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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A는 실패했고 JFA는 정답인가 - 좋은 제도와 이기는 제도는 다르다

한국 축구가 부진할 때마다 따라붙는 결론이 있다 - KFA는 실패했으니 일본의 JFA처럼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2026년 5월, 13년을 버틴 정몽규 회장마저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물러나겠다고 선언하면서, 이 결론은 거의 정답처럼 굳어지는 듯하다. 그런데 나는 이 문장이 절반만 맞다고 본다. 좋은 제도와 이기는 제도는 같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월드컵 8강에 오른 나라들의 협회 구조는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성적표를 2002년까지 펼쳐 보면 한국이 일본에 밀린 것도 아니다. 진짜 질문은 '누가 더 깨끗한가'가 아니라, 스타가 빠진 뒤에도 반복해서 이길 수 있는가다.

한국 축구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비교 대상은 일본이다. 한국에는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있다. 그런데 대표팀 운영, 감독 선임, 협회 행정 이야기가 나오면 곧바로 일본축구협회, 즉 JFA와 비교된다.

일본은 2005년 JFA 선언 이후 “2050년 월드컵 우승”이라는 장기 목표를 내세웠고, 유소년 육성, 지도자 교육, 대표팀 철학, 유럽 진출 지원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 왔다. 반면 한국 KFA는 정몽규 회장 체제, 현대가 영향력, 감독 선임 논란, 기술행정의 불연속성 때문에 비판을 받아 왔다. 급기야 2026년 5월, 13년간 협회를 이끈 정몽규 회장은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2025년 초 4연임에 성공해 2029년까지 임기가 남아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해 보인다. 한국은 KFA를 버리고 JFA처럼 가야 한다.

나는 이 문장이 절반만 맞다고 생각한다. 방향은 맞을 수 있지만, 설명은 부족하다. 왜냐하면 좋은 제도와 이기는 제도는 같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좋은 제도가 아니라 이기는 제도다

축구협회 거버넌스를 말할 때 우리는 투명성, 분산, 견제, 기술행정, 장기 철학을 말한다.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도덕적으로 좋은 조직의 언어에 가깝다. 반드시 승리의 법칙은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살아남는 조직은 꼭 가장 투명한 조직이 아니다. 때로는 집중된 권력, 강한 후원자, 국가 주도 프로젝트, 폐쇄적 내부 네트워크가 더 빠르게 움직인다. 이 구조가 민주적으로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특정 환경에서는 자원 동원, 내부 통제, 의사결정 속도에서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축구협회도 이렇게 물어야 한다.

어떤 구조가 더 정의로운가? 보다, 어떤 구조가 어떤 환경에서 더 잘 이기는가?

이 질문이 더 차갑고, 더 실전적이다.

월드컵 8강 국가들의 축구협회는 하나의 정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 국가는 아르헨티나, 프랑스, 크로아티아, 모로코, 네덜란드, 브라질, 잉글랜드, 포르투갈이었다. 이들의 축구협회 구조는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는 클럽 회장단 정치가 강하다. 브라질은 주 축구협회 블록이 강하다. 프랑스는 국가가 위임한 공익형 축구 행정조직에 가깝다. 잉글랜드는 이사회, 독립이사, 프로축구, 아마축구가 분리되어 있다. 네덜란드는 프로와 아마가 거의 50:50 균형을 이룬다. 모로코는 협회와 왕실·국가 프로젝트가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즉 월드컵 강국이라고 모두 JFA식 기술행정 모델인 것은 아니다. 이 점이 중요하다. 강한 축구협회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 다만 각 나라의 정치, 경제, 축구 생태계에 맞는 방식으로 권력을 만들고, 자원을 모으고, 선수 생산 시스템을 유지한다.

그런데 성적을 보면 한국이 완전히 밀린 것도 아니다

먼저 가장 단순한 잣대, 월드컵 성적부터 보자. 완료된 최근 5개 월드컵, 즉 2006년부터 2022년까지의 최종 순위를 보면 일본은 평균 18.2위, 한국은 평균 18.8위였다. 일본이 근소하게 앞선다. 하지만 2002년까지 포함하면 달라진다. 한국은 2002년 4위, 일본은 9위였다. 2002년부터 2022년까지 6개 대회를 합산하면 한국 평균은 16.3위, 일본 평균은 16.7위다. 오히려 한국이 근소하게 앞선다.

대회일본 최종 순위한국 최종 순위
2002 한일9위4위
2006 독일29위17위
2010 남아공9위15위
2014 브라질29위27위
2018 러시아15위19위
2022 카타르9위16위
평균16.7위16.3위

이 숫자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정말 KFA 체제는 완전히 실패했는가? 정말 JFA 체제는 압도적으로 우월한가? 답은 단순하지 않다. 일본은 최근 들어 더 안정적으로 16강권 성과를 내고 있고, 선수층과 전술 완성도도 좋아졌다. 하지만 한국 역시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 역사적 고점과 경쟁력을 보여준 적이 있다. 따라서 협회 체제를 평가할 때 단순히 “일본식이 정답”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적어도 성적표 숫자만으로는 한국과 일본의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권력 순환성과 성과 재현성을 봐야 한다

일본과 한국의 거버넌스 차이점을 찾던 중 가장 공신력 있는게 CIES의 2022 월드컵 참가국 축구협회 거버넌스 보고서라는 걸 발견했다. 그러나 정관상 총회 의결권만 보면 한국과 일본은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둘 다 지역협회와 프로축구가 섞인 구조이고, 집행위원회 규모도 30명으로 같다.

오히려 이 문서는 KFA와 JFA의 차이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걸 가장 객관적이고 직관적인 지표를 찾다가 의외로 쉬운 지표를 찾았다.

X축은 리더십 교체성이다. 2013년부터 2026년까지 축구협회장이 몇 번 교체되었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Y축은 월드컵 성과 재현성이다. 2006년부터 2022년까지 완료된 최근 5개 월드컵에서 16강 이상에 오른 횟수를 기준으로 삼았다. 2002년은 한국과 일본의 공동개최 특수성이 크기 때문에 본문 성적표에서는 따로 보되, 재현성 축에서는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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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표로 보면 한국과 일본은 같은 분면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위치에 놓인다.

한국은 2013년 이후 정몽규 회장 체제가 이어졌고, 2025년 4선에도 성공했다. 반면 일본은 2013년 이후 다이니 구니야, 다지마 고조, 미야모토 쓰네야스로 회장이 바뀌었다. 정관상 구조가 비슷해 보여도 실제 리더십 순환성은 다르다.

성과 재현성도 차이가 난다. 한국은 2006~2022년 5개 월드컵에서 2010년과 2022년, 두 번 16강에 올랐다. 일본은 같은 기간 2010년, 2018년, 2022년, 세 번 16강에 올랐다.

물론 이 차이가 압도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에는 2002년 4강이라는 역사적 고점이 있고, 월드컵 한 대회의 성적은 대진과 부상 변수에 크게 흔들린다.

그리고 도표 전체를 펼쳐 놓으면 한국 한 나라의 문제를 넘어서는 경향이 보인다. 16개국 가운데 2013년 이후 회장이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나라, 즉 교체성 0회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리고 한국은 동시에 재현성 하위권에 머문다. 반대로 회장이 두 번 이상 순환한 나라들 - 일본, 네덜란드, 스위스, 미국, 아르헨티나, 스페인, 잉글랜드, 브라질 - 은 대부분 기준선 위, 재현성이 높은 쪽에 모여 있다. 프랑스나 포르투갈처럼 교체가 적어도 성과를 반복한 예외는 있지만, ‘리더십이 전혀 순환하지 않는 고인물 구조’가 성과 재현에서 유리했던 사례는 없었다.

적어도 월드컵 재현성이라는 지표에서는, 권력이 한 사람에게 고이지 않고 순환한 협회들이 더 자주 16강에 올랐다. 리더십 교체는 ‘민주적이라서 좋은 것’이기 이전에, 데이터상 ‘더 자주 이기는 구조’에 가까운 셈이다. 고인물화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성적의 문제로 나타난다.

다만 데이터는 한 가지를 더 일러 준다. 순환이 곧 성공은 아니라는 것이다. 똑같이 회장이 한 번 바뀐 나라인데도 프랑스와 포르투갈은 재현성 4회를 쌓은 반면, 폴란드·모로코·세네갈은 1회에 그쳤다. 차이를 가른 것은 교체 횟수 자체가 아니라, 그 순환 위에 철학과 기술행정이 축적됐느냐다. 그러니 리더십 순환은 고인물을 막는 최소 조건일 뿐, 그것만으로 이기는 시스템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바뀌느냐’가 아니라 ‘바뀌어도 무엇이 남느냐’다.

KFA와 JFA의 차이는 회장 출신보다 시스템의 관성이다

KFA와 JFA는 겉으로는 비슷하다. 둘 다 FIFA, AFC 산하의 국가 축구협회다. 하지만 작동 방식은 다르다. KFA는 오랫동안 회장 개인의 자원 동원력, 기업 네트워크, 내부 선거 구조에 크게 의존해 왔다. 정몽준 이후 정몽규로 이어지는 현대가 이미지가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적으로 상속된 것은 아니지만, 축구계 내부 선거 구조와 자원 동원 논리 속에서 현대가 인물이 유리했던 것이다.

반면 JFA는 회장 개인보다 시스템의 관성이 강하다. JFA는 2005년 선언에서 2050년까지 축구 가족 1,000만 명과 월드컵 우승이라는 목표를 제시했고, 이후 Japan’s Way를 통해 대표팀, 유소년 육성, 지도자 교육, 풀뿌리 축구를 연결하는 접근을 문서화했다.

이 차이는 감독 선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일본은 2018년부터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 한 사람이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직후 2026년까지 재계약했고, 2023 아시안컵 8강 탈락이라는 부진에도 협회는 그를 유임시켰다. 성적이 흔들려도 한 사람에게 시간을 주고 축적을 기다린 것이다.

반대로 한국은 같은 기간 파울루 벤투가 떠난 뒤 위르겐 클린스만을 데려왔다가 1년 만에 경질했고, 그 후임을 뽑는 과정에서 홍명보 감독 선임 절차가 불공정했다는 문체부 감사 결론까지 나왔다. 선임 권한이 없는 기술총괄이사가 홍명보를 추천했고, 외국인 후보들과 달리 정식 면접·검증 절차는 생략됐으며, 전력강화위원이던 박주호의 폭로로 내부 절차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뒷날 서울행정법원도 이 선임에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같은 ‘감독 한 명을 정하는 일’인데, 일본은 시스템이 정하고 한국은 그때그때 사람이 정한 셈이다.

즉, JFA는 회장이 자주 바뀌었지만 선언과 감독은 바뀌지 않고 유지되었으며, 반대로 KFA는 회장은 오래 유지되었지만 일본식 로드맵이나 약속은 없었고, 감독도 자주 바뀌었다.

그래서 일본은 스타가 있어서 강한 팀이라기보다, 스타가 빠져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팀에 가깝다. 미토마나 미나미노가 빠져도 전술 구조가 남고, 유럽파가 한두 명이 아니라 스쿼드 전체에 깔려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월드컵은 체제 논쟁의 명분 싸움이 될 수 있다

체제 논쟁은 이미 추상적인 토론이 아니다. 앞서 봤듯 정몽규 회장은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물러나기로 했다. 홍명보 감독 선임 논란, 승부조작 가담 축구인에 대한 기습 사면 시도, 문체부의 중징계 요구가 겹치며 여론이 등을 돌린 끝의 결정이었다. 즉 KFA는 이미 ‘포스트 정몽규’라는 갈림길에 서 있고, 2026 월드컵 성적은 그다음 체제를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갈지 정하는 사실상의 국민투표가 된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의 최종 결과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좋은 성적을 낸다면, KFA 체제 비판은 약해질 수 있다. 적어도 “이 체제로는 절대 안 된다”는 주장은 힘을 잃는다. 반대로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낸다면, JFA식 장기 기술행정 모델로 가야 한다는 명분은 강해진다. 한국이 조기 탈락하고 일본이 8강에 간다면, 그것은 숫자 이상의 정치적 사건이 된다. 그 순간 KFA 개혁론은 훨씬 강한 명분을 얻게 된다.

KFA의 문제는 도덕성이 아니라 재현성이다

KFA를 비판할 때 “재벌 회장이라 나쁘다”는 식의 도덕적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짜 문제는 재현성이다. 한국 축구가 좋은 성적을 낼 때, 그것이 협회 시스템의 결과인지 아니면 특정 세대의 천재 선수 덕분인지 구분해야 한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이 있는 시기에 성적을 내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이 빠진 뒤에도 비슷한 수준의 선수를 계속 생산하고, 대표팀 철학을 유지하고, 감독이 바뀌어도 경기력이 축적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KFA 체제는 성적이 좋아도 불안정한 체제다.

반대로 JFA가 한 번 실패하더라도, 그것만으로 JFA 시스템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성적이 아니라 선수 생산, 전술 축적, 대표팀 운영의 반복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 반복 가능성을 가장 뚜렷하게 갉아먹는 구조적 신호가 하나 있다. 리더십이 순환하지 않는 것이다. 앞서 본 16개국 데이터에서 회장이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나라는 한국뿐이었고, 한국은 재현성 하위에 있었다. 한 사람이 오래 자리를 지키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다만 그 자리가 굳어 시스템이 사람을 대체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데이터는 그 체제에 불리한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KFA에 정말 필요한 것은 더 유능한 회장 한 명이 아니라, 회장이 바뀌어도 철학과 기술행정이 남는 순환 구조다.

결국 핵심은 이것이다. 강한 체제는 도덕적으로 예쁜 체제가 아니다. 강한 체제는 반복해서 이길 수 있는 체제다. 그래서 정몽규 이후의 KFA는 사실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다. 한쪽에는 프랑스, 포르투갈, 미국이 있다. 회장 교체가 잦든 드물든 그 위에 철학과 기술행정이 쌓여 16강을 반복하는 길이다. 다른 쪽에는 폴란드, 모로코, 세네갈이 있다. 회장은 바뀌지만 시스템이 따라 자라지 못해, 2022년 모로코의 4강 같은 한 번의 고점 뒤 다시 주저앉는 길이다. 독재에서 벗어나는 것은 출발선일 뿐 도착지가 아니다. 정몽규가 떠난 자리를 또 다른 한 사람의 힘으로 채운다면, 한국은 순환의 모양만 흉내 낸 채 뒤쪽 길로 미끄러질 수 있다.

그러니 한국 축구가 지금 물어야 할 질문은 “일본처럼 될 것인가”가 아니다. 일본은 앞쪽 길로 간 여러 사례 중 하나일 뿐, 베껴야 할 유일한 정답이 아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 축구는 스타가 사라진 뒤에도 이길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회장이 내려온다고 해결될까?

여기서 한국을 향한 냉정한 질문이 남는다. 정몽규가 물러나고 회장이 바뀌면, 한국은 자동으로 프랑스·포르투갈 쪽 길로 가는가? 데이터를 보면 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지금의 한국은 프랑스·포르투갈형이 아니라 폴란드형에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첫째, 성과가 한 세대의 스타에 얹혀 있다. 폴란드가 레반도프스키 한 명에 기대듯, 한국은 손흥민·김민재·이강인·황희찬에 의존한다. 이 네 명이 한꺼번에 빠지면 약체에게도 크게 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메시와 디마리아가 없어도 이기던 아르헨티나와는 다르다.

둘째, 그 스타들조차 한국 시스템이 길러낸 것이 아니다. 손흥민은 아버지의 사재와 개인 지도, 10대 중반의 독일 조기 유학으로 완성됐고, 이강인은 만 열 살에 스페인 발렌시아 유스로 건너가 자랐다. 한국의 협회·리그 시스템이 세계급을 ‘재생산’했다는 증거가 약하다.

셋째, 다음 세대가 자라날 통로가 막혀 있다. K리그1의 21세 이하 출전 비율은 6.4%로 벨기에(21.8%)나 프랑스 리그앙(20.3%)의 3분의 1 수준이고, 리그 평균 연령은 28.4세로 세계에서 손꼽히게 높다. 어린 선수가 뛰지 못하는 리그에서 프랑스·포르투갈처럼 인재가 끊임없이 솟아날 리 없다. 실제로 2019년 U-20 준우승 세대 가운데 지금 대표팀에 살아남은 건 이강인 정도다.

그래서 핵심은 이것이다. 대책 없는 ‘일본식 전환’은 한국을 프랑스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폴란드로 만든다. 회장을 바꾸고 일본의 슬로건을 베껴 붙이는 것만으로는 순환의 모양만 생길 뿐, 그 아래에서 인재를 재생산하는 시스템은 생기지 않는다. 일본의 진짜 힘은 회장이 바뀐 데 있는 게 아니라, 회장이 바뀌어도 Japan’s Way와 유소년·지도자 육성이 20년간 굴러간 데 있다. 순환은 고인물을 막는 출발선이지, 그 자체로 프랑스도 일본도 만들어 주지 않는다.

물론 한국에는 폴란드에 없는 것이 있다. 해외 디아스포라가 아니라 자국 본토에서 선수가 나온다는 점, 그리고 K리그 유스 의무화와 구단들의 유스 투자라는 토대가 이미 깔려 있다는 점이다. 이 토대를 ‘세계급을 반복 생산하는 제도’로 끌어올리기만 하면, 한국이 앞쪽 길로 건너갈 잠재력은 폴란드보다 분명히 크다.

그러니 마지막 질문은 정몽규의 거취가 아니다. 정말 회장이 내려오면 해결되는가? 누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가? 한 사람의 사퇴로 끝날 일이었다면, 재현성은 애초에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짜로 답해야 할 주체는 떠나는 회장이 아니라, 그 빈자리에 ‘또 한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세울 수 있는 누군가다. 그 누군가가 없다면 한국 축구는 회장만 바꾼 채, 끝내 폴란드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한명이 너무 오랜시간 권력을 가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대책없이 끌어내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한국에 필요한 것은 회장이 아니라 ‘심판’이다

사실 한국이 베껴야 할 모델을 멀리 일본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한국 축구의 역사적 고점인 2002년이 그 증거다. 그해 거스 히딩크를 데려온 주체는 정몽준 회장이 아니라 기술위원회였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이끄는 전문가 집단이 후보를 검토해 히딩크를 낙점했고, 회장은 파격적인 연봉과 전권을 보장하고 초반 프랑스·체코전 5-0 참패의 경질 여론에서 감독을 끝까지 막아주는 ‘지원자’에 머물렀다. 전문가가 고르고 회장이 받쳐주는 분업, 이것이 4강의 행정적 토대였다. 문제는 정몽규 체제가 그 기술위원회를 없애고 추천만 가능한 전력강화위원회로 바꾸면서, 감독을 고르는 실권이 전문가에서 회장 한 사람에게로 넘어갔다는 데 있다. 클린스만과 홍명보 선임이 잇따라 학연·불공정 논란에 휩싸인 것은, 견제하던 심판이 사라진 자리를 내부 네트워크가 채운 구조적 결과다.

그렇다면 기술위원회를 되살리기만 하면 될까. 그렇지 않다. 회장이 한 번 없앤 기구는 회장이 다시 무력화할 수 있다. 앞서 데이터가 보여준 ‘순환의 모양만 흉내 내는’ 함정이 여기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핵심은 전문가 기구가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그 기구가 회장의 의지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판정할 권한을 제도로 보장받느냐다. 이 글에서 본 다른 나라들이 바로 그 장치를 갖고 있다. 잉글랜드는 이사회에 독립이사를 두어 협회 내부 정치로부터 의사결정을 떼어 놓았고, 프랑스는 국가가 권한을 위임하되 운영은 공익형 조직의 자율에 맡기며, 네덜란드는 프로와 아마가 거의 50:50으로 권력을 나눠 어느 한쪽도 독주하지 못하게 한다.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감독 선임이든 예산이든, 한 사람이 독식할 수 없도록 판정하는 독립된 심판이 구조 안에 박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부의 자리가 분명해진다. 정부가 직접 감독을 고르거나 협회를 운영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그것은 FIFA가 금지하는 정치 개입이자, 회장이라는 고인물을 정부라는 또 다른 고인물로 바꾸는 일일 뿐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심판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심판이 공정하게 작동하고 다시는 한 사람에 의해 폐지되지 않도록 틀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독립적인 선임·감사 기구의 설치를 법으로 의무화하고, 협회가 받는 국민 혈세(매출의 30%가 넘는 정부 기금)를 그 기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연동시키는 식이다. 심판은 축구계 전문가가 보되, 그 심판이 매수되지 않는지를 지켜보는 것까지가 정부의 역할이다.

그리고 이 원리는 감독 선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재현성의 또 다른 축인 유소년 육성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Japan’s Way가 회장이 세 번 바뀌는 동안에도 20년을 굴러간 이유는, 그것이 회장의 의지가 아니라 독립된 시스템으로 제도화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미 가진 K리그 유스 의무화와 구단 유스 투자라는 토대 역시, 회장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지 않도록 독립 기구가 지키는 약속으로 묶여야 비로소 인재 재생산으로 이어진다. 결국 한국 축구에 필요한 것은 더 유능한 회장 한 명도, 일본의 슬로건도 아니다. 누가 회장이 되든 감독 선임과 유스 육성을 공정하게 판정하는 심판이 구조 안에 살아 있고, 정부는 그 심판이 죽지 않도록 지켜보는 것 - 그것이 정몽규 이후의 KFA가 폴란드가 아니라 프랑스의 길로 가는 가장 안전한 길이다. 물론 강한 후원자 한 사람의 헌신이 그 빈자리를 메우는 길도 있다. 다만 그 경우에도 결국 남는 질문은 같다.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무엇이 남는가.

계산에 사용한 지표

국가리더십 교체성성과 재현성보조 확인 지표해석
브라질5회5회FIFA 랭킹 6위2006~2022년 월드컵 5개 대회 모두 16강 이상에 올랐지만, CBF 회장 교체와 직무대행이 잦아 거버넌스 안정성과 성과가 반드시 같이 움직이지 않음을 보여줌
아르헨티나3회5회FIFA 랭킹 1위그론도나 사후 AFA 리더십은 흔들렸지만, 2006~2022년 월드컵 5개 대회 모두 16강 이상 성과를 냄
스페인4회4회FIFA 랭킹 3위비야르, 루비알레스, 로차, 로우산으로 리더십이 흔들렸지만, 2006~2022년 5개 대회 중 4회 16강 이상 성과를 냄
프랑스1회4회FIFA 랭킹 2위르 그라에에서 디알로로 리더십이 한 차례 바뀌었고, 2010년 실패를 제외하면 16강 이상 성과를 반복함
포르투갈1회4회FIFA 랭킹 5위고메스에서 프로엔사로 회장이 바뀌었고, 2006~2022년 월드컵 5개 대회 중 4회 16강 이상 진출
네덜란드2회4회FIFA 랭킹 7위판 프라흐, 스페, 파우로 회장이 바뀌었고, 2018년 본선 불참에도 출전 대회 성과는 높은 편
잉글랜드4회4회FIFA 랭킹 4위FA 회장이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2014년 조별리그 탈락을 제외하면 16강 이상 성과를 반복함
스위스2회4회FIFA 랭킹 17위길리에롱, 블랑, 크네벨로 회장이 바뀌었고, 2006년 이후 안정적으로 16강권을 반복함
미국2회3회FIFA 랭킹 16위굴라티, 코르데이루, 팔로 콘으로 회장이 바뀌었고, 2010·2014·2022년에 16강 진출
일본2회3회FIFA 랭킹 18위2013년 이후 다이니 구니야, 다지마 고조, 미야모토 쓰네야스로 회장이 바뀌었고, 2006~2022년 월드컵 5개 대회 중 3회 16강 진출
호주3회2회FIFA 랭킹 24위프랭크 로위, 스티븐 로위, 크리스 니쿠, 안터 아이작으로 이어졌고, 2006년과 2022년에 16강 진출
한국0회2회FIFA 랭킹 25위2013년 이후 정몽규 회장 체제가 지속되었고, 2006~2022년 월드컵 5개 대회 중 2회 16강 진출
크로아티아1회2회FIFA 랭킹 9위슈케르에서 쿠스티치로 회장이 바뀌었고, 2018년 준우승과 2022년 3위라는 높은 고점이 있음
세네갈1회1회FIFA 랭킹 19위상고르 장기 체제 뒤 2025년 팔로 회장이 바뀌었고, 2006~2022년 기준 16강 이상은 2022년 1회
폴란드1회1회FIFA 랭킹 31위보니에크에서 쿨레샤로 회장이 바뀌었고, 2022년에 16강에 복귀했지만 재현성은 아직 1회
모로코1회1회FIFA 랭킹 12위레크자 회장 체제에서 2022년 4강이라는 고점을 만들었지만, 2006~2022년 전체 재현성은 아직 1회
  • 리더십 교체성: 2013~2026년 축구협회장 또는 공식 직무대행 교체 횟수
  • 성과 재현성: 2006~2022년 월드컵 16강 이상 진출 횟수
  • FIFA 랭킹: 2026년 6월 11일 공식 남자 랭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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