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을 외치는 대한민국에서 스타트업은 왜 성공할 수 없는가 - 규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규칙이 나중에 쓰이기 때문이다
창업하라는 말은 20년째 반복되는데, 왜 안 되느냐는 질문에는 답이 둘뿐이다. 사람이 문제라며 교육과 조직문화를 바꾸자고 하거나, 제도가 문제라며 규제가 너무 많다고 하거나. 그런데 둘 다 빗나갔다. 같은 사람이 같은 아이디어로 어떤 나라에서는 회사를 만들고, 어떤 나라에서는 법정에 선다. 타다는 1심에서 합법이라는 판단을 받았고, 정확히 16일 뒤에 불법이 됐다. 무죄가 확정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였고, 그때 그 서비스는 이미 세상에 없었다. 여기서 갈린 것은 아이디어의 질도, 규칙을 어겼는지 여부도 아니었다. 규칙이 언제 쓰였느냐였다. 그리고 이 싸움은 2500년 전에 이미 한 번 벌어졌다 - 문제는 그때 진 쪽의 논리가 지금 우리 제도 안에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이다.
1. 이름이 거꾸로 붙은 두 단어 -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단어 두 개를 정리하고 가자.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둘 위에서 굴러간다.
규칙을 쓰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포지티브 규제는 할 수 있는 것을 적어두는 방식이다. 목록에 있으면 되고, 없으면 안 된다. 네거티브 규제는 하면 안 되는 것을 적어두는 방식이다. 목록에 있으면 안 되고, 없으면 다 된다.
여기서 함정은 이름이다. 포지티브는 긍정이고 적극이고 밝은 쪽이다. 네거티브는 부정이고 소극이고 어두운 쪽이다. 단어만 보면 당연히 포지티브가 좋아 보인다. 그런데 자유의 크기로 따지면 정확히 반대다.
포지티브 규제 아래에서는 목록에 이름이 없는 것은 전부 못 한다. 그리고 새로운 것에는 원래 이름이 없다.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만들면 그건 어느 항목에도 안 적혀 있으니, 이 방식에서 새로운 시도는 시작부터 불법이다. 반대로 네거티브 규제에서는 금지 목록에 없는 것은 전부 할 수 있다. 목록이 짧을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그러니 이름을 이렇게 바꿔 읽는 편이 정확하다. 포지티브는 ‘허가받은 것만’, 네거티브는 ‘금지된 것만 빼고 전부’다. 한국이 20년 넘게 네거티브 규제로 가야 한다고 말해온 이유가 이것이고, 정부가 바뀔 때마다 네거티브 전환을 선언해온 이유도 이것이다.
그런데 이 글이 다루려는 건 그다음이다. 네거티브로 바꾸겠다고 선언해도 자유가 커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포지티브보다 더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한 회사가 태워버린 4년을 따라가 보면 보인다.
2. 무죄인데 왜 돌아오지 못했나
타다는 2018년 10월에 시작했다. 근거는 있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령에 11인승 이상 승합차는 기사 알선이 가능하다는 예외 조항이 있었고, 타다는 그 조항 위에 서비스를 세웠다. 없는 길을 뚫은 게 아니라 열려 있던 문으로 들어간 것이다.
2019년 검찰이 기소했다. 2020년 2월 19일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타다는 불법 콜택시가 아니라 모바일 앱 기반의 렌터카 서비스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16일 뒤인 3월 6일, 국회가 재석 185명 중 찬성 168명으로 여객자동차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타다금지법이다. 법원이 “이건 합법이다”라고 판단하자, 입법부가 “그러면 불법으로 만들자”고 응답한 셈이다.
개정안이 한 일을 조문 수준에서 보면 성격이 더 분명해진다. 근거 조항을 지운 게 아니라 조건을 얹었다. 11~15인승 승합차의 기사 알선을 관광 목적으로 한정하고, 대여 시간이 6시간 이상이거나 대여·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인 경우로 제한했다. 세 조건은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평범한 요건이다. 그런데 겹쳐 놓으면 걸러지는 대상이 하나뿐이다. 도심에서 앱으로 불러 20분 타고 내리는 이동, 곧 타다 베이직 그 자체다. 목록은 나중에 쓰였을 뿐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하나의 서비스를 조준해서 쓰였다.
타다는 2020년 4월 11일 베이직 서비스를 종료했다. 출시 1년 5개월 만이었다. 회사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입장문에 남은 숫자는 172만 명의 이용자와 1만2000명의 드라이버였고, 그 드라이버들은 서비스 종료일에 사실상 실직 상태가 됐다.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한 것은 2023년 6월 1일이다. 결론은 1심과 다르지 않았다. 타다는 이미 허용돼 있던 기사 알선 렌터카이고, 길에서 손을 드는 사람을 즉석에서 태울 수 없으니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운송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기소로부터 4년, 서비스 종료로부터 3년 뒤였다. 이겼는데 돌아갈 시장이 없었다.
그리고 이건 타다 한 회사의 불운이 아니다. 법률 상담 플랫폼 로톡은 2014년 서비스를 시작한 뒤 서울지방변호사회와 대한변협에 거듭 고발당했지만 수사기관은 매번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그러자 변협은 2021년 5월 광고규정을 고쳐 법률 플랫폼에 가입한 변호사를 징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없던 금지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등록 변호사는 4000명에서 2000명 선으로 반토막 났고, 2023년 2월 로톡은 직원 100명 중 절반을 내보내며 사옥을 매물로 내놨다. 그런데 변협의 그 규정을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것은 그보다 9개월 앞선 2022년 5월 26일이었다. 이기고 나서 직원을 잘랐다는 뜻이다. 법무부가 변협의 변호사 징계를 취소해 분쟁이 실질적으로 정리된 것은 2023년 9월이다. 판결은 그때까지 태워버린 시간을 돌려주지 않는다.
두 사건을 나란히 놓으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 보인다.
| 타다 | 로톡 | |
|---|---|---|
| 서비스 시작 | 2018년 10월 | 2014년 2월 |
| 위법이 아니라는 판단 | 2020년 2월 19일 1심 무죄 | 2015·2016·2020년 고발 모두 불기소·불송치 |
| 그 직후 만들어진 금지 | 16일 뒤 여객자동차법 개정(2020년 3월 6일) | 변협 광고규정 개정(2021년 5월) |
| 최종 승리 | 2023년 6월 1일 대법원 무죄 확정 | 2023년 9월 법무부 징계 취소 |
| 이겼을 때 회사의 상태 | 서비스 종료 3년 경과, 드라이버 1만2000명 이탈 | 변호사 회원 반토막, 직원 절반 퇴직, 사옥 처분 |
둘 다 규칙을 어겨서 제재당한 게 아니다. 어기지 않았다는 판단이 나온 다음에 규칙이 새로 쓰였다. 하나는 국회가 법률로, 하나는 직역 단체가 자치규정으로 했다는 차이뿐이다.
시간축에 얹으면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가 더 분명해진다. 규칙은 짧은 구간에서 만들어지고, 회사는 긴 구간에서 죽는다.
이 사건에서 보통 읽어내는 교훈은 기득권과 혁신의 충돌이다. 그것도 맞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층이 하나 더 있다. 타다는 금지를 어겨서 사라진 게 아니라, 금지가 나중에 쓰여서 사라졌다. 행위 시점에는 존재하지 않던 규칙이 행위 이후에 만들어졌고, 그 사이의 4년치 비용은 전부 당사자가 냈다.
3. 창의력을 사람에서 제도로 옮겨놓으면 보이는 것
여기서 창의력의 정의를 한 번 바꿔보자.
창의력은 흔히 개인의 속성으로 다뤄진다. 발상이 자유롭고, 연결을 잘 짓고, 통념을 의심하는 능력. 그런데 그 능력이 결과로 바뀌려면 반드시 하나가 더 필요하다. 그 발상을 실제로 해봐도 되는 공간이다.
그렇게 보면 창의력은 이렇게 다시 쓸 수 있다. 하지 못하는 일 외에 모든 걸 할 수 있는 자유. 앞에서 본 네거티브 규제가 그대로 창의력의 정의가 되는 것이다. 거꾸로 포지티브 규제 아래서 창의력은 재능의 문제가 되기 전에 자격의 문제가 된다. 아무리 좋은 발상을 해도 목록에 그 이름이 없으면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관점의 실익은 논쟁의 위치가 바뀐다는 데 있다. 창의적인 인재가 왜 안 나오느냐는 질문은 보통 교육과 문화로 향한다. 그런데 창의력을 행동 공간의 넓이로 정의하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우리가 하면 안 되는 일의 목록은 어디에 적혀 있는가.
4. 자유의 전제조건 - 목록은 미리, 그리고 확정되어 있어야 한다
네거티브 규제가 실제로 자유가 되려면 조건이 하나 붙는다. 금지 목록이 사전에, 명확하게, 확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건은 너무 당연해서 잘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정확히 이 지점이 두 가지 방식으로 깨진다.
첫째, 목록이 비어 있는 경우다.
한국에서 낙태는 지금 처벌 조문도 허용 규정도 없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2020년 12월 31일까지 입법하라고 했지만 국회는 하지 않았고, 그 공백이 6년째 이어지고 있다. 조문만 놓고 보면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상태인데, 몇 주까지 되는지, 누가 판단하는지, 무엇이 위법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이건 낙태 하나의 사정이 아니다. 헌재가 위헌이나 헌법불합치로 판단하고도 정비되지 않은 법령이 26건이다.
같은 구조가 산업에서도 반복된다. 두나무를 비롯한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코인 대여 서비스를 내놓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었는데, 근거는 그 서비스를 금지하는 조항이 아니었다. 특정금융정보법에 가상자산 대여의 근거 규정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규정이 없으니 무등록 대부업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해석이 붙었고, 업비트는 법적 쟁점을 이유로 테더 대여를 접었다. 그 뒤에 실제로 나온 규칙도 법령이 아니라 거래소들이 스스로 만든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이었고, 법제화는 여전히 검토 단계다. 금지되어 있어서 못 한 게 아니라, 금지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서 멈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기업 가치는 사업의 질이 아니라 규제 불확실성으로 할인된다. 그리고 결국 빈칸을 메운 쪽은 규제자가 아니라 규제받는 쪽이었다.
둘째, 목록이 나중에 채워지는 경우다.
타다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건 입법만의 문제가 아니다. 판단 기준 자체가 사후에 채워지는 형태로 쓰여 있는 조문들이 있다. 형법 243조의 음란 개념이 대표적인데, 대법원의 정의는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다. 행위 시점에는 확정할 수 없고 판단자가 나중에 채우는 빈칸이다.
조직 안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국가 R&D는 자율을 준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딱풀 하나의 영수증까지 통제하고, 실패하면 그때 가서 문제 삼는다. 도전적 연구는 원래 실패가 정상인데, 실패 여부가 사후에 잘못으로 재정의되는 것이다. 결과는 숫자로 나와 있다. 국내 정부 R&D 과제 성공률은 최근 5년간 모두 98%를 넘었고, 어떤 해는 완료 과제 982건 중 979건이 성공으로 판정돼 99.7%를 찍었다. 같은 기간 미국 NIH가 발주한 프로젝트의 평균 성공률은 17.8%다. 성공률이 90%대에 고착된 문화라는 표현이 그래서 나온다.
더 결정적인 숫자는 그 옆에 있다. 같은 기간 사업화 성공률은 연평균 42.9%였다. 기술개발은 98%가 성공으로 판정됐는데 그중 절반 이상은 사업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두 숫자의 간격이 ‘성공’이라는 판정이 무엇을 재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잰 것은 성과가 아니라 사후에 문제 삼기 어려운 상태였다. 성공률 98%는 연구를 잘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아무도 나중에 문제 삼을 수 없는 것만 골라서 했다는 증거다.
5. 그래서 벌어지는 일 - 형식은 네거티브, 집행은 포지티브
금지가 비어 있거나 나중에 채워지면, 합리적인 사람은 하나의 행동만 하게 된다. 확실히 안전한 것만 하는 것.
결과적으로 포지티브 규제와 같아지는데, 실은 더 나쁘다. 포지티브 규제에는 최소한 허용 목록이라도 적혀 있다. 형식만 네거티브인 상태에서는 무엇이 안전한지조차 스스로 추측해야 한다. 추측이 틀렸을 때의 비용은 4년짜리 재판이다.
이걸 뒤집으면 이 글의 핵심 명제가 나온다. 자유의 크기를 정하는 것은 허용 범위가 아니라 예측가능성이다.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하이에크가 법의 지배를 정의한 방식이 정확히 이것이었다. 정부의 모든 행동이 사전에 확정되어 공표된 규칙에 구속되는 것, 그리하여 권력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사될지를 상당한 확실성으로 미리 내다보고 그 위에서 자기 일을 계획할 수 있는 상태. 자유의 정의 안에 들어간 것은 허용의 넓이가 아니라 예측의 가능성이다. 무엇을 해도 되는 범위가 넓어서 자유로운 게 아니라, 어떻게 될지 미리 알 수 있어서 자유롭다.
두 축을 함께 놓으면 칸이 네 개 나오는데, 우리가 서 있는 칸이 어디인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포지티브 규제는 흔히 최악으로 불린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최악은 ②가 아니라 ③이다. ②에는 좁을망정 목록이 적혀 있어서 무엇이 안 되는지 미리 알 수 있고, ③에는 그것조차 없다. 네거티브를 표방하면서 목록을 비워두면, 포지티브보다 좁은 행동 공간이 만들어진다.
“예측 가능성은 영원히 안 바꾼다가 아니다. 어떻게 바꿀지 미리 안다이다”가 그것이다. 규칙이 바뀌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바뀌는 방식을 미리 알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제도가 옳게 세워졌는데도 시간이 지나 자산을 태우는 구조가 되는 사례는 망분리는 왜 옳았는데 이제는 끝내야 하나에서 다뤘다. 허용된 통로 외 전부를 차단한 그 설계는 당시엔 옳았지만, 지금은 접근권한 자체가 자산이 된 시대의 비용을 치르고 있다.
6. 왜 그 쉬운 걸 안 하나 - 비어 있어야 이득인 사람이 있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반응이 나온다. 그러면 목록을 미리 잘 쓰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못 해서 안 쓰는 게 아니라, 비어 있는 편이 이득인 사람이 있어서 안 쓰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추측이 아니다. 2500년 전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문서에 그대로 적어놓고 갔다. 방법은 두 가지였고, 둘 다 지금 쓰인다.
수법 하나 - 아예 안 쓴다
기원전 536년, 정나라의 재상 자산이 형법 조문을 청동 솥에 새겨 세웠다. 형정(刑鼎)이다. 그전까지 법은 지배층의 머릿속에 있었고, 백성은 자기가 무엇으로 처벌받는지 미리 알 수 없었다.
그러자 이웃 진나라의 숙향이 반대 편지를 보냈다. 좌전에 남은 그 편지의 요지는 이렇다. 백성이 법조문을 알게 되면 예를 버리고 문서를 근거로 송곳 끝만한 이익까지 따지려 들 것이다, 정나라는 망한다.
여기서 볼 것은 그가 틀렸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걱정했느냐다. 그는 법이 공개되면 다스리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이건 정확히 맞는 말이다. 무엇이 죄인지 그때그때 정하려면, 미리 적혀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목록이 비어 있어야만 판정할 권한이 생긴다.
그러니 목록을 비워두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다. 그 자체가 권력이다. 비어 있는 만큼 정하는 사람의 몫이 커진다.
이 해석이 맞다는 증거는 그 뒤에 나온다. 숙향이 그토록 말렸던 바로 그 진나라가, 23년 뒤 똑같이 형법을 솥에 새겼다. 이번에는 공자가 나서서 똑같은 논리로 비판했다. 진나라는 망할 것이라고.
두 번의 반대 어디에도 조문의 내용을 문제 삼은 대목은 없다. 법이 나쁘다는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오직 하나, 그게 적혀서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반대한 것은 나쁜 법이 아니라 미리 알 수 있는 법이었다.
수법 둘 - 조문만 내주고 사용법은 쥔다
공개를 끝내 막지 못하면 방법이 하나 더 있다. 로마가 그걸 보여준다. 기원전 451년 로마의 평민들이 요구해 십인위원회가 법전 편찬에 착수했고, 이듬해 12표법이 광장에 게시됐다. 그전까지 로마법은 구전이었고 귀족과 사제의 전유물이었다. 평민들이 불만을 가진 지점은 판결의 내용이 아니라 판결의 근거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로마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뒷부분이 훨씬 중요하다. 조문은 공개됐지만 그 조문을 쓰는 방법은 공개되지 않았다. 소송을 걸려면 정해진 문구를 한 글자도 안 틀리고 외워서 말해야 했는데, 그 문구를 적은 문서도 재판을 열 수 있는 날이 언제인지 적은 달력도 사제단이 계속 쥐고 있었다. 법을 읽을 줄 알아도 언제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하는지는 그들에게 물어야 했다.
그것까지 공개된 것은 기원전 304년이다. 12표법에서 146년이 더 걸렸다.
이 146년이 정확히 앞 장에서 말한 상태다. 목록은 공개돼 있는데 목록을 쓰는 방법은 비공개인 상태. 형식은 공표된 법이고 집행은 여전히 재량이다. 목록을 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걸 실제로 쓸 수 있는 절차까지 열려야 자유가 된다는 것을, 로마는 146년에 걸쳐 배웠다.
네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반대의 논리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보인다.
| 시점 | 공개된 것 | 반대의 논리 | 그 뒤 |
|---|---|---|---|
| 기원전 536년 · 정 | 형법 조문을 청동 솥에 새겨 게시 | 숙향 - 백성이 근거를 알면 송곳 끝만한 이익까지 다툰다, 정나라는 망한다 | 정나라는 그 뒤 161년을 더 갔다 |
| 기원전 513년 · 진 | 숙향의 나라가 같은 일을 함 | 공자 - 법도를 잃었다, 진나라는 망한다(晉其亡乎) | 진나라는 기원전 376년 세 집안으로 갈라져 소멸 |
| 기원전 450년 · 로마 | 12표법 조문을 광장에 게시 | 조문은 내주되 소송 문구와 재판 달력은 사제단이 보유 | 그 상태로 146년 |
| 기원전 304년 · 로마 | 소송 절차와 재판 달력 | - | 그제야 목록이 쓸 수 있는 것이 됨 |
정리하면 수법은 둘이다. 안 쓰거나, 쓰되 사용법을 쥐거나. 둘 다 반대의 이유는 법의 내용이 아니라 법의 공개였고, 지켜낸 것은 정해줄 권한이었다.
그리고 두 수법 모두 지금 그대로 쓰인다. 목록을 비워둔 채 나중에 채우는 것이 첫 번째고,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겠다고 선언해놓고 무엇이 안전한지는 알려주지 않는 것이 두 번째다.
동서양에서 거의 동시에, 사람들이 요구한 것은 하나였다. 처벌을 없애달라는 게 아니라 처벌의 목록을 미리 보여달라는 것. 그 요구가 관철된 지 2500년이 지났는데, 우리는 아직 같은 자리에 서 있다.
7. 그럼 목록만 완벽하게 쓰면 되나 - 그런 목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으면 답이 나온 것 같다. 목록을 미리, 명확하게 쓰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 걸림돌이 하나 있고, 이걸 짚지 않으면 이 글은 실현 불가능한 요구로 끝난다.
아무리 잘 써도 빈칸 없는 목록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명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명확하게 쓸수록 그 바깥으로 걸어 나가는 길도 함께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도박 규제가 그 증거다.
한국은 도박에 대해 세계적으로 강한 규제국이다. 형법은 속인주의를 적용해 해외 도박까지 처벌하고, 도박을 “재물을 걸고 우연에 의해 득실을 결정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명확한 정의다.
그런데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은 이 정의를 빠져나간다. 공식적으로 환전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도박이 아니라 상품 구매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돈을 걸고, 우연에 의존하고, 같은 사행 심리를 작동시키고, 현실에서는 아이템 현거래로 사실상 환전까지 되는데도 그렇다. 도박은 1등이 되고 싶어서 돈을 쓰지만 가챠는 1등이 될 때까지 돈을 쓴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독한데도 목록에는 없다.
| 요건 | 도박(형법 246조) | 확률형 아이템 |
|---|---|---|
| 재물을 건다 | O | O - 유료 뽑기 구매 |
| 우연이 득실을 정한다 | O | O - 확률표에 따른 추첨 |
| 환전 | 판돈 자체가 현금 | 공식적으로 불가, 현실에선 아이템 현거래 |
| 돈 쓰기를 멈추는 지점 | 1등이 되면 | 1등이 될 때까지 |
| 법적 분류 | 도박 - 국외 도박까지 처벌 | 상품 구매 - 금지 목록에 없음 |
| 규칙이 생긴 시점 | 형법 제정 이래 | 2024년 3월 확률 공개 의무, 그 전 14년은 공백 |
윗줄 네 개가 전부 겹치는데 다섯 번째 줄에서 갈라진다. 정의가 모호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정의는 명확한데, 명확한 정의는 명확하게 피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목록에 없는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미 확인됐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의 큐브에서 이용자가 가장 선호하는 옵션이 아예 나오지 않도록 출현 확률을 0%로 설정해두고 이를 알리지 않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2024년 1월 116억4200만 원의 과징금을 매겼다. 도박 규정이 아니라 전자상거래법의 기망 조항이 동원됐다. 확률을 공개하라는 의무 자체가 게임산업법 개정으로 생긴 것은 2024년 3월 22일이고, 그 앞의 14년간은 확률에 관한 규칙이 아예 없었다. 공정위는 확률이 처음 바뀐 2010년 9월부터 확률이 공개된 2021년 3월까지 큐브가 5500억 원어치 팔렸다고 밝혔다. 규칙이 없는 자리에서 오간 금액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같은 병을 양쪽에서 보여준다. 규제자는 빈칸을 14년간 방치했다가 사후에 채웠고, 기업은 당시엔 확률을 공개할 법적 의무가 없었는데 현재 기준을 소급 적용한다는 논리로 맞섰다. 이 재판은 선고가 거듭 미뤄지며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목록이 비어 있으면 규제자도 사후에 채우고, 규제 대상도 소급을 방패로 든다. 그 14년 동안 확률을 모르고 돈을 쓴 이용자만 어느 쪽으로도 구제되지 않는다.
일본에도 똑같은 빈칸이 있었다. 다른 것은 메우는 속도였다.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2012년 5월 18일 소비자청이 콤프가챠를 경품표시법이 금지하는 ‘카드 맞추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그 해 안에 정리했고, 지금까지 금지된 상태로 남아 있다. 도박이냐 아니냐를 끝까지 따지는 대신, 문제가 되는 형태를 지목해 목록에 넣었을 뿐이다. 한국은 같은 일에 14년이 걸렸다.
그래서 이 장의 결론은 이렇다. 빈칸 없는 목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목록보다 먼저 나타나고, 명확하게 쓸수록 그 옆으로 나가는 길도 분명해진다. 목록을 완벽하게 만들자는 목표는 애초에 달성될 수 없다.
그렇다고 앞 장의 요구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미리 쓰는 것은 여전히 해야 하고, 거기에 하나가 더 붙어야 한다. 빈칸은 반드시 생기므로, 빈칸이 생겼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까지 미리 정해두어야 한다.
일본과 한국을 가른 것이 정확히 그 지점이다. 빈칸이 생긴 건 양쪽 다 같았다. 갈린 것은 그걸 메우는 데 걸린 시간과, 그 시간 동안의 손해를 누가 냈느냐였다. 한국에서는 14년치 5500억을 이용자가 냈고, 규제자는 아무것도 내지 않았다.
그러니 물어야 할 것이 바뀐다. 목록을 얼마나 완벽하게 쓸 것인가가 아니라, 목록에 빈칸이 남아 있는 동안 그 비용을 누가 지게 할 것인가다.
8. 진짜 변수 - 모호함의 비용을 누가 지는가
지금 한국에서 그 답은 하나로 정해져 있다. 전부 시도하는 쪽이 진다. 타다는 자기 돈으로 4년을 싸워 이겼지만 그 사이 서비스는 죽었다. 로톡도 이겼지만 이기고 나서 직원 절반을 잃었다. 무죄 판결은 손해를 복구해주지 않는다. 규제자는 빈칸을 남긴 것에 대해 아무 비용도 치르지 않았다.
반대로 설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26년, 그 지역의 통상 임금보다 적게 주면 처벌한다고 해놓고 정작 그 통상 임금이 얼마인지는 정해두지 않은 오클라호마주 법을 무효로 선언했다. 기준은 이랬다. 보통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 그 뜻을 추측해야만 하는 법은 적법절차의 첫 번째 요건을 결여한다. 여기서 모호함은 규제받는 쪽이 알아서 조심해야 할 사정이 아니라, 규제 자체를 무효로 만드는 하자다. 빈칸의 비용을 빈칸을 남긴 쪽이 물게 하는 구조다.
같은 빈칸에서 출발해도 비용이 어디로 흐르느냐에 따라 그다음이 완전히 갈라진다.
한쪽은 네 칸 만에 끝나고 다른 쪽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답이다. 비용을 규제자가 지면 고칠 사람이 정해져서 경로가 종료되고, 시도하는 쪽이 지면 그 부담이 다음 시도자에게 계속 넘어가면서 행동이 위축된다.
비용을 규제자 쪽으로 옮기려는 장치가 한국에 없는 것은 아니다. 금융위와 금감원에는 비조치의견서 제도가 있다. 앞으로 하려는 행위가 기존 법령으로는 적법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울 때, 나중에 제재할지 여부를 미리 회신해주는 제도다. 취지는 정확히 이 글의 문제를 겨냥한다. 다만 금융위 스스로 밝히듯 이것은 행정해석의 일종이라 최종적인 법적 구속력이 없다. 더 근본적인 한계는 따로 있다. 이 제도가 답해주는 것은 현행 법령에 비추어 제재할지 여부다. 법령 자체가 바뀌면 회신은 근거를 잃는다. 타다에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 정확히 그것이었으므로, 이 장치는 타다형 위험에는 애초에 대응하지 못한다.
규제 샌드박스도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구조적으로 포지티브 규제의 연장이다. 금지 목록을 고치는 게 아니라 개별 사업자에게 예외를 허가해주는 방식이고, 실증특례는 2년에 2년 연장으로 최대 4년이며 그 안에 법령이 정비되지 않으면 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 그리고 실적이 그 성격을 드러낸다. 2019년 도입 이후 1752건이 승인되는 동안 실제 규제 개선으로 이어진 것은 373건이다. 나머지는 법이 바뀌어서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허가를 받아 한시적으로 열려 있는 상태다. 허가를 받아야 시작할 수 있고, 기한이 끝나면 다시 불법이 될 수 있는 자유는 자유의 임대차에 가깝다.
두 장치를 이 글의 질문 하나로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 장치 | 사업자가 해야 하는 일 | 무엇을 보장하나 | 무엇을 보장하지 못하나 |
|---|---|---|---|
| 비조치의견서 | 시작 전에 물어본다 | 현행 법령 기준으로 제재하지 않겠다는 회신 | 행정해석이라 최종 구속력 없음. 법령이 바뀌면 회신도 근거를 잃음 |
| 규제 샌드박스 | 허가를 신청한다 | 최대 4년의 한시적 예외 | 승인 1752건 대비 법령 정비 373건. 정비가 안 되면 기한 뒤 다시 불법 |
| 사후 입법(타다·로톡) | 없음 | 없음 | 적법 판단을 받아도 그 뒤에 쓰이는 규칙 앞에서는 소용없음 |
세 줄을 관통하는 것은 같다. 어느 장치도 규칙이 나중에 바뀌는 위험을 규제자 쪽으로 옮겨놓지 않는다. 물어보는 것도, 허가를 받는 것도, 소송을 버티는 것도 전부 시도하는 쪽의 일이다.
방향이 맞는 형태는 오히려 R&D 개혁 논의에서 나왔다. 신뢰를 기반으로 자율을 주되, 무작위 조사로 적발하고 제재는 엄격하게 한다는 설계다. 여기서 핵심은 관대함이 아니다. 제재의 조건이 사전에 공표되어 있다는 점이다. 소수를 통제하려고 다수에게 굴레를 씌우는 대신, 굴레를 풀고 걸렸을 때의 대가를 미리 정하는 것이다.
망분리 글에서 정리한 문장도 같은 축이다. 감수하기로 한 위험은 조직이 진다. 뚫리면 담당자 개인 책임이라는 규칙이 살아 있는 한, 아무리 좋은 체계를 깔아도 아무도 쓰지 않는다. 개인에게 사후 귀책을 몰아두는 것은 사실상 금지 목록을 백지로 두고 나중에 채우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9. 그래서 결국 누가 시도할 수 있는가
왜 하필 창의에서 이 문제가 치명적인가. 창의는 애초에 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두는 수이기 때문이다.
좋은 생각인지는 나중에만 알 수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2국에서 둔 37수는 인간이 둘 확률이 1만분의 1로 계산된 수였고, 프로기사 대부분이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두는 순간에는 그게 좋은 수인지 아무도 몰랐다는 뜻이다. 그 수가 명수가 된 것은 둘 때가 아니라 게임이 끝났을 때였다. 새로운 생각에는 미리 채점해주는 장치가 없다. 창의란 정의상 채점표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리에서 두는 수다.
그러니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은 이미 불확실성 하나를 지고 출발한다. 이게 옳은지는 나중에야 안다는 것. 여기에 합법성까지 나중에 정해지면 같은 불확실성을 두 번 지게 된다. 결과가 옳았는지도 나중에 알고, 그게 합법이었는지도 나중에 아는 상태다.
둘을 동시에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아이디어가 좋은 사람도, 실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다. 나중에 문제가 됐을 때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다.
법무팀이 있는 회사, 유권해석을 미리 받아볼 창구가 있는 조직, 4년짜리 재판을 버틸 현금을 가진 쪽만 네거티브 규제의 수혜자가 된다. 개인과 신규 진입자는 형식적으로 열려 있는 공간에서도 움직이지 못한다. 규제 완화가 발표될 때마다 기존 대기업이 먼저 움직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들이 더 창의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들만 빈칸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총량으로 얼마나 되는지도 측정돼 있다. 아산나눔재단이 누적 투자액 기준 글로벌 100대 유니콘의 사업모델을 한국에 그대로 옮겨봤더니 2017년 조사에서 56개가 온전한 사업을 할 수 없었고, 5년 뒤인 2022년 재조사에서도 55개였다. 5년 동안 한 개 줄었다. 그 사이 한국은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고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을 여러 차례 선언했다. 선언은 목록을 건드리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이 몰린 사업 모델의 절반 이상이, 여기서는 원래 형태 그대로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AI가 능력을 평준화한 뒤 마지막까지 남는 자산은 지식과 사람과 접근권한인데, 이 셋 중 접근권한만이 복제되지 않는다. 그 결론을 이 글에 겹치면 하나가 추가된다. 금지 목록이 사후에 정해지는 사회에서는 자유 자체가 접근권한의 한 형태가 된다. 무엇을 해도 되는지 미리 물어볼 수 있는 창구, 틀렸을 때 감당할 체력, 그 방에 앉을 자격. 이것들이 곧 시도할 권리다.
그러니 이 사회에서 시도할 권리는 능력이 아니라 자격으로 배분된다. 창의력이 모자라서 새로운 것이 안 나오는 게 아니라, 창의력을 써도 되는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둘 중 하나는 우리가 얹은 것이다
여기서 결정적인 구분이 하나 남는다. 두 불확실성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옳은지 나중에 아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래가 오기 전에 채점할 방법은 세상에 없다. 반면 합법인지 나중에 아는 것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목록을 미리 쓰고, 바꿀 때는 바꾸는 방식을 먼저 공표하고, 빈칸의 손해를 시도한 쪽이 아니라 비워둔 쪽이 지게 하면 사라진다. 자산이 솥에 글자를 새겨 한 일이 정확히 그것이었다.
사회가 창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이것뿐이다. 어쩔 수 없는 불확실성은 그대로 두고, 우리가 얹은 것만 걷어내는 것. 그런데 지금은 정확히 반대로 하고 있다. 결과에 대한 위험은 개인에게 전부 떠넘기면서, 규칙에 대한 위험까지 얹는다.
숙향은 법을 공개하면 정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정나라는 그 뒤로 161년을 더 갔고, 정작 그렇게 말했던 숙향의 진나라가 한 해 먼저 사라졌다.
그래서 결론은 하나다. 창의력을 키우고 싶으면 교육이 아니라 목록을 고쳐야 한다. 하면 안 되는 것을 미리 적을 것. 바꿀 때는 바꾸는 방식을 먼저 공표할 것. 목록이 비어서 생긴 손해는 비워둔 쪽이 물 것. 이 셋이면 된다.
셋 다 예산도 기술도 필요 없다. 2500년 전에 청동 솥 하나로 끝난 일이기 때문이다. 안 하는 이유는 못 해서가 아니라, 목록이 비어 있을 때 편한 사람이 그걸 채울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