역전됐고, 월세는 6.6% 올랐다.
정부가 정책의 성과로 제시한 그 매도 물량은, 실은 세입자가 밀려난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청구서는 관악구 신림동에서 월세가 40만원에서 80만원이 된 원룸으로, 전세 매물이 두 건 이하인 404개 단지로, 작년 한 해 경기도로 나간 4050 세대 68,000명에게로 갔다.
그럼 그 세금은 어디로 가나 - 월세가 아니라 집값으로
앞 장은 절반이다. 문을 열면 그 세금이 월세로 가지 않는다는 것까지 봤다. 그럼 세금은 어디로 가는가. 증발하지는 않는다. 집주인의 자산, 곧 집값으로 간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세제로는 집값을 못 잡는다는 말이 상식처럼 통용되고 지난 20년의 실패가 그 증거처럼 인용되지만, 정확하지 않다. 보유세는 집값을 낮춘다. 다만 지금까지 그걸 제대로 써본 적이 없을 뿐이다.
집을 매달 100만원이 나오는 기계라고 생각해보자. 이 기계의 값은 무엇이 정하는가. 매달 나오는 돈이다. 보유세로 매달 20이 나가면 이 기계는 80을 낳는 기계가 되고, 그러면 기계값이 내려간다.
세입자가 내는 돈은 여전히 100이다. 바뀐 것은 집주인 손에 80만 남는다는 것뿐이다. 즉 세금은 세입자 지갑이 아니라 집주인 자산에서 나온다. 그래서 조정되는 것이 월세가 아니라 집값이다.
그렇다면 이 세금은 실제로 누가 내는가. 세금을 올리는 그 순간에 그 집을 갖고 있던 사람이 낸다. 한 번에, 자산가치 하락이라는 형태로. 그 다음에 사는 사람은 손해가 없다. 싸게 샀으니 세금을 내고도 수익률이 같다. 세입자도 손해가 없다.
여기에 이 정책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진짜 이유가 있다. 딱 한 세대, 현재 소유자에게만 청구서가 간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부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말을 그대로 하면 “내 재산을 깎지 말라”가 되므로 하기 껄끄럽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세입자가 피해본다”는 프레임이다. 실제로 갈 청구서가 없는 사람을 방패로 세우는 것이다.
설계는 셋이면 된다
첫째, 세율은 하나로 간다. 지금 정부는 초고가에 추가 부담을 물리려 하고, 이것이 이 안에서 정부와 갈리는 유일한 지점이다. 100억 집은 이미 30억 집보다 3배 넘게 낸다. 그것이 형평이다. 거기에 더 얹는 것은 형평이 아니라 벌금이다. 대통령 본인이 “이건 집값 잡는 세금이 아니라 형평 과세”라고 진단했고 그 진단은 옳았다. 그런데 “공제해 주고 빼 주다가 조세가 기본 기능을 잃었다”고 해놓고 위에 혹을 붙이면, 방향만 반대일 뿐 같은 종류의 왜곡이다.
실용적인 이유가 더 크다. 구간이 있으면 사람들은 구간 아래로 내려간다. 부부 공동명의로 쪼개고, 증여로 나누고, 법인으로 돌린다. 세수는 안 늘고 거래만 뒤틀린다. 지난 종부세의 역사가 그 기록이다. 비례세는 쪼개도 총액이 같아서 회피할 것이 없다. 그리고 구간이 없으면 매년 정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누진 구조는 인플레이션 앞에서 저절로 무너진다. 구간은 고정되어 있는데 집값은 오르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두가 위 칸으로 밀려 올라간다.
한국 재산세 과세표준 구간은 16년째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가 이렇다. 공시가격이 똑같이 10% 올라도 강남구의 재산세는 6.7% 오르는 반면 도봉구는 25.7% 오른다. 도봉구가 강남구보다 네 배 가까이 세게 맞는 것이다. 강남은 이미 최고 구간에 있어서 더 올라갈 칸이 없고, 도봉은 지금 그 칸으로 밀려 올라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동대문구의 전용 84제곱미터 아파트도 공시가격이 6억에서 7억이 되면서 올해부터 최고세율을 적용받는다. 강남 대형평형 이야기가 아니라 국민평형 이야기다.
종부세는 더 극적이다. 2009년 도입 초기에 서울 공동주택의 2.99%가 대상이었는데 지금은 14.9%다. 서울의 1주택자 종부세 대상이 12만 명에서 16만 명으로 늘었고, 납부자의 35%가 한강벨트 1주택자다. 소수의 고액 부동산에 물리겠다며 만든 세금이 중산층의 세금이 되는 데 법 개정은 단 한 번도 필요하지 않았다. 국회가 아무것도 안 해도 증세가 진행된 것이다.
여기서 “그러면 구간을 주기적으로 손보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온다. 그 반론이 공허한 이유를 이 데이터가 증명한다. 16년 동안 아무도 하지 않았다. 구간을 올리면 세수가 줄어드는데, 그것을 자기 손으로 할 정부는 없기 때문이다. 방치가 곧 증세인 제도는 반드시 방치된다.
비례세에는 이 문제가 원리적으로 없다. 구간이 없으니 밀려 올라갈 칸도 없다. 집값이 오르면 세금도 같은 비율로 오르고, 그것으로 끝이다.
둘째, 소득 없는 고령자는 미뤄준다. 소득은 없는데 집값이 오른 어르신. 보유세 인상의 유일한 진짜 약점이자 종부세 논쟁의 감정선 전부가 여기 있다. 답은 과세이연이다. 팔거나 물려줄 때까지 미루고 이자를 붙인다. 쫓겨나지 않고, 세금은 결국 다 걷힌다. 깎아주는 것이 아니라 미루는 것이므로 “예외를 만들지 말라”는 원칙에도 걸리지 않는다.
이건 아이디어가 아니라 60년 넘게 돌아간 제도다. 미국 오리건주는 1963년부터 이 방식을 운영한다. 62세 이상이고 소득이 일정선(2026년 기준 연 7만 달러) 아래인 집주인의 재산세를 주정부가 대신 내주고, 그 집에 유치권을 걸어둔 뒤 단리 6%의 이자를 붙여 집을 팔거나 상속할 때 한 번에 정산한다. 집주인은 살아 있는 동안 한 푼도 낼 필요가 없고, 그 사이 밀려나지도 않는다. 미네소타를 비롯해 열 개가 넘는 주가 비슷한 제도를 둔다.
핵심은 ‘못 내는 사람’과 ‘안 내는 사람’을 분리하는 것이다. 못 내는 노인은 시점을 미뤄주고, 안 내려는 자산가는 그대로 걷는다. 종부세 논쟁이 20년간 ‘집 한 채 가진 억울한 노인’ 한 명에게 발목 잡혀 결국 부자 감세로 귀결된 것은, 바로 이 분리 장치 하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연이 있으면 그 노인은 애초에 반대할 이유가 없어진다.
셋째, 땅은 무겁게 건물은 가볍게. 땅은 세금을 올린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전가 통로가 원천적으로 없다. 앞에서 본 대로 세금이 전가되려면 공급이 줄어야 하는데, 땅은 세금을 물려도 한 평도 줄지 않는다. 경제학이 토지세를 ‘사중손실 없는 세금’이라 부르는 이유다. 그러나 건물은 다르다. 새로 짓지 않을 수 있고, 안 지으면 진짜 공급 감소다. 건물분 보유세는 실제로 일부 전가된다. 그러니 무게를 땅 쪽에 실어야 한다.
이것도 이론이 아니라 측정된 사실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여러 도시는 땅에 높은 세율을, 건물에 낮은 세율을 매기는 ‘이원세율’을 100년 넘게 써왔다. 피츠버그는 1913년부터 2001년까지 땅을 건물의 약 5.8배 세율로 과세했는데, 여러 연구가 이 구조 덕에 같은 쇠락한 공업지대의 다른 도시들보다 건설이 활발했다고 확인했다. 펜실베이니아 지자체들을 비교한 연구에서는 이원세율을 도입한 도시가 그렇지 않은 도시보다 주택 착공이 연 8.4% 늘었고, 그 증가가 ‘더 큰 집’이 아니라 ‘더 많은 가구’에서 나왔다 - 정확히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다. 맥키스포트는 1980년 이 제도를 도입한 뒤 건축허가 규모가 3년 만에 36% 늘었는데, 같은 기간 이웃 도시들은 오히려 14~30% 줄었다.
더 순수한 형태도 있다. 에스토니아는 건물에는 아예 세금을 매기지 않고 땅에만 매기는 전국 토지세를 운영한다. 덴마크의 토지세를 분석한 연구는 세율을 1%포인트 올려도 집값·개발·이주·자가보유율 어디에도 유의한 영향이 없었다고 보고했다 - 땅에 물린 세금은 누구에게도 전가되지 않고 지주의 몫에서만 나온다는 이론이 실제로 확인된 것이다. 무게를 땅에 실으라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이 측정들에서 그대로 도출되는 결론이다.
버려야 할 것 - 투기꾼 색출
이것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투기와 투자의 차이는 의도다. 그리고 의도는 관측할 수 없다. 성공하면 투자이고 실패하면 투기이며, 내가 하면 투자이고 남이 하면 투기다. 게다가 투기꾼도 집을 놀리면 손해이므로 세를 놓는다. 모든 유능한 투기꾼은 임대사업자다. 빈집을 깔고 있는 것은 투기꾼 중에서도 무능한 쪽이다.
지난 20년 부동산 정책이 쓴 자원의 대부분이 이 색출에 들어갔다. 다주택 중과, 임대사업자 등록제(도입했다 폐지), 실거주 의무, 자금조달계획서. 전부 의도를 추정하려는 시도였고 전부 실패했다. 집행이 허술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해서다.
그러므로 실거주 의무는 폐기해야 한다. 그 정책의 목적이 투기 색출인데 색출이 불가능하다면 목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게다가 실거주 의무는 학군이나 직장 때문에 다른 곳에 살면서 자기 집을 전세로 내놓은 사람을 때린다. 그 사람은 임대 공급자다. 그를 때리면 그는 전세를 회수하고 집을 판다. 매매 물량은 늘고 전월세 물량은 준다. 그런데 집을 못 사는 청년과 서민은 전월세 시장에 있다. 도우려는 사람을 정확히 조준하는 정책이다.
대신 의도를 묻지 말고 가액대로 걷는다. 투기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채산성을 깎는 것이다. 색출이 필요 없다.
단 하나 예외가 있다. 갭투자다. 갭투자는 새 임대를 만들지 않고 세입자의 전세금을 레버리지 삼아 소유권만 가져오므로, “유능한 투기꾼은 임대 공급자”라는 말이 여기엔 안 맞는다. 그러나 이것조차 의도를 색출할 필요는 없다. 전세보증과 대출로 그 레버리지 자체를 조여 갭투자만 채산성이 나빠지고 리스크가 커지게 하면 된다. 여전히 겨누는 것은 사람의 속이 아니라 거래의 구조다.
순서 - 문을 먼저 열고, 보유세는 뒤따른다
여기가 대부분의 개혁이 죽는 자리다. 그리고 이 항목만은 취향이 아니라 절대 조건이다.
순서는 이렇다. 먼저 문을 연다. 그 다음에 보유세를 올린다. 여기서 ‘문’은 두 가지다 - 취득세를 내리는 것, 그리고 세입자가 자기가 살던 집을 살 수 있게 대출의 빗장을 푸는 것. 반대로 보유세부터 올리면 세금은 무거워졌는데 팔지도 못하는 함정에 사람을 가둔다. 소유자는 보유세에 밀려 팔고 싶은데 세입자는 문에 막혀 못 사고, 그러면 매물이 세입자에게 가지 못한 채 물량만 줄어 앞에서 본 그 전가가 그대로 일어난다.
이 순서를 절대 조건이라 부르는 이유는 지금 문이 이미 닫혀 있기 때문이다. 전세 매물은 1년 만에 3분의 1이 사라졌다. 500세대 넘는 대단지 850곳 중 404곳, 즉 절반 가까이가 전세 매물 두 건 이하다. 전체 계약의 55.4%가 갱신계약이다. 움직이고 싶어도 못 움직이는 상태에서, 세입자가 집주인으로 건너갈 다리는 6억 대출 한도에 막혀 있다. 이 상태에서 보유세부터 올리면 앞의 실험이 두 번째로 실행된다. 첫 번째 청구서가 어디로 갔는지는 이미 나와 있다.
그런데 문을 여는 것도 공짜가 아니다
문을 여는 일이 공짜라는 인상을 주면, 다 해주겠다 약속하고 하나도 못 한 지난 20년의 정책들과 똑같아진다. 그러니 ‘문’을 이루는 두 가지, 취득세와 대출을 갈라서 봐야 한다.
취득세는 문의 작은 빗장에 불과하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3.5%다. 15억짜리 집에 7억 5천 전세로 살던 세입자가 그 집을 사려면 나머지 7억 5천을 현금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취득세는 5천만원이다. 취득세를 0으로 깎아도 7억 5천의 자기자본 갭은 거의 그대로 남는다. 문을 막는 진짜 빗장은 5천만원이 아니라 7억 5천이고, 그 갭을 메우는 것은 대출뿐이다.
그렇다면 취득세를 먼저 내리는 것이 집값을 밀어올리지 않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취득세 인하는 거래를 자극해 단기적으로 값을 약간 밀 수 있다. 그러나 취득세 인하와 보유세 인상은 세트이고, 곧 뒤따르는 보유세가 집을 현금흐름 기계로 되돌려 자본가치를 눌러 상쇄한다. 순효과는 하락이다. 진짜 경계할 것은 취득세가 아니라 문의 다른 절반, 대출이다.
여기서 이 안의 가장 불편한 딜레마가 나온다. 문을 여는 열쇠가 대출인데, 대출을 풀면 집값이 다시 오른다. 전세대출을 집값만큼 풀어준 것이 애초에 이 폭등의 한 원인이었다는 진단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답은 문을 만인에게 여는 것이 아니라 세입자가 자기가 살던 바로 그 집을 사는 경로에만 선택적으로 여는 것이다. 전세보증금을 승계해 그만큼을 대출로 인정하는 방식, 생애최초와 실거주 실수요에 핀셋으로 여는 방식은 열되, 갭투자와 다주택 진입의 문은 닫아둔다. “일반적으로는 낮추되 청년·신혼·생애최초는 구체적 타당성 있게 지원한다”는 그 핀셋이, 여기서는 세입자를 집주인으로 건너보내는 다리가 된다. 만인에게 여는 게 아니므로 집값 전반을 밀어올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조치도 반드시 피해자를 낳는다. 그것부터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핀셋으로 대출의 문을 열어 세입자를 집주인으로 건너보낸다 해도, 자기자본 7억 5천을 끝내 마련하지 못하는 세입자는 그 다리에 오르지도 못한 채 남는다. 이들에게는 상쇄가 작동하지 않는다. 임대 물량은 줄었는데 이들은 여전히 임차 수요로 남아 월세 상승을 그대로 맞는다. 이 안이 다리를 건넌 상위 세입자를 자산가로 올려보내는 동안, 다리에 못 오른 그 아래 세입자는 오히려 월세화의 직격탄을 맞는다. 어떤 개혁도 모두를 한 번에 건지지는 못한다. 이 잔여 고통까지 없앤다고 말하면 거짓말이 된다.
그래서 두 개의 안전판이 이 안의 필수 부품이다. 하나는 앞서 말한 토지분 중심 과세다. 전가 통로가 없는 땅에 무게를 실을수록 남은 세입자에게 가는 월세 압력이 줄어든다. 다른 하나는 임대료 상한과 맞바꾼 장기임대 계약이다. 못 건너간 세입자가 시세보다 싸게, 예측 가능하게 머물 자리를 조세지출로 사두는 것이다. 문을 여는 것이 상위 세입자를 위한 장치라면, 이 둘은 문을 끝내 못 넘는 세입자를 위한 장치다. 둘 다 없이 보유세만 올리면, 이 글이 처음부터 경계한 그 전가가 하위 세입자에게서 그대로 일어난다.
그리고 보유세는 예고된 경로로 올린다
문을 열었다면, 보유세는 어떻게 올리나. 10년에 걸쳐 매년 얼마씩 올릴지를 경로째로 법에 명시하고 시작한다. 그래야 기대의 배신이 아니라 새 기대의 형성이 된다. 여기서 흔한 반론이 나온다. 과거에 기대한 세금이 유지되어야 사유재산 아니냐는 것이다.
그 논리를 실제로 법에 새긴 곳이 있다. 1978년 캘리포니아 주민발의 13호다. 재산세를 취득가 기준 1%로 묶고 과표 상승을 연 2%로 제한했다. 기존 소유자의 기대를 정확히 지켰다. 결과는 이렇다. 같은 동네 같은 집인데 1978년부터 산 사람은 연 2천 달러를 내고 작년에 산 사람은 2만 달러를 낸다. 열 배 차이가 세법에 못박혔다. 팔면 과표가 시세로 리셋되니 아무도 팔지 않는다. 매물이 사라지고 집값이 미국 최고 수준이 됐다. 나중에는 상속 시 과표 승계까지 허용해서 할아버지의 1978년 세금이 손자에게 물려졌다. 즉 “기대를 지켜준” 정책의 실제 결과가 매물 잠김, 집값 폭등, 세대 간 불평등의 법제화였다. 지금 한국이 겪는 것과 같은 목록이다.
뒤집어 보면 명확하다. 보유세가 낮으면 보유 비용이 낮고, 보유 비용이 낮으면 자산 가격이 높다. 가격이 높으면 이미 가진 사람이 이익이다. 낮은 보유세야말로 집을 가진 세대가 아직 못 산 세대에게 청구서를 넘기는 방식이다. 미래 세대를 지키는 것은 세금을 묶는 쪽이 아니라 푸는 쪽이다. 쌓인 몫이 아래로 흐르지 않고 위에서 굳을 때 사회가 어떻게 터지는지는, 이 글의 주제에서 한발 벗어나지만 혁명은 식량이 아니라 분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짚은 다른 글에서 따로 다뤘다.
예측 가능성은 “영원히 안 바꾼다”가 아니라 “어떻게 바꿀지 미리 안다”이다. 30억이냐 50억이냐를 생방송 여론조사로 묻는 장면이 예측 불가능성의 실물이었고, 그런 나라에서 20년짜리 정비사업에 돈을 넣을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것은 세율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율이 흔들리면 계산이 틀리지만, 약속이 소급해서 깨지면 다음 계약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8년간 시세 절반에 임대를 놓은 사람에게 돌아온 것이 양도세 부담이라면, 국가가 다음에 무엇을 제안하든 아무도 응하지 않는다. 그때 잃는 것은 세수가 아니라 정책 수단 그 자체다. 세금을 걷는 능력보다 약속할 수 있는 능력이 먼저 마른다.
어떻게 부동산 개혁을 성공 시킬 수 있는가?
여기까지가 “무엇을 할 것인가”다. 그런데 이 글이 옳다 해도, 옳은 설계는 지난 20년에도 여러 번 있었다. 그것들이 실패한 이유는 계산이 틀려서가 아니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뜯겼기 때문이다. 개혁이 한 사람의 의지나 한 정권의 결단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완성된다는 이 뼈대는, 마침 혁명조차 단두대가 아니라 제도가 끝냈다는 것을 다룬 다른 글과 같은 이야기다 — 부동산 세제라는 다른 소재로 옮겨온 것뿐이다.
종부세가 그 기록이다. 노무현이 도입하고, 이명박이 완화하고, 문재인이 강화하고, 그 다음이 다시 완화였다. 세율표가 정권의 색깔을 따라 롤러코스터를 탔고, 그 예측 불가능성 자체가 시장을 이 글이 말한 방향과 반대로 왜곡했다. 30억이냐 50억이냐를 생방송 여론조사로 묻는 장면이 그 실물이었다.
이 동학을 다른 누구도 아닌 대통령 본인이 그 토론회를 끝맺으며 인정했다. 정책이 왜 이리 자주 바뀌냐면 선거가 다가올수록 압력이 세지고, 표 때문에 각자의 신념도 잠깐 접어두게 되고, 결과적으로 힘센 쪽이 이기더라는 것이다. 옳은 설계를 만드는 일과, 그 설계를 이 힘의 논리로부터 지켜내는 일은 별개라는 자백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정부에 따라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
첫째, 디폴트를 인상 쪽에 둔다. 보통 법은 정치인이 나서서 올려야 세금이 오른다. 이걸 뒤집는다.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공식에 따라 매년 정해진 만큼 자동으로 오르게 하고, 멈추고 싶으면 정치인이 나서서 “이 자동 인상을 폐지한다”는 법을 새로 통과시켜야 하게 만든다. 인간은 현상유지 편향이 강해서, 굴러가는 것을 멈추는 일은 새로 시작하는 일보다 정치적 비용이 훨씬 크다. 멈추는 순간 “당신이 부자 감세를 했다”는 청구서가 그 정치인에게 날아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되돌리려면 국회 3분의 2 동의가 필요하다는 특별다수 요건을 얹으면 문턱은 한 번 더 올라간다. 앞에서 비례세를 주장한 것과 이것은 같은 원리다. 방치가 곧 증세인 제도는 방치되고, 이번에는 그 방향이 정상화 쪽을 향한다.
둘째, 결정을 독립기구에 넘기고 교차 임명한다. 금리를 정치인이 정하지 못하게 한국은행에 넘긴 것과 같다. 공시가격 산정과 세율 경로의 조정을 독립 위원회에 위임하되, 위원 임기를 대통령 임기와 어긋나게, 위원들끼리도 서로 엇갈리게 짠다. 한 정권이 임기 중 채울 수 있는 자리가 전체의 일부뿐이면, 세금을 내리고 싶어도 위원회 다수를 한 번에 장악할 수 없다. 한국은행·헌법재판소·감사원이 이미 이 구조다.
셋째, 필요하다면 헌법을 동원한다. 다만 숫자가 아니라 원칙만 새긴다. 개헌은 3분의 2에 국민투표까지 필요해 사실상 못 건드린다. 가장 강한 잠금이지만 가장 위험하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13호가 세율 숫자를 헌법급으로 못박았다가 영구적 재앙이 되고도 되돌리지 못한 것이 경고다. 그러므로 헌법에 넣어야 할 것은 “1%”가 아니라 “보유세 실효세율을 OECD 중앙값 미만으로 내릴 수 없다” 같은 방향이다. 결과를 잠그면 실패가 영구화되고, 원칙을 잠그면 유연함을 지키면서 후퇴만 막는다.
넷째, 야당을 설계 단계에 함께하도록 한다. 여당이 혼자 만들면 야당은 다음 선거에서 “저건 저쪽 작품이니 폐기하겠다”를 공약으로 내걸 수 있다. 야당을 협상 테이블에 앉혀 그들의 요구를 일부 반영하면, 야당도 그 법의 공동 저자가 된다. 그때 뒤집는 일은 자기 얼굴에 침 뱉기가 된다. 스웨덴이 1990년대 연금개혁을 여야 공동 설계로 만들어 30년간 지켜낸 이유가 이것이다.
그리고 이 넷째에서, 이 안은 남다른 이점을 하나 갖고 있다. 취득세를 내리고 보유세를 올린다는 이 글의 핵심이, 그 자체로 진보와 보수가 각자 성과로 가져갈 수 있는 교환이라는 점이다. 보유세 인상은 진보가 오래 원한 것이고, 거래세 인하는 보수가 오래 원한 것이다. 둘을 한 법에 묶으면 진보는 “보유세를 정상화했다”를, 보수는 “거래세를 낮춰 거래를 풀었다”를 각자 지지층에게 내놓을 수 있다. 대개의 개혁은 한쪽이 이기고 한쪽이 지는 제로섬이라 공범을 만들 재료가 없다. 이 안은 드물게 양쪽 모두에게 내밀 카드가 손에 쥐어져 있다. 그것을 “옳으니 따르라”며 혼자 만들면, 그 카드를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이 네 장치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문턱이 낮은 것부터 높은 것까지 스펙트럼을 이루고, 겹칠수록 강해진다. 그냥 법률 하나로 두면 과반에 뒤집히는 지금의 종부세이고, 초당 합의로 만들어 자동 공식과 특별다수로 잠그고 독립기구가 집행하게 하면 정권 교체에 상당히 견딘다. 헌법은 최후의 수단으로, 방향만 넣는다. 우리의 100년 후를 위해 이제 개헌을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처럼 진정으로 5년마다 바뀌는 게 아닌 50년 후에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도 안전하고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협치를 헌법에 명시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이 글의 처음 논지와 끝이 만난다. 낮은 보유세는 집을 가진 세대가 아직 못 산 세대에게 청구서를 넘기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잠금장치는 세금을 위한 장치가 아니다. 한 정권의 임기보다 오래 살아야 할 약속을, 다음 정권의 표 계산으로부터 지켜내는 장치다. 예측 가능성은 “영원히 안 바꾼다”가 아니라 “어떻게 바꿀지 미리 안다”이고, 그것을 보장하는 것은 좋은 세율표가 아니라 그 세율표를 함부로 못 뜯게 하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못 하는 것
서울 집값을 크게 낮추지는 못한다.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하지만, 그 크기가 수도권 일자리 집중이 미는 힘을 이길 만큼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수도권 과밀을 고치지 못한다. 그것은 산업 배치와 행정수도의 문제이지 조세의 문제가 아니다. 세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과밀을 가속하지 않는 데까지다.
투기꾼을 잡지 못한다. 애초에 잡을 수 없어서 잡지 않기로 한 것이다.
끝맺으며
똘똘한 한 채는 투기 심리가 아니라 세금이 만들었다. 팔면 10년치 세금을 무는 구조에서 사람들은 이왕이면 제일 좋은 하나를 사서 눌러앉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답은 세금을 더 걷느냐 덜 걷느냐가 아니라 나갈 때 받던 것을 갖고 있을 때 받는 것이고, 이때 결정적인 것은 세입자가 집주인이 될 문을 함께 여는 것이다. 그 문을 열고 보유세를 올리면 청구서는 현재 소유자의 자산가치로 가지만, 문을 닫고 올리면 세입자의 월세로 간다.
그리고 문을 닫고 올리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미 측정되어 있다. 2025년, 정부는 대출을 조이고 다주택자에게 팔라는 신호를 줬다. 문은 닫은 채 물량만 줄인 것이다. 그렇게 시장에 나온 집을, 원래 거기 세 들어 살던 사람이 사들인 비율은 2.9%에 그쳤다. 나머지 97%는 다른 사람에게 갔고, 세입자는 짐을 쌌다. 정부가 ‘다주택자가 집을 내놨다’며 성과로 내세운 그 숫자는, 실은 세입자가 살던 집에서 밀려난 기록이었다. 지금 논의되는 안은 그 문을 한 번 더 닫는 쪽이다.
물론 문을 여는 것도 공짜가 아니고, 옳은 설계도 정권이 바뀌면 뜯긴다. 그래서 문은 핀셋으로 열고, 그 설계는 다음 정권이 못 뜯게 잠근다. 여기까지가 방법이다.
그러나 방법 이전에, 이 글이 처음부터 하려던 말은 하나다. 우리는 20년간 투기꾼을 잡으려 했지만, 잡아야 했던 것은 사람이 아니라 세금이 가리키는 방향이었다. 나갈 때가 아니라 갖고 있을 때 걷는 것 - 그 방향 하나를 바로 세우고 문을 함께 열면, 청구서는 세입자의 월세가 아니라 집을 쥔 사람의 자산으로 간다.
똘똘한 한 채를 만든 것은 투기꾼이 아니라 환경변화에 못맞추어간 세금제도였다. 그러니 그것을 풀 가장 강력한 열쇠도 세금이다.
마지막으로 밝혀둔다. 나는 집을 가졌고, 취득세는 이미 냈다. 그러니 이 글이 제안하는 것 - 취득세를 내리고 보유세를 올리는 것 - 은 정확히 내 이익에 반한다. 이미 치른 취득세는 돌려받지 못하고, 앞으로 낼 보유세만 늘어난다. 그럼에도 쓴다. 집값 문제가 지금 손대지 않으면 언젠가 대한민국에 재앙으로 돌아올 과업이라면, 내 이익보다 그 해결이 먼저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손해를 감수하고 이 제안을 내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