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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한국의 석유인가 - 자원의 저주는 지질이 아니라 배정된 자리에서 온다

호주, 캐나다, 러시아, 브라질은 땅도 자원도 넘치는데 세계적인 공장이 없다. 흔한 설명은 '자원의 저주'다. 자원을 팔아 통화 가치가 오르면 제조업 수출이 죽는다는 것. 맞는 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미국이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면서 제조 최강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원이 없고 인구가 14억인 인도는, 자원의 저주를 피했는데도 끝내 중국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제조 강국을 가른 진짜 변수는 자원도 땅도 인구도 아니다. 마지막 병목은 지주제와 신분제와 가부장제를 갈아엎어 균질한 대중을 만들어낸 '고통스러운 사회 개조'를 통과했느냐였다. 중국은 잔혹한 혁명으로 그 문을 지나왔고, 인도는 아직 그 앞에 서 있다. 그리고 그 문을 일찍 통과한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가총액의 절반을 넘긴 나라가 되어 지금 반대쪽 문 앞에 서 있다.

땅도 자원도 넘치는데, 왜 공장이 없을까

붉은 철광석을 계단식으로 깎아 내려간 노천광산 - 거대 자원국의 수출은 이런 1차 산품이 떠받친다

호주, 캐나다, 러시아, 브라질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땅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축에 들고, 지하자원은 넘치고, 인구밀도는 세계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얼핏 보면 부자 나라의 조건을 두루 갖춘 셈이다. 그런데 이 나라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전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글로벌 제조 기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수출의 중심은 철광석과 석유, 곡물과 목재 같은 원자재와 1차 산품이 차지한다.

여기서 말하는 ‘거대 자원국’을 좀 더 엄밀히 정의하면 세 가지 기준을 만족하는 나라다. 첫째 국토 면적이 세계 12위 안에 들고, 둘째 인구밀도가 세계 평균의 절반 이하이며, 셋째 원자재와 1차품이 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나라로는 러시아, 캐나다, 브라질, 호주를 비롯해 아르헨티나, 카자흐스탄, 알제리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경제 규모와 영향력이 다른 네 나라, 즉 러시아, 캐나다, 브라질, 호주가 특히 전형적이다. 이들은 모두 국토 넓이 세계 6위권에 들면서, 1㎢당 인구가 호주 약 3명, 캐나다 4명, 러시아 9명, 브라질 25명에 불과하다.

모든 축복을 받은 것 같은 이 나라들이 왜 제조업만은 갖지 못했는가. 이 질문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 질문은 남의 것이 아니다. 한국은 팔 자원이 없어서 제조업 말고는 길이 없었던 나라이고, 그 결핍 덕분에 이 저주를 겪을 일조차 없었다. 그런데 지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합치면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을 넘고, 국가는 ‘AI 강국’이라는 이름으로 두 회사에 자원을 몰아주고 있다. 자원의 저주가 땅에서 캐는 나라만 걸리는 병인지는, 이 글의 마지막에서 다시 묻게 된다.

자원의 축복은 어떻게 제조업의 저주가 되는가

이유는 여섯 가지로 나뉜다. 하나씩 보면 서로 다른 얘기 같지만, 실은 모두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첫째는 경제학에서 ‘네덜란드병’이라 부르는 현상이다. 1959년 네덜란드가 천연가스전을 발견한 뒤 자원 수출로 큰돈을 벌었지만, 통화 가치가 지나치게 오르는 바람에 오히려 전통 제조업이 망가진 데서 나온 말이다. 원리는 단순하다. 자원이 대량 수출되면 외화가 쏟아져 들어와 통화 가치가 가파르게 오른다. 그러면 품질은 그대로인데 자국 제품의 해외 판매 가격만 환율 탓에 비싸져 수출길이 막힌다. 반대로 국내에는 값싼 수입품이 밀려들어와 내수 공장까지 문을 닫는다. 자원은 제조업의 원료이면서 동시에 가격 경쟁력을 무너뜨리는 역설적 존재인 셈이다.

둘째는 넓은 국토가 결코 큰 시장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조업에서 중요한 것은 국토의 크기가 아니라 경제적 밀도다. 제조업은 많이 팔수록 공장 건설비와 연구개발비를 더 많은 제품에 나눠 단가를 낮추는 ‘규모의 경제’ 산업이다. 그러려면 쏟아지는 물건을 소화할 소비 시장이 배후에 있어야 하는데, 거대 자원국은 인구가 적어 내수가 작고, 그 적은 인구마저 수천 km 떨어진 거점 도시에 흩어져 있다. 그래서 제조업은 넓은 땅이 아니라 한국이나 대만처럼 좁은 땅에 수천만 명이 빽빽하게 모인 촘촘한 시장을 선호한다.

셋째는 국토가 넓을수록 물류비가 폭증한다는 점이다. 제조업은 원료를 가져오고 부품을 만들고 조립한 뒤 항만으로 보내는 긴 공급망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야 한다. 철광석은 수천 km를 달려 제철소로 가고, 강판은 다시 자동차 공장으로, 완성차는 또 항만까지 실려간다. 거리가 멀수록 운송비와 시간과 재고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반면 자원 산업은 거리가 멀어도 괜찮다. 철광석이나 원유는 천천히 대량으로 옮겨도 가치가 변하지 않고 단가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자원 산업이 돈과 사람을 선점한다는 점이다. 자원 산업은 매장량만 확보되면 수익성이 높아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을 줄 수 있다. 게다가 광산이나 유전은 임금이 올라도 해외로 옮길 수 없어, 기업은 높은 임금을 기꺼이 감당하며 사람을 모은다. 그 결과 우수한 인재와 자본이 전부 광산과 에너지로 빨려 들어가고, 제조업은 만성적인 인력난과 자금난에 시달린다. 반대로 제조업은 인건비가 오르면 더 싼 나라로 공장을 옮겨버리므로, 애초에 자원국에 남을 이유가 없다.

다섯째는 세계 제조업 벨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현대 제조업은 한 나라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부품은 아시아에서 만들고 조립은 북미에서 하며 소비는 유럽에서 일어나는 식으로 전 세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돌아간다. 그래서 제조 중심지나 핵심 무역로에 바짝 붙어야 유리한데, 호주와 브라질은 주요 시장과 대양 건너 멀고, 러시아는 산업과 시장이 동서로 분산돼 있으며, 캐나다는 미국 밑에 있으나 독자적 경쟁력은 유지하기 어렵다.

그리고 여섯째, 앞의 다섯이 모두 하나로 수렴하는 지점이 바로 ‘산업 클러스터’다. 우리는 제조업이라 하면 커다란 공장 하나를 떠올리지만, 현대 제조업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 자동차 한 대에 3만 개가 넘는 부품이 들어가고, 철강·전자·화학·물류·소프트웨어 수천 개 협력사가 거미줄처럼 얽혀 한 몸처럼 움직여야 겨우 한 대가 나온다. 이 생태계 안에서는 새 부품을 그날 옆 공장에서 시제품으로 만들어보고, 문제가 생겨도 몇 시간 안에 해결한다. 이런 속도와 밀도는 아무리 큰 자본을 부어도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다. 거대 자원국은 돈과 사람이 광산·유전에만 쏠리고 협력사는 수천 km 떨어져 있어, 공장을 세워도 그 주변에 클러스터가 형성되지 않는다. 공장은 고립된 섬이 되고,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떨어진다.

결국 제조업은 공장을 짓는 산업이 아니라 수천 개의 기업과 사람과 기술이 함께 사는 생태계를 만드는 산업이고, 앞선 다섯 이유가 합쳐진 ‘클러스터 부재’야말로 거대 자원국이 제조 강국이 되지 못한 근본 답이다.

그래서 나라들은 갈라졌다 - 포기와 도전

이 구조적 한계 앞에서 네 나라는 서로 다른 길을 갔다.

2017년 10월, 호주 엘리자베스 공장 라인에서 나온 마지막 홀덴 - 지붕에 'LAST CAR'라 적혀 있다. 70년 자동차 제조사가 이날 끝났다

호주와 캐나다는 제조업을 내려놓는 쪽을 택했다. 호주의 선택 뒤에는 쓰라린 역사가 있다. 원래 호주는 자국 완성차 브랜드 홀덴을 보유하고 도요타·포드 같은 글로벌 기업의 공장이 돌아가던 어엿한 자동차 제조국이었다. 홀덴은 호주인에게 국가적 자존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인구는 적고 임금은 높고 내수는 작다는 거대 자원국의 약점을 모두 안고 있었다. 결국 정부는 보조금을 중단했고, 2013년부터 포드와 도요타의 현지 공장이 순차적으로 문을 닫았으며, 2017년 홀덴의 애들레이드 공장을 마지막으로 70년 자동차 제조 역사가 종말을 고했다. 수만 명의 숙련 노동자가 길거리로 나앉은 잔혹한 구조조정이었다. 그러나 호주는 이 실패 뒤 제조업에 대한 미련을 접고, 자원 수출을 중심으로 그 위에 금융·관광·고부가가치 서비스를 얹어 새로운 선진 경제 체질을 완성했다.

캐나다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자체 브랜드를 키우는 대신, 바로 옆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조 공급망에 자신을 편입시켰다. 미국 자동차·항공기 회사들이 국경 가까이에 공장을 세우면 캐나다가 부품과 중간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이런 기업들은 살아남아 지금 캐나다 제조업의 중심을 이룬다. 대가는 종속이었다. 미국의 경기 변동이나 통상 정책에 나라 전체 제조업의 운명이 좌우되게 됐다. 하지만 이것은 캐나다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호주와 캐나다의 방식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거대한 영토가 주는 한계를 직시하고, 제조업이라는 하나의 산업에 집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러시아와 브라질은 정반대 길을 갔다. 이들은 제조업의 구조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자원만 파는 나라가 아니라 완제품까지 만드는 산업 국가를 꿈꿨다. 러시아는 냉전 시대부터 이어진 군수 중공업과 항공우주 기술을 핵심 삼아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려 했고, 브라질은 막대한 내수를 무기로 자동차·항공기·철강 산업에 집중 투자했다. 국가가 뒤를 받치고 자본을 쏟으면 한계를 돌파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통화 가치가 급등해 제조업 수출이 타격을 받고, 내리면 국가 경제 전체가 흔들리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국토에 비해 부족한 인프라는 부품 하나를 나르는 데도 막대한 비용을 요구했다. 여기에 러시아는 국제 제재와 낮은 외국인 투자가, 브라질은 복잡한 세제와 규제가 겹치며 끝내 산업 클러스터를 키워내지 못했다. 브라질의 항공기 제조사 엠브라에르처럼 특정 분야에서 성공한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 독일·일본·한국 같은 제조 강국과는 여전히 격차가 크다.

그런데 밀집은 비결이 아니라 결과다

여기까지 오면 자연스러운 반문이 생긴다. 세계에서 국토가 가장 넓고 자원도 무궁무진한 미국과 중국은 어떻게 제조 강국이 됐는가.

익숙한 답이 있다. 두 나라는 넓은 땅 전체를 제조업으로 채우려 한 게 아니라, 특정 지역에 사람과 산업과 공급망을 극도로 밀집시켰다는 것이다. 미국은 오대호·남부·서부 해안의 산업지대에, 중국은 동부의 거대 도시권에 압축했다. 거대한 영토 안에 한국이나 대만 같은 초고밀도 제조 국가를 인위적으로 박아넣고, 거기에 압도적 인구와 내수라는 치트키를 결합했다는 설명이다.

그럴듯하지만 여기서 논리가 무너진다. “특정 지역에 밀집시켰다”는 것은 비결이 아니라 결과를 다시 말한 것에 불과하다. 브라질도 상파울루-리우 축에, 러시아도 모스크바 일대에, 인도도 뭄바이·벵갈루루에 밀집시키려고 수십 년째 애쓰고 있다. 다들 밀집시키려 하는데 왜 중국만 됐는가. “밀집하면 된다”는 답은 이 질문을 그대로 남겨둔다. 밀집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무언가가 그것을 만들어낸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찾아야 이야기가 완성된다.

첫 번째 진짜 변수 - 자원은 ‘양’이 아니라 ‘인구 대비 비중’이다

첫 실마리는 자원 자체에 대한 오해를 푸는 데 있다. 흔히 ‘자원이 많으면 제조업을 안 한다’고 하지만, 정확히는 자원의 절대량이 아니라 그 자원이 그 나라의 수출과 통화에서 차지하는 비중, 곧 ‘자원 의존도’가 문제다. 그리고 이 의존도를 결정하는 가장 큰 입력값이 바로 인구 대비 자원, 즉 1인당 자원이다.

1인당 자원이 낮으면 자원 의존도가 낮고, 통화가 자원에 끌려 올라가지 않으니 네덜란드병 스위치가 꺼진 채로 출발한다. 중국이 정확히 그런 경우다. 중국은 인구 대비 자원이 빈약해 석유와 철광석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그러니 네덜란드병에 걸릴 일이 없었고, 외화를 벌려면 제조업 수출 말고는 살길이 없었다. 반대로 러시아와 브라질은 자원이 넘쳐 통화가 자원에 끌려 올라가는 저주에 정면으로 걸렸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드러난다. 중국은 자원의 저주를 반박하는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그 법칙을 가장 완벽하게 증명하는 사례다. “자원이 없어서 제조업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 자원의 저주를 뒤집으면 자원의 결핍이 축복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미국이 반례다 - 규모가 자원의 저주를 이긴다

그런데 이 변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결정적 반례가 있다. 미국이다. 미국은 셰일 혁명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고 농산물 대국이기도 하다. 1인당으로 따져도 자원이 결코 적지 않다. 그런데도 네덜란드병에 걸리기는커녕 제조 최강국을 유지한다. 왜인가.

이유는 미국 경제가 워낙 크고 다변화돼 있어서, 자원이 통화를 지배할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자원 수출이 아무리 많아도 거대한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희석된다. 여기에 달러라는 기축통화의 지위, 그리고 자원이 수출용 외화벌이가 아니라 자국 제조업의 투입재로 내부 소비된다는 점도 작용한다.

그러면 이런 그림이 나온다. 중국은 자원이 없고 규모가 거대해서 제조 강국이 됐고, 미국은 자원이 많지만 규모가 거대해서 제조 강국이 됐다. 자원은 두 나라가 정반대인데 둘 다 성공했다. 유일한 공통분모는 규모다. 결론은 이렇게 정리된다. 1인당 자원은 ‘중간 체급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변수다. 자원 없는 한국·일본·대만은 제조로 가고, 자원 많은 호주·사우디는 자원으로 간다. 하지만 미국·중국처럼 규모가 초거대해지면 규모가 그 위에 올라서서 자원 변수를 눌러버린다. 자원이 없으면 제조로 몰아붙이고, 자원이 있어도 그 저주를 희석시켜 제조를 지켜낸다.

즉 규모는 자원보다 상위의 변수일 수 있다. 규모가 하는 일은 명확하다. 내수만으로 규모의 경제를 완성하고, 섬유부터 반도체까지 전 산업 사슬을 한 나라 안에 담고, 연안 임금이 오르면 공장을 내륙으로 옮기며 저임금 배후지를 나라 안에 계속 품고, 시장의 크기 자체를 기술 이전을 강제하는 협상 지렛대로 쓴다. 이 모두가 대륙급 규모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인도라는 수수께끼 - 규모도 자원도 갖췄는데 왜 안 되나

그런데 규모를 최상위 변수로 놓는 순간,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인도다. 인도는 인구 14억으로 규모가 거대하고, 1인당 자원도 중국처럼 빈약해 자원의 저주도 없다. 앞의 두 변수를 모두 통과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도는 중국이 되지 못했다. 규모와 자원만으로는 인도의 실패가 설명되지 않는다. 남은 변수가 있다는 뜻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설은 산아제한이다. 중국은 한 자녀 정책으로 출산율을 눌러 아이 한 명당 교육 투자를 집중시킨 반면, 인도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이 가설은 곧 무너진다.

산아제한이 비결이었을까 - 아니다, 그건 가속 페달이었다

한 자녀 정책이 인구배당을 만든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이 비결이라면 설명되지 않는 게 있다. 한국·대만·일본은 강제 산아제한 없이도 똑같이 출산율이 급락하고 제조 강국이 됐다. 여성이 교육받고 도시로 나가 일하기 시작하면 출산율은 저절로 떨어진다. 산아제한은 ‘여성 교육과 도시화가 자연히 만들 결과’를 국가가 강제로 앞당긴 것이지, 없던 것을 만든 게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그것이 부메랑이 됐다. 한 자녀 정책 탓에 중국은 초고속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 성비 불균형에 시달리고, 인도는 오히려 세계 최대 인구에 젊은 인구구조로 이제 막 인구배당이 시작됐다. 산아제한이 비결이었다면 장기적으로는 독이 된 셈이니, 근본 변수로 보기는 어렵다.

인도의 교육열은 진짜다 - 문제는 교육의 ‘모양’

그렇다면 교육의 질일까. 여기서 반박이 나온다. 인도의 교육열은 오히려 미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인도 최상위 교육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가 모두 인도계다. 그런데도 왜인가.

핵심은 교육의 ‘질’이 아니라 ‘모양’에 있다. 인도의 교육은 위가 뾰족한 엘리트 교육이다. 최상위 1%는 세계 최고인데 밑바닥 문해율과 기초 교육은 취약하다. 이 교육열의 본질은 ‘내 자식을 명문 공대에 보내 미국으로 탈출시키는 계층 상승 사다리’다. 반면 중국의 교육은 아래가 두꺼운 대중 교육이다. 천재는 인도보다 적을지 몰라도, 읽고 쓰고 계산하고 매뉴얼대로 정밀작업 하는 균질한 중간 숙련층이 압도적으로 두껍다.

그런데 제조업이 먹고사는 것은 천재 몇 명이 아니라, 조립라인과 품질관리를 해내는 수억 명의 균질한 중간 숙련 노동자다. 인도의 교육열은 개인의 탈출 전략이라 이 두꺼운 대중 노동력으로 전환되지 않았고, 중국의 교육은 처음부터 국가의 노동력 양성이었다.

숨은 진짜 변수 - 여성

그리고 산아제한보다, 교육의 모양보다 더 근본적인 변수가 하나 있다. 여성이다.

중국의 여성 동원 선전 포스터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떠받친다(妇女能顶半边天)' - 구호 하나가 노동력 풀을 두 배로 만들었다

중국은 여성 문해율이 높고 여성 노동참여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마오쩌둥의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떠받친다”는 구호대로, 공장 노동력의 절반이 여성이었다. 반면 인도는 여성 노동참여율이 20%대에 불과하고 그마저 떨어지는 중이다. 문화와 종교와 안전 문제로 여성이 집에 머문다.

효과는 두 방향으로 어마어마하다. 중국은 여성을 다 가동해 노동력 풀 자체가 인도의 두 배였고, 동시에 여성 교육과 노동참여가 출산율을 자연스럽게 떨어뜨렸다. 그러니 “산아제한이 출산율을 낮췄다”보다 “여성을 교육시켜 공장에 넣었더니 노동력이 두 배가 되고 출산율은 알아서 떨어졌다”가 훨씬 정확한 인과다. 산아제한은 이 과정을 국가가 강제로 밟은 페달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국가가 그것을 ‘밀집’으로 바꿨는가

여성과 대중 교육이 ‘사람’의 문제라면, 그것을 실제 공장 지대로 압축하는 것은 ‘국가 역량’의 문제다. 규모와 자원을 다 갖춘 인도가 그래도 막히는 지점이 여기다.

물소가 지나다니던 1980년대 초의 선전(위)과 오늘의 선전(아래) - 토지가 국유였기에 가능했던 40년

첫째는 토지와 인프라다. 중국은 모든 토지가 국유라 산업단지·항만·고속철·전력을 저항 없이 초고속으로 깔았다. 어촌 선전을 40년 만에 메가시티로 밀어붙인 것이 상징적이다. 인도는 토지가 사유이고 민주주의라 발전소 하나, 고속도로 하나에 수년에서 수십 년씩 소송이 걸린다. 앞서 말한 물류비와 밀도의 문제를 중국은 국가가 힘으로 풀었고 인도는 아직 풀지 못했다.

둘째는 분절된 시장이다. 인도는 공용어만 22개이고, 2017년 GST(통합간접세) 도입 전에는 주 경계마다 세금이 달라 트럭이 몇 시간씩 멈췄다. 규모는 큰데 내부가 조각나 규모의 경제가 반감됐다.

셋째는 성장 경로 자체다. 인도는 제조업을 건너뛰고 IT 서비스, 곧 소프트웨어와 콜센터로 바로 도약했다. 이것이 상위 영어 엘리트와는 맞물렸지만, 수억 명의 저숙련 인구를 흡수하지는 못했다. 중국은 제조업 라인으로 농민 수억을 도시 노동자로 끌어올린 반면, 인도는 IT로 엘리트 수백만만 태우고 나머지는 여전히 농업과 비공식 부문에 남았다. 중국은 대중을 끌어올리는 성장(bottom-heavy)을, 인도는 엘리트만 끌어올리는 성장(top-heavy)을 한 것이다.

마지막 병목 - 고통스러운 ‘구체제 청산’

이 모든 차이의 밑바닥에는 하나의 근본 변수가 깔려 있다. 근대적 대중 제조국가가 되려면, 그 전에 전근대적 기득권 구조를 한 번은 갈아엎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칭하이성 마을의 토지개혁 회의 - 주판과 장부를 펼쳐놓고 지주의 땅을 갈랐다. 이 토지 국유화가 훗날 산업단지를 저항 없이 수용하는 기반이 된다

중국은 그 청산을 잔혹한 방식으로 통과했다. 마오의 혁명은 경제적으로는 재앙이었지만(대약진 대기근으로 약 3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 사회구조의 측면에서는 구체제를 완전히 백지로 만들었다. 토지개혁으로 지주 계급을 물리적으로 제거했고, 이 토지 국유화가 훗날 산업단지를 저항 없이 강제 수용하는 기반이 됐다. 문화대혁명은 전통 가부장제와 종족 네트워크를 폭력적으로 부쉈다. 전족과 축첩을 폐지하고 자유혼인법을 도입하며 여성을 노동에 동원했다. 앞서 말한 ‘노동력 두 배’의 뿌리가 바로 여기다. 학계에서 흔히 이렇게 요약한다. “마오가 땅을 청소했고, 덩샤오핑이 그 위에 건설했다.” 개혁개방이 성공한 것은, 저항할 기득권이 이미 사라진 평평한 운동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는 그 문을 지나지 않았다. 1947년 독립은 혁명이 아니라 권력 이양이었다. 영국을 몰아냈지만 내부의 카스트·지주제·가부장제·종교 위계는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민주주의를 얹었다. 카스트가 온존해 노동 분업과 통혼이 묶여 균질한 노동력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지주들이 의회와 주정부를 장악해 토지개혁이 유명무실해졌으며(그래서 지금도 토지 수용이 지옥이다), 여성해방 혁명이 없어 여성 노동참여율이 바닥에 머물렀다. 결정적인 것은 민주주의라 이 모든 기득권이 ‘표’로 정치에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인디라 간디가 비상사태(1975~77) 아래 강제 불임수술까지 밀어붙이며 위에서 개혁하려다 다음 선거에서 축출된 사건이 이를 상징한다. 민주주의가 강제 개혁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니 인도와 중국의 갈림길은 산아제한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구체제 청산을 거쳤느냐에 있다. 중국은 잔혹한 혁명으로 그것을 통과했고, 인도는 민주적 타협으로 그것을 미뤘다.

다만 - 혁명이 필수는 아니다

여기서 논리를 그대로 밀면 “제조 강국이 되려면 유혈혁명이 필요하다”가 되는데, 그것은 아니다. 한국·일본·대만은 공산혁명 없이도 구체제를 청산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사무라이와 번 체제를 해체했고, 패전 후 미군정이 재벌 해체·농지개혁·여성참정권을 위에서 강제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에 신분제가 붕괴하고 1950년 농지개혁으로 지주제가 철폐됐으며 6·25로 기존 질서가 리셋됐다. 대만은 본토에서 밀려온 국민당이 토착 지주와 무관한 외래 권력이었기에 농지개혁을 단칼에 단행할 수 있었다.

그러니 본질은 방법이 폭력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결과로서 지주제와 신분제를 청산했느냐다. 중국은 그것을 가장 극단적이고 잔혹한 방식으로 했을 뿐이다. 반대 사례도 이 법칙을 증명한다. 필리핀은 아직도 대지주 가문이 정치를 지배해 토지개혁에 실패했고, 라틴아메리카도 식민지 대농장 구조가 온존해 둘 다 산업화가 정체됐다. 배링턴 무어의 고전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이 정확히 이 논지다. 지주와 농민의 관계가 그 나라의 근대화 경로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균형 - 혁명의 비용과 자유의 값

여기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중국의 그 ‘청소’는 3천만 명이 굶어 죽고 문화가 파괴되는 천문학적 비용을 치렀다. 그러니 이것은 “혁명이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혁명이 의도치 않게 산업화의 백지를 만들었다”는 아이러니다. 그 비용은 결코 정당화되지 않는다.

인도의 ‘느림’은 그 폭력을 피한 대가이자, 민주주의와 다원성과 소수자 공존을 지킨 값이기도 하다. 3천만이 굶어 죽지 않았고, 언어와 종교가 불완전하게나마 공존한다. 인도의 느림은 자유의 비용인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뒤집힐 여지도 있다. 중국의 위로부터 동원 모델은 고령화와 과잉투자와 자유 억압으로 한계에 왔고, 인도는 느리지만 유기적으로 격차를 좁히는 중이다. 혁명으로 만든 백지가 영원한 우위인 것은 아니다.

종합 - 제조 강국을 가른 5가지 변수

지금까지의 논의를 상호배타적이고 전체를 포괄하는(MECE) 다섯 변수로 정리할 수 있다. 다섯은 모두 필요조건이라 하나만 빠져도 탈락한다. 따라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가장 희소하고 근본적인 것, 곧 실제로 최종 승부를 가른 병목 순으로 나열한다. 뒤로 갈수록 흔해지고, 앞일수록 나라가 갈린다.

  1. 구체제 청산과 균질한 대중 노동력. 지주제·신분제·가부장제를 갈아엎어, 여성을 포함한 균질한 노동력을 만들었는가. 규모와 자원을 다 갖춘 인도조차 걸러내는 유일한 변수라 가장 결정적이다. 바꾸는 데 한 세대가 걸리는 가장 깊은 층이다.

  2. 국가 동원력. 1번이 ‘사람’을 균질화한다면, 이것은 ‘공간’을 압축한다. 토지를 강제 수용해 인프라를 깔고 행정과 세금을 단일 시장으로 통합하는 힘. 인도가 여기서 또 걸린다.

  3. 대륙급 통합 규모. 내수만으로 규모의 경제를 완성하고 전 산업 사슬을 담을 체급. 미국과 중국의 유일한 공통분모다. 없으면 잘해야 한국 같은 특화형 중견국이다. 러시아·브라질은 여기서 체급 미달.

  4. 자원의 저주로부터의 자유. 자원이 통화와 수출을 지배해 제조업을 죽이지 않았는가. 러시아·브라질을 탈락시키는 변수. 단 규모가 충분하면 미국처럼 우회된다.

  5. 지리와 타이밍. 제조 벨트 근접과 세계화 선점. 승부를 직접 가르지는 않지만 속도와 깊이를 더하는 증폭기. 클러스터는 자기강화되므로 먼저 탄 쪽이 굳힌다.

변수 (결정력 순)미국중국인도러시아·브라질
1. 구체제 청산·균질 노동력O (봉건제 부재+이민)O (혁명)X (카스트·가부장제)
2. 국가 동원력(밀집 전환)OOX (민주·연방·소송)
3. 대륙급 통합 규모OOOX (체급)
4. 자원의 저주 회피O (규모+층 분리)O (자원 없음)OX (자원 과잉)
5. 지리·타이밍OO△ (늦음)X
결과완주완주3·4 통과, 1·2 탈락입구에서 탈락

이 프레임이 MECE인 이유는 두 가지다. 각 변수가 서로 다른 나라를 거른다는 점에서 상호배타적이고(4번은 러시아·브라질을, 1·2번은 인도를 거른다), 다섯을 다 통과해야만 미국·중국이 되며 어느 나라든 정확히 어느 관문에서 떨어지는지 빠짐없이 설명된다는 점에서 전체포괄적이다. 관문을 통과할수록 후보가 줄어드는 깔때기이고, 인도는 가장 좁은 마지막 병목에서 걸린다.

미국과 중국은 왜 다른가 - 같은 목적지, 다른 엔진

두 나라의 공통점은 3번(규모)뿐이고, 나머지는 도달 경로가 정반대다.

자원에서 중국은 자원이 없어서 제조업으로 내몰렸고(강제), 미국은 자원이 많은데도 규모가 그 비중을 희석시킨 데다 캐내는 일을 남에게 맡기고 값을 매기는 자리에 앉아 저주를 비껴갔다(우회). 같은 통과지만 원리가 반대다. 청산에서 중국은 폭력혁명으로 구체제를 부쉈고(인위적·잔혹), 미국은 신대륙이라 부술 봉건제가 애초에 없었고 이민과 시장으로 균질화했다(태생적). 국가 역할에서 중국은 국가가 위에서 강제로 밀집시켰고(보이는 손), 미국은 시장이 밀집을 유도했다(보이지 않는 손, 필요시 국가 개입).

한 줄로 요약하면, 중국은 ‘국가가 강제로 만든 밀도’이고 미국은 ‘규모와 시장이 자연히 만든 밀도’다. 목적지는 같고 엔진이 다르다.

그리고 그런 미국조차 최근 흐름은 거대 영토의 역설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은 한때 효율만 좇아 제조 공급망을 전 세계로 분산시켰고, 그 결과 자국의 전통 제조 생태계가 무너지는 뼈아픈 대가를 치렀다. 최근 미국이 천문학적 보조금을 약속하며 전 세계 공장을 다시 자국으로 밀집시키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세계 최강국이라도 한 번 깨진 클러스터는 국가의 미래를 위협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생태계는 만드는 데 수십 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고, 한 번 무너지면 그 어떤 돈과 권력으로도 쉽게 되돌릴 수 없다.

인도는 왜 중국이 될 수 없는가 - ‘속도’의 문제

인도는 재료를 다 갖췄다. 3번 규모와 4번 자원 중립을 통과한다. 그래서 지구상 유일한 ‘차기 중국’ 후보다. 그런데 병목에서 막힌다. 1번에서는 카스트·가부장제·지주제가 온존해 균질한 대중 노동력이 만들어지지 않고, 2번에서는 민주주의·연방제·토지 소송으로 밀집 전환이 느리다. 게다가 5번마저 놓쳤다. 세계화 황금기는 지났고 탈세계화와 리쇼어링의 시대에 뒤늦게 진입했다.

핵심은 인도가 이것을 혁명 없이 민주적으로 풀려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확히는 “중국이 될 수 없다”가 아니라 “중국의 속도로는 될 수 없다”다. GST로 시장을 통합하고, 여성 참여를 늘리고, 제조 인센티브(PLI)를 밀며 1·2번을 느리게 개선하는 중이다. 애플이 아이폰 생산을 인도로 옮기는 것도 그 신호다. 인도는 다른 속도, 다른 모델로 갈 것이다.

그래서 제조 강국은 ‘사회 개조’의 성공 여부다

미국과 중국은 넓은 땅에 특정 지역을 밀집시켜 예외가 됐다. 하지만 밀집은 결과일 뿐이다. 그 밀집을 만들려면 먼저 구체제를 청산해 균질한 대중을 만들고, 국가가 그것을 공간에 압축하며, 그 위에 대륙급 규모와 자원 중립성이 받쳐줘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이 다섯을 정반대 경로로 완주했고, 인도는 재료를 갖추고도 병목에서 걸렸으며, 러시아와 브라질은 입구에서 탈락했다.

결국 제조 강국을 만드는 것은 땅도 자원도 아니다. 넓은 국토는 시장을 조각내는 장애물이고, 풍부한 자원은 통화와 인재를 왜곡하는 저주다. 진짜 조건은 좁은 곳에 사람과 부품과 기술이 촘촘히 얽힌 밀도이며, 그 밀도를 만들려면 전근대적 기득권 구조를 갈아엎은 고통스러운 사회 개조를 통과해야 한다. 중국은 그것을 잔혹한 혁명으로 지나왔고, 미국은 봉건제 없는 신대륙에서 자연히 얻었으며, 인도는 아직 그 문 앞에 서 있다. 제조업의 지도는 자원의 지도가 아니라, 그 나라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갈아엎었는가의 지도인 것이다.

사고실험 - 내일부터 중동 석유를 원화로만 살 수 있다면

어느 날 아침 사우디와 UAE와 이라크가 선언한다고 해보자. 앞으로 원유 대금은 달러가 아니라 원화로만 받겠다고.

세계가 원화를 구하러 몰려들 것이고, 한국은 자기가 찍는 돈으로 앉아서 기름을 사게 될 것이며, 우리는 부자가 될 것이다. 자원을 쥔 나라가 부자가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휴지가 된 볼리바르 지폐를 엮어 가방과 인형을 만들어 파는 상인 - 세계 1위 확인매장량을 깔고 앉은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 상식대로 된 나라가 없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1위 확인매장량 3,000억 배럴을 깔고 앉은 채 700만 명 넘는 국민이 국경을 넘었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이면서 정유 시설이 모자라 자기가 뽑은 원유를 밖에서 정제해 되사 온다. 사우디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를 벌어들이고도 세계에 내놓을 제조업을 끝내 만들지 못해, 2016년 비전 2030이라는 이름으로 석유에서 탈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예외는 국부펀드로 유입 외화를 해외에 묶어둔 노르웨이 정도다.

석유로 가장 크게 번 나라는 이 명단에 없다.

미국은 팔지 않는 방법으로 벌었다

1945년 2월 14일, 수에즈운하 대비터호에 정박한 USS 퀸시함 갑판. 오른쪽 의자에 앉은 이가 루스벨트, 가운데 검은 망토 차림이 사우디 국왕 이븐 사우드다

미국은 1975년부터 2015년까지 40년간 원유 수출을 법으로 금지했다.

에너지정책보전법으로 자국 원유를 밖에 파는 것을 스스로 봉쇄했다. 그리고 같은 기간 미국은 소비량의 최대 60%를 사들이는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었다.

통화를 밀어올리는 것은 매장량이 아니라 수출 대금이다. 자원의 저주는 자원을 가진 것의 저주가 아니라 자원을 파는 것의 저주이고, 순수입국은 애초에 걸릴 수 없다. 미국은 저주를 이겨낸 것이 아니라 저주가 닿지 않는 자리를 골라 앉았고, 법을 만들어가며 그 자리를 지켰다.

그 자리에서는 실물 석유가 안으로 들어오고 자기가 찍는 종이가 밖으로 나간다. 파는 쪽이 아니니 통화가 자원에 끌려 올라갈 경로가 없다. 내보낸 종이는 국채로 되돌아온다. 값은 뉴욕상업거래소의 WTI가 매기고 파생상품은 월가가 굴린다. 한 방울도 팔지 않으면서 지대만 걷는다. 그리고 실제로 캐내는 지역은 군대로 관리한다.

우연이 아니라 설계였다는 증거는 연대기에 남아 있다. 1945년 퀸시함 위에서 이루어진 오일과 안보의 교환, 1974년 사이먼 재무장관과 사우디 사이의 국채 재순환 합의, 1980년 페르시아만을 무력으로 지킬 사활적 이익이라 못 박은 카터 독트린, 그것을 집행하려 1983년 창설된 중부사령부. 마이클 허드슨은 이미 1972년 『초제국주의』에서 이 구조를 지적했다.

생산은 남에게, 저주도 남에게, 지대는 나에게.

저주는 지질이 아니라 배정된 자리에서 온다

사우디,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이라크, 앙골라, 러시아의 공통점은 땅에서 기름이 나온다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 안에서 캐내는 역할을 배정받았다는 것이다.

캐는 층에 앉으면 걸리고, 값을 매기고 돈을 굴리는 층에 앉으면 걸리지 않는다. 그 위층은 한 번에 한 나라만 앉을 수 있고 무력으로 지켜진다. 앞의 다섯 변수가 한 나라의 안을 묻는 질문이었다면, 이것은 그 나라가 바깥의 위계에서 어디에 놓였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중국이 넘지 못하는 벽도 여기다. 중국은 하루 1,100만 배럴을 사들이는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니 미국과 같은 소비자 자리에 이미 앉아 있다. 다른 것은 하나뿐인데 그게 전부다. 미국은 자기가 찍는 종이로 샀고, 중국은 수출로 벌어온 남의 종이로 산다. 위층으로 올라가려면 자본계정을 열어 산유국이 받은 위안을 굴릴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통제야말로 중국 산업을 키운 도구다. 패권 통화가 되려면 제조업 흑자를 내놓아야 한다. 중국은 다섯 관문을 완주하고도 마지막 층 앞에서 멈춰 있다.

그런데 관문을 통과한 다음에는 무엇이 오는가

한국은 이 다섯 관문을 모두 통과한 드문 나라다. 일제강점기에 신분제가 무너졌고, 1950년 농지개혁으로 지주제가 철폐됐으며, 6·25가 기존 질서를 리셋했다. 국가는 위에서 산업단지와 고속도로와 항만을 밀어붙였다. 대륙급 체급은 없었으므로 전 산업 사슬 대신 몇 개 품목에 특화하는 길을 갔다.

4번 관문은 겪을 일조차 없었다. 팔 자원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결핍이 축복이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세계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냈다.

반도체는 AI 시대의 석유다

카세트에서 웨이퍼를 꺼내는 손 - 이 시대의 광맥은 땅속이 아니라 이 안에 있고, 2년마다 갈아엎지 않으면 매장량이 0이 된다

엔비디아의 매출총이익률은 75% 안팎, ASML은 50%대, TSMC는 50%대 후반이다. 한국 메모리는 호황에 40%를 넘었다가 불황이면 마이너스로 떨어진다.

설계 도구와 IP와 GPU 아키텍처는 미국이, 노광 장비는 네덜란드가, 핵심 소재의 상당 부분은 일본이 쥐고 있다. 한국의 장비 국산화율은 20%대에 머물고, 소재는 2019년에 급소를 찔렸다. 한국이 가진 것은 팹이다. 미국이 생산과 저주를 남에게 넘겼을 때, 반도체에서 그 남이 한국이다.

AI 스택에서 한국이 가진 것은 모델도, 칩 설계도, 설계 도구도, 클라우드도, 응용 계층도 아니다. D램이다. AI 시대의 보크사이트다.

게다가 이 광맥은 산유국의 것보다 가혹하다. 사우디는 시추를 멈춰도 석유가 땅속에 남지만, 한국의 광맥은 멈추는 순간 증발한다. 2년마다 세대를 갈아엎지 않으면 매장량이 0이 되므로 연 수십조원의 설비투자를 영구히 계속해야 한다. 한국은 자원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원이 되었다.

디버프는 같은 환율 안에서 피할 수 없다

앞에서 자원 산업이 돈과 사람을 선점한다고 했다. 수익성이 높으니 높은 임금을 줄 수 있고, 그래서 우수한 인재와 자본이 광산과 유전으로 빨려 들어가 나머지 제조업은 만성 인력난에 시달린다는 것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그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가 급여의 기준가를 정하고, 상위 공대 인재는 계약학과로 흡수되며, 조선과 기계와 화학은 그 임금을 맞추지 못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합치면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을 넘으니 자본도 같은 곳으로 흐른다. 국가는 특별법과 세액공제, 전력과 용수의 우선 배분, 노동시간 규제의 예외로 여기에 가속 페달을 밟는다. 그것을 우리는 ‘AI 강국’으로 가는 길이라 부른다.

같은 환율과 같은 노동시장 안에 있는 한 이 디버프는 피할 수 없다. 한 산업이 압도적으로 벌면 그 나라의 임금과 인재의 값을 그 산업이 정하고, 나머지 산업은 전부 그 기준 아래에서 경쟁해야 한다. 산유국에서 벌어진 일과 원리가 같다.

미국은 같은 문제를 다르게 풀었다. 디버프를 만드는 층 자체를 자기 통화권 밖으로 내보낸 것이다. 캐내는 일은 사우디가, 조립하는 일은 아시아가 맡았고, 미국 안에는 사람을 적게 쓰면서 값을 매기는 층만 남겼다. 엔비디아는 3만 명대 인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가 됐고, 삼성전자는 그 몇 배의 인력과 설비로 사이클을 통째로 뒤집어쓴다. 같은 산업이라도 어느 층에 앉느냐에 따라 국민경제가 받는 디버프가 정반대다.

결론 - 두 번째 사회 개조

그렇다고 한국이 만드는 자리를 버릴 수는 없다. 설계는 남이 하고 제조는 한국이 하는 구조야말로 반도체부터 배터리와 바이오와 조선과 화장품까지를 관통하는 한국의 힘이다. 골드러시에서 금을 캐는 사람은 망해도 곡괭이를 파는 사람은 번다. 한국의 미래는 파운드리에 있다.

그러니 질문은 파운드리를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파운드리인가다. TSMC는 제조업인데도 50%대 마진에 가격 결정권을 쥔다. 대체 불가능한 과점이기 때문이다. 메모리는 같은 제조업이지만 값을 받아들이는 쪽이라 호황에 40%를 넘었다가 불황이면 마이너스로 떨어진다. 디버프의 크기를 정하는 것은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그것의 값을 누가 매기느냐다. 값을 매기는 파운드리는 나라를 끌어올리고, 값을 받아들이는 파운드리는 나라를 사이클에 묶는다.

한국은 없어서 통과했던 그 관문 앞에, 이번에는 자기가 만들어낸 자원을 들고 반대 방향에서 다시 서 있다.

제조 강국은 고통스러운 사회 개조를 통과한 나라였다. 지주제와 신분제와 가부장제를 갈아엎어 균질한 대중을 만들어낸 나라만 공장을 가졌고, 한국은 그 개조를 20세기에 끝냈다.

두 번째 개조에서 갈아엎어야 할 구체제는 첫 번째 개조가 만들어낸 바로 그것이다. 균질한 대중은 남이 정한 규격을 더 싸고 더 빠르게 만드는 데 세계 최강이지만, 규격 자체를 정하지는 못한다. HBM의 규격은 JEDEC이라는 국제 표준화 기구가 정하고 한국은 그 규격을 가장 잘 구현한다. 장비 국산화율이 20%대에 머무는 것도, 세계적인 팹리스가 없는 것도 뿌리가 같다. 잘 만드는 능력과 값을 매기는 능력은 다른 능력이고, 한국은 지금까지 앞의 것만 길러왔다.

그렇다고 미국이 한 대로 할 수는 없다. 미국의 해법은 캐는 일을 남에게 넘기고 값을 매기는 자리에 앉는 것이었는데, 그 자리를 지킨 것은 뉴욕의 거래소가 아니라 기축통화와 페르시아만의 항공모함이었다. 한국에는 둘 다 없다. 원화를 찍어 남의 생산을 사올 수도 없고, 공급망에 함대를 붙일 수도 없다. 미국은 참고할 사례이지 복제할 모델이 아니다.

한국이 쓸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만드는 자리에 남되 대체 불가능해져서, 만들면서 값을 매기는 쪽이 되는 것이다. TSMC가 그것이 가능하다는 증명이다. 제조업인데도 가격 결정권을 쥔 이유는 규모가 아니라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였다. 그리고 대체 불가능은 팹을 더 많이 지어서 오지 않는다. 장비와 소재와 표준과 설계, 즉 남이 우리 없이는 만들 수 없게 되는 지점에서 온다.

그러니 바꿀 것은 지원의 방향이다. 팹을 짓는 데 들어가는 돈은 캐는 층을 더 깊게 파고, 장비와 소재와 표준과 설계에 들어가는 돈은 값을 매기는 층으로 올린다. 지금 국가가 약속한 수천조원은 대부분 앞쪽에 쏠려 있다. 같은 금액을 어느 쪽에 넣느냐가 20년 뒤 한국이 사우디 자리에 있을지 대만 자리에 있을지를 가른다.

자원의 저주는 자원을 줄여서 푸는 병이 아니다. 한국이 반도체를 줄일 이유는 없다. 줄여야 할 것은 반도체가 아니라, 남이 정한 규격을 더 잘 만드는 데 국가의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 그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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