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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채는 왜 줄이면 안 되는가 - 은에서 스테이블코인까지, 화폐 3000년의 본질

"국가부채가 너무 많다"는 말은 거의 상식처럼 통한다. 그런데 정말 부채는 줄여야 좋은 것일까? 이 글의 결론은 정반대다. 국가부채는 나라가 성장하는 만큼 늘어나는 게 정상이고, 줄이려 드는 순간 오히려 경제가 망가진다. 이 역설을 이해하려면 돈이 처음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따라가야 한다. 은에서 금으로, 금에서 신용화폐로, 그리고 지금 트럼프가 밀고 있는 달러 스테이블코인까지 - 화폐의 역사는 결국 "생산성과 돈의 균형"을 맞추려는 3000년의 싸움이었다.

1. 인류 최초의 돈은 금이 아니라 ‘은’이었다 - 그리고 그 이유가 핵심이다

돈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깨야 할 고정관념이 있다. 우리가 떠올리는 ‘금은보화’의 금은 사실 한참 뒤에 등장한 통화라는 사실이다. 인류가 처음 신뢰한 돈은 은이었다. 미국 달러(dollar)라는 이름조차 16세기 보헤미아의 은광 도시 요아힘스탈에서 주조된 은화 ‘탈러(Thaler)’에서 왔다. 돈의 출발점은 금이 아니라 은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은이었을까? 역사적으로 은은 납 광석(방연석, galena)에서 ‘회취법(cupellation)’이라는 제련 과정의 부산물로 추출되었다. 방연석에는 최대 3% 안팎의 은이 섞여 있고, 납을 녹여 정제하는 과정에서 은이 분리되어 나온다.

  • 은은 인간이 마음대로 대량생산할 수 없는 금속이었다. 은 자체를 목적으로 캐낸 게 아니라, 납이나 구리 같은 실용 금속을 제련하는 ‘김에’ 희소한 비율로 딸려 나왔다.
  • 그래서 은의 공급량은 금속 생산(=생산 활동)의 양과 자연스럽게 연동되었다. 사회가 더 많이 생산하면 은도 그만큼 늘고, 생산이 줄면 은도 줄었다.
  • 이 연동성 덕분에 은은 단순한 귀금속이 아니라 ‘생산성을 반영하는 화폐’로 기능할 수 있었다.

여기에 권력 구조가 얹힌다. 금속과 무기를 쥔 집단이 영주·지배층이 되었고, 이들은 백성에게 은을 지급하거나 은을 세금 납부 수단으로 요구했다. 그 결과 은은 사회 전체를 순환하는 공세(貢稅) 체계의 중심이 되었다. 화폐가 그 자체로 독립해 존재한 게 아니라, 생산성·세금·권력 질서가 한데 묶인 시스템의 표현이었다는 뜻이다. 이 점이 앞으로의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첫 번째 원리다.

2. 돈과 생산성의 균형이 깨지면, 평생 모은 노후 자금이 증발한다

은이 안정적인 돈이었던 이유는 ‘생산성과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끈이 끊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답은 단순한 경제 현상이 아니라 한 사회의 노후 보장이 통째로 무너지는 사건이다.

먼저 가장 기본이 되는 비율 감각을 잡아야 한다. 쌀이 100 있고 돈이 100 있으면 둘은 1대1로 교환된다. 그런데 생산은 그대로인데 돈만 200으로 늘면, 같은 쌀을 사는 데 200을 줘야 한다. 돈의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 이것이 인플레이션이다. 반대로 돈은 그대로인데 쌀이 200으로 늘면 쌀값이 반토막 난다 - 이것이 디플레이션이다. 돈과 생산물 중 어느 한쪽이라도 균형을 벗어나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손해를 본다.

이 추상적인 비율이 왜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되는지는 ‘노후’에 대입하면 분명해진다.

  • 사람은 평생 똑같이 돈을 버는 게 아니다. 대략 20대에서 40대까지 가장 강하게 벌고, 그 이후로는 버는 힘이 줄어든다. 게다가 고령화로 80세까지 살아야 하니, 노동기 앞뒤로 부양해야 할 ‘롱테일’이 길어졌다.
  • 중세의 평민이 노후에 의지할 수 있는 건 오직 평생 모은 은뿐이었다. 종교인이나 영주는 은이 없어도 지속 수입이 있었지만, 평민에게 은은 인생 전체의 저축이었다.
  • 그런데 철·납과 무관하게 은광이 ‘터져서’ 은이 갑자기 쏟아지면, 생산은 그대로인데 은만 늘어나 은의 가치가 반토막 난다. 그 순간 평민이 평생 노동으로 쌓은 가치도 함께 반토막 난다.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았는데, 내 잘못이 아닌 이유로 그 돈의 가치가 절반이 된다 - 이것은 단순한 손해가 아니라 ‘정의가 무너졌다’는 분노다. 사회 불안은 바로 여기서 폭발한다.

그래서 인류는 끊임없이 ‘생산성과 화폐 가치의 균형’을 맞추려 애써 왔다. 은이 1000년 가까이 통화로 살아남은 것도, 결국 그 균형을 비교적 잘 유지했기 때문이다.

3. 은이 무너지고 금이 온 이유 - 그리고 그 독박은 청나라가 썼다

은의 시대는 영원하지 않았다. 산업의 무게중심이 철에서 석탄·석유·화학으로 옮겨가면서, 은과 생산성의 연결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과거엔 금속 제련이 곧 은 공급이었지만, 신대륙에서 거대 은광(볼리비아 포토시, 멕시코 사카테카스)이 발견되자 은은 생산 활동과 무관하게 쏟아졌다. 은은 ‘생산성을 반영하는 화폐’라는 자격을 잃은 것이다.

그래서 서구는 은을 버리고 금으로 갈아탔다. 금은 어떤 생산 활동으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자산이라 함부로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다만 유럽엔 원래 금이 거의 없었는데, 신대륙 탐험이라는 ‘생산적 순환’을 통해 금이 유입되면서 금본위제가 가능해졌다. 배를 만들어 신대륙에 가면 금이 들어오고, 그 과정에서 항해 기술·식민지까지 얻는 선순환이 돈을 돌게 한 것이다.

전환의 시점은 명확하다.

문제는 이 전환의 ‘독박’을 누군가는 써야 했다는 점이다. 그 나라가 바로, 아편전쟁 직전까지 세계 GDP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 1등 국가 청나라였다.

  • 청나라는 산업혁명에 올라타지 못했다. 여전히 철·땅·사람이 지배하는 농경사회에 머물러 있는 동안, 영국은 석탄과 화학의 시대로 넘어갔다.
  • 서구는 더 이상 쓸모없어진 은을 청나라(와 동아시아 은본위권)에 흘려보냈다. 역사책은 “영국이 무역적자를 메우려 아편을 팔았다”고 적지만, 그 이면에는 버릴 은을 은본위 국가에 떠넘기는 구조가 있었다. 영국은 청나라 물건은 은으로 사면서, 정작 자기 물건을 팔 때는 은을 안 받고 금·파운드를 요구했다.
  • 그 결과 청나라에는 은이 넘쳐났다. 생산은 그대로인데 은(화폐)만 폭증하니 민간 물가가 폭등했다. “나라는 부자인데 백성의 살림은 불안한” 상태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저축 대신 투기·토지 매입으로 도망쳤고, 그 위에 아편이 도화선으로 던져지며 청 사회가 무너졌다.

핵심 교훈: 돈이 한 나라에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돈은 반드시 생산성과 균형을 맞춰야 하며, 그 균형을 외부가 흔들 수 있다는 것이 패권의 무기다.

4. 금본위제도 결국 실패했다 - 그래서 ‘신용화폐’와 중앙은행이 태어났다

은의 문제를 피하려 금으로 갔지만, 금은 정반대의 병을 안고 있었다. 산업화로 물건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금은 그 속도로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쌀을 2배로 열심히 생산했는데 금(돈)의 양이 그대로면, 쌀값은 반토막 난다. 더 열심히 일한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구조다. 화폐 가치가 한 방향으로 고정되면, 이번엔 ‘돈을 이미 가진 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진다.

  • 금을 가진 사람은 아무 노동도 하지 않아도, 생산성이 오르는 만큼 금의 상대 가치가 저절로 올라간다. 오늘날 부동산 한 채 가진 사람이 가만히 있어도 자산이 불어나는 것과 똑같은 원리다.
  • 노동하는 사람은 아무리 생산성을 올려도 부가 금 보유자에게 흘러간다. 사람들은 점점 “일할 이유가 없다, 금만 쥐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병 - 가진 자만 가만히 앉아 더 부자가 되고 일하는 자는 영영 따라잡지 못하는 구조 - 을 정면으로 간파한 사람이 18세기 초에 있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프랑스 왕실의 재정을 떠맡은 존 로(John Law)다. 그의 진단은 시대를 앞섰고, 핵심만 떼어 놓고 보면 틀린 데가 없었다.

“생산은 폭발하는데 금이 모자라면, 결국 금을 쥔 자만 거저 불어나고 노동은 영원히 손해다. 그러니 금에 묶이지 말고, 나라가 신용을 보증해 생산성만큼 돈을 찍어 풀면 된다.

이것은 바로 앞에서 본 금본위제의 병을 그대로 꿰뚫은 통찰이다. 실제로 오늘날 모든 나라가 쓰는 신용화폐(금에 묶이지 않은 지폐)가 정확히 이 원리 위에 서 있다 - 존 로는 원리만 놓고 보면 시대를 두 세기는 앞서 옳았다. 문제는 원리가 아니라 완성도였다.

  • 그는 1716년 방크 제네랄(이후 왕립은행)을 세워 지폐를 찍고, 그 지폐를 신대륙 개발을 내건 미시시피 회사 주식에 묶었다. 그런데 담보가 ‘실재하는 상환 약속’이 아니라 ‘식민지에서 언젠가 나올 거라는 허황된 미래 수익’이었다. 게다가 왕실과 은행이 한 몸이라 누구도 발권을 말릴 수 없었다 - 주가를 띄우려 돈을 찍고 그 돈이 다시 주가를 띄우는 거품이 4년 만에 부풀었다 터졌다(미시시피 버블, 1720). 지폐를 금으로 바꿔 달라 사람들이 몰려들자 그만한 금이 있을 리 없어 은행은 태환을 중지하며 무너졌다. 트라우마가 어찌나 깊었던지, 이후 프랑스에서는 100년 넘게 ‘방크(은행)’라는 말 자체가 금기어가 됐다.

존 로는 옳은 약을, 잘못된 용량으로 처방했다. 생산성에 맞춰 돈을 푼다는 처방 자체는 맞았다. 다만 그 양을 누가 어떻게 멈추느냐라는 안전장치가 통째로 빠져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빠진 장치를 채운 것이 영국이다. 영국은 같은 신용화폐를 쓰되, 돈을 푸는 기술이 아니라 ‘멈추게 하는 구조’를 먼저 깔았다.

  • 담보부터 달랐다. 미시시피의 환상이 아니라 정부가 갚겠다고 약속한 국채를 담보로 지폐를 찍었다.
  • 무엇보다 보증하는 주체(왕실·정부)와 발권하는 주체(영란은행)를 분리하고, 그 위에 의회의 감시와 12년마다 갱신하는 면허를 얹었다. 왕실도 은행도 의회도 서로를 견제해, 누구 하나 마음대로 돈을 찍지 못하게 한 것이다 - 존 로에게 없던 바로 그 장치다.

그 결과는 극적이었다. 1690년대엔 연 10% 이자를 줘도 절반이 안 팔리던 영국 국채가, 영란은행이 상환을 보증하자 신뢰가 쌓이며 1750년대엔 3% 이하로도 불티나게 팔렸다. 남보다 싸게 빌릴 수 있는 능력 - 이것이 영국이 쥔 진짜 무기였다. 한 척에 소나무 6천 그루가 들어 20년이면 썩는 ‘돈 먹는 하마’ 전열함을, 영국은 그 저금리로 줄줄이 찍어 내 끝내 불패의 대양 함대를 세웠다. 실물(금·숲·인구)은 더 가난해도, ‘신용’이라는 가장 강한 국력으로 실물 강국들을 눌러 버린 것이다.

여기서 이 글 전체를 관통할 작은 법칙 하나가 처음 고개를 내민다 - 견제가 살아 있으면 흥하고, 견제가 사라지면 망한다. 영란은행을 성공시킨 것도(왕실↔은행↔의회의 견제), 존 로를 무너뜨린 것도(왕실=은행, 견제 없음) 똑같이 이 한 가지였다. 이 법칙은 9번에서 프랑스 귀족과 중국 공산당의 운명을 가를 때 똑같은 얼굴로 다시 나타난다. 역사는 반복된다 - 다만 늘 조금씩 다르게. 존 로의 처방은 영란은행에서, 그리고 지금 8번의 스테이블코인에서까지, 완성도를 바꿔 가며 되돌아온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밑바닥에서 돈의 본질이 드러난다. 돈은 금속이 아니라 ‘신용’이다. 그리고 그 신용이 유지되려면 누군가 생산성과 물가의 균형을 끊임없이 조정해야 한다. 그 조정의 원리는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 생산성이 늘어난 만큼 돈을 풀고, 생산성이 따라주지 못하면 돈을 거둬들인다.

이때 쓰는 수단은 ‘강도 순’으로 한 줄에 세울 수 있다. 한쪽 끝엔 돈의 양을 직접 늘리는 발권이, 반대쪽 끝엔 양을 직접 줄이는 소각·긴축이 있고, 그 사이를 이자(금리)가 메운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은 고대 메소포타미아(함무라비 법전에도 이자율 규정이 있다)부터 있었으니 결코 현대의 발명품이 아니다 - 다만 그 이자를 ‘균형을 맞추는 손잡이’로 끌어올린 것이 중앙은행이다.

통화량 조절 레버 - 일국 2레버

생산성이 받쳐줄 때는 푼다(발권·저금리), 부족할 때는 거둔다(고금리·소각) - 발권·소각이 1차 레버, 금리가 2차 레버

  • 발권·저금리는 생산이 늘어 돈이 모자랄 때 쓰는 카드다. 돈을 더 찍거나(양을 직접 늘림), 이자를 낮춰 빌리기 쉽게 만들어(신용으로 양을 늘림) 화폐를 생산성에 맞춘다.
  • 고금리·소각은 반대로 생산은 그대로인데 돈만 넘칠 때 쓰는 카드다. 이자를 올려 차입을 묶거나(유통을 줄임), 중앙은행이 풀었던 돈을 거둬들여(양을 직접 줄임) 과잉 화폐를 흡수한다.

여기서 이자(금리)가 발권·소각보다 한 단계 ‘간접적’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발권과 소각은 돈의 양 자체를 직접 건드리는 1차 레버이고, 금리는 사람들의 차입·저축 행동을 유도해 양이 따라오게 만드는 2차 레버다. 그래서 같은 ‘돈 풀기’라도 발권이 저금리보다 강력하고, 같은 ‘돈 거두기’라도 소각이 고금리보다 강력하다.

그리고 이 모든 조정의 누적된 결과물이 바로 ‘국가부채’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물가가 오르면(돈이 과하면) 발권을 멈추거나 거둬들이고, 물가가 내리면(생산성이 앞서가면) 발권한다 - 그 발권의 총합이 곧 부채인 것이다.

그러니 국가부채가 생산성에 맞춰 일정하게 늘어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쌀 100을 생산하는 나라가 화폐 100을 찍고, 1조의 생산력을 가진 나라가 1조를 찍듯 - 그 부채의 증가가 곧 경제성장이다. 진짜 위험한 신호는 따로 있다. 부채가 ‘선형’이 아니라 갑자기 ‘지수적’으로 치솟을 때, 즉 생산성은 그대로인데 부채만 폭증할 때다.

국가신용시스템에서 기축통화의 마법

신용화폐 체계에는 한 가지 근본 불안이 깔려 있다. 모든 화폐와 경제는 본질적으로 전쟁에 지극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전쟁이 나면 그 나라 통화는 순식간에 휴지가 된다 - 원화도 위기 땐 1달러에 5,000원, 1만 원까지 폭락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기에 대비해 자국 통화만 쥐고 있을 수 없고, ‘전쟁이 나도 안 흔들릴 나라의 돈’을 함께 확보하려 한다.

그렇다면 어떤 나라의 돈이 그 전쟁 리스크에서 자유로울까? 자국이 전장이 될 가능성도, 전쟁에서 질 가능성도 가장 낮은 나라 - 즉 압도적 군사력 1위 국가다. 누구도 그 나라와 싸워 이길 수 없으니, 그 나라 돈만은 전쟁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도 가치를 지킨다. 그렇게 ‘유일하게 전쟁 리스크를 면제받은 안전자산’이 되는 나라의 돈, 그것이 바로 기축통화다. (사실 세계 무역을 지배하는 국가의 돈이 기축통화다 그러나 무역을 지배했다는 게 이미 군사력을 지배했다는 것이기에 여기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전쟁과 돈’의 관계를 역사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나폴레옹 전쟁과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나단 로스차일드는 1811년부터 유럽 전역에서 금괴를 긁어모아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망을 뚫고 웰링턴의 군대에 군자금을 조달했다 - 한마디로 ‘이길 쪽’에 돈을 흘려보낸 것이다. 그리고 워털루(1815) 직후, 전쟁이 끝나면 승전국 영국의 국채(콘솔) 값이 오를 것이라 보고 막대한 영국 국채를 사들였다. 예상대로 평화가 안정되며 국채는 급등했고, 그는 1817년경 약 40%의 차익을 거뒀다.

전쟁의 승자, 곧 끝내 쓰러지지 않는 강자의 국채가 세계의 안전자산이 된다. 19세기 내내 영국 파운드와 국채가 세계의 기축 노릇을 한 것도 같은 원리였다.

그리고 20세기, 그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 바로 미국 달러다. 압도적 군사력 1위라는 자리를 미국이 차지하면서, 달러가 ‘전쟁이 나도 안 흔들릴 안전자산’으로 올라선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은 남들이 시달리는 제약에서 풀려난다. 보통 나라는 자국 GDP보다 많은 돈을 찍으면 인플레이션에 시달리지만, 미국은 자기 경제 규모를 훌쩍 넘는 돈을 찍어도 버틴다. 다른 나라들이 불안에 대비해 달러를 사주기 때문이다. 달러 수요가 생기니 미국은 “내 돈이 모자라네” 하며 더 찍어낼 명분까지 얻는다. 즉 기축통화국은 세계의 달러 수요를 근거로 발권 여력을 무한정 확보한다 - 그리고 다음 장에서 보듯, 이 발권 특권은 곧 ‘무기’가 된다.

5. 코로나는 미국이 중국을 겨눈 무기였다

이제 그 무한 발권 특권이 어떻게 ‘무기’가 되는지 볼 차례다. 그 신호탄이 코로나였다. 팬데믹으로 생산성은 오히려 줄었는데도 미국을 비롯한 각국은 막대한 돈을 찍어냈다. 생산은 후퇴하고 돈만 폭증했으니, 인플레이션은 예고된 결과였다.

  • 갈 곳을 잃은 돈은 부동산과 주식으로 몰렸고, 자산이 폭등했다. 기존 자산 보유자는 막대한 이익을 얻었지만, 그 버스를 못 탄 노동소득자는 상대적으로 추락했다. 코로나 방역이라는 명분의 통화 정책이, 역설적으로 빈부격차를 구조적으로 키운 것이다.

그런데 이 발권은 단순한 정책 실수도, 불가피한 방역 비용도 아니었다. 코로나는 미국이 무제한 발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빌린 ‘명분’에 가깝다. 멀쩡한 기축통화국이 왜 일부러 자기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위험을 감수했을까? 표적은 따로 있었다 - 달러를 무한정 쌓아 올린 중국이다.

중국은 이 게임의 반대편에서 달러를 모았다. 그 출발점은 준고정환율이다. 중국은 위안화를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고시하는 좁은 밴드 안에서만 움직이도록 묶어 둔다 - 위안화를 인위적으로 약하게 유지해 수출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저임금으로 물건을 팔면 달러가 물밀듯 들어오고, 이걸 그대로 위안화로 환전하게 두면 위안화가 강해져 버린다. 그래서 중앙은행이 들어온 달러를 직접 사들여 절상 압력을 흡수하는데, 그 매입한 달러가 고스란히 외환보유고로 쌓인다. 저환율을 지키려는 행위 자체가 달러를 산더미처럼 축적하게 만든 것이다.

여기에 동기 하나가 더 얹힌다. IMF의 학습효과다 - 외환보유고가 약하면 강대국의 ‘양털 깎기’(유동성을 확 빨아들여 헐값에 자산을 토해내게 만드는 수법)에 당한다는 것을, 중국은 한국의 외환위기에서 똑똑히 봤다. 이렇게 구조(준고정환율)와 의지(IMF 트라우마)가 맞물려, 중국은 저임금으로 번 달러를 국민에게 위안화로 풀지 않고 계속 사서 쌓았고, 한때 세계 1위 달러 보유국이 되었다.

그러자 미국이 골치 아파졌다. 중국이 달러를 쌓고 미국 제조업 일자리를 가져가는 구조가 계속되면, 세계적으로 ‘돈을 가진 나라(미국)’와 ‘생산을 가진 나라(중국)’가 분리되어 버린다. 한 나라 안에서 돈 가진 자와 생산하는 자가 갈리던 문제가, 국가 간으로 확대된 것이다.

문제는 중국을 흔들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양털 깎기’는 유동성을 확 조여(고금리·긴축) 상대가 빚을 못 갚고 자산을 헐값에 토해내게 만드는 수법인데, 중국에는 이게 통하지 않았다. 돈이 모자라 무너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달러를 가장 많이 쥐고 있어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이려 해도 조일 곳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정반대의 카드를 꺼냈다. 조이는 게 안 되면, 거꾸로 무제한 발권과 저금리로 달러 자체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돈을 2배, 10배 찍으면 그 돈을 가장 많이 보유한 쪽 - 세계 1위 달러 보유국 중국 - 의 외환보유고가 가장 크게 녹는다. 중국이 수십 년 저임금 노동으로 쌓은 달러가, 미국의 발권 한 번에 실질 가치가 깎이는 것이다. 코로나는 바로 그 무제한 발권에 명분을 제공한 사건이었고, 그 결과 중국이 쌓아 둔 달러의 가치는 크게 절하됐다. 앞서 4번에서 짚은 ‘생산성 없는 부채 폭증’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 미국에게 그 발권은 방역 비용이 아니라 돈 가진 경쟁자를 무너뜨리는 무기였다.

이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를 둘러싼 ‘연출’까지 달리 읽힌다. 미국이 집요하게 ‘우한 코로나’, ‘중국 바이러스’라는 프레임을 밀어붙인 것은, 발병의 책임을 중국에 떠넘기는 동시에 ‘비상사태’라는 무제한 발권의 명분을 굳히는 효과를 냈다. 위기가 심각해 보일수록 천문학적 돈풀기는 ‘불가피한 방역 비용’으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봉쇄를 거두는 순서도 의미심장하다 - 서방(특히 영국)은 비교적 일찍 방역을 걷어낸 반면, 중국은 가장 오래 ‘제로 코로나’에 매달리며 스스로 경제를 옥좼다. 이 글의 해석을 끝까지 밀고 가면, 찍을 돈은 이미 충분히 찍었고 중국이 제 발로 긴 봉쇄에 갇힌 이상, 서방은 더 버틸 이유 없이 계획대로 출구를 연 셈이다.

다만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코로나는 실제로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엄연한 팬데믹이었다. 위 서술은 ‘그 위기를 누가, 어떻게 통화·지정학적으로 활용했는가’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지, 질병 자체가 조작이었다는 주장이 아니다.

6. 일본 - ‘세계 최대 빚쟁이’가 사실은 세계의 은행인 이유

사실 중국의 성장 모델은 처음부터 일본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저임금·저환율로 수출해 무역흑자를 쌓고, 그렇게 번 달러로 미국 국채를 사 모아 거대한 외환보유고를 축적하는 ‘수출주도 개발국가’ 모델 - 이건 전후 일본이 처음 닦아 놓은 길이고, 한국·대만이 뒤따랐으며, 중국이 가장 큰 규모로 복제한 것이다.

그래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운명이 갈렸다. 외환보유고가 얕고 단기 외채가 많던 한국은 IMF 구제금융에 빠졌지만, 막대한 보유고와 대외 순채권을 쌓아 둔 일본은 애초에 흔들리지 않았다. 중국이 그토록 달러를 쌓아 올린 것도 결국 ‘한국처럼 당하지 않고, 일본처럼 버틴다’는 계산이었다. 다만 분명히 해 둘 것은, 중국이 베낀 건 이 출발점까지라는 사실이다 - 그 뒤로 중국은 일본과 전혀 다른 독자 노선으로 갈라진다(그 이야기는 8번에서). 우선은 그 원본인 일본부터 제대로 들여다보자. 일본이야말로 이 글의 명제, ‘국가부채는 줄여야 할 죄가 아니다’를 가장 극적으로 증명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흔히 ‘세계 최대 국가부채국’으로 불리지만, 그 말의 진짜 의미는 정반대다. 일본 정부는 자국민에게 빚을 졌고, 그 일본 국민은 해외에 대해 세계 최대 순채권자다. 즉 일본의 국가부채는 곧 일본 국민이 전 세계에 빌려준 돈의 거울상이다 - 일본이라는 나라는, 자국민의 저축을 모아 세계에 대출해주는 사실상 세계의 은행인 셈이다. ‘잃어버린 30년’에 물가가 오르지 않은 것도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더 찍을 필요가 없을 만큼 이미 벌어 두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4번에서 본 신용의 원리를 거꾸로 뒤집는다. 보통의 국가부채는 ‘앞으로 생산할 것’을 담보로 미리 당겨 발행하는 미래 가치다. 그런데 일본의 부채는 정반대다. 전후 고도성장기에 이미 벌어 놓은 과거 노동의 결실을 담보로, 그것을 세계에 빌려준 것이다. 미래를 당겨 쓴 빚이 아니라, 과거를 쟁여 둔 ‘현물 담보 대출’에 가깝다. 그래서 일본의 빚은 터질 폭탄이 아니라, 일본인이 흘린 땀이 전 세계에서 돌고 있다는 증서에 가깝다.

이 돈이 처음 향한 곳은 미국 국채였다. 번 달러로 미 국채를 사들이면 달러 수요가 받쳐져 엔화가 약해지고, 그만큼 수출 경쟁력이 유지됐다. 그런데 미국이 그 ‘환율 떠받치기’를 더는 두고 보지 않자, 일본은 국채에만 머무는 대신 해외에 공장과 자산을 직접 사들이는 직접투자로 발을 넓혔다. 세계에 돈을 빌려주는 창구가 국채 한 갈래에서 실물 투자로까지 다변화된 것이다.

그 결과 일본은 묘한 나라가 됐다. 안에서는 근로 생산성이 멈췄지만, 밖에 쌓아 둔 자본의 생산성은 살아 있다. 일해서 버는 나라가 아니라, 이미 쌓은 자본이 해외에서 벌어다 주는 나라가 된 것이다. 노동이 멈추고 인구가 늙어가는데도 엔화가 강세를 유지할 체력이 여기서 나온다 - 무역이 아니라 자본 소득이 통화를 떠받치기 때문이다. (그 돈이 해외에 흩어져 도는 탓에, 한꺼번에 본국으로 돌아오면 세계 금융이 출렁인다는 ‘엔캐리 청산’ 우려가 늘 따라붙는다.)

이 구도는 흔한 직관을 뒤집는다. 보통 ‘자본이 많으면 부자 나라’라 여기지만, 자본이 넘치는 나라는 오히려 성장이 둔해지기 쉽다. 석유가 펑펑 나는 나라에서 정작 다른 산업이 줄줄이 시드는 것과 같은 원리다 - 한 곳(석유)에서 외화가 쏟아지면 통화가 강해지고, 그 강한 환율이 제조업·농업 등 나머지 산업의 가격 경쟁력을 ‘환율’이라는 이름으로 싹 희석해 버린다(이른바 자원의 저주, 네덜란드병). 일본에서는 그 ‘석유’ 역할을 쌓아 둔 자본의 해외 수익이 대신한다. 자본 소득이 엔화를 떠받치고, 그 강한 엔화가 거꾸로 국내 산업을 갉아먹어 성장이 멈추는 것이다.

그러니 일본의 저성장은 ‘실패’가 아니라 세계의 은행이 된 나라의 자연스러운 상태다. 은행 주식의 PBR·PER이 늘 낮은 것과 똑같다 - 은행은 폭발적으로 크는 회사가 아니라, 쌓인 자본을 지키며 꾸준히 이자를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라 은행’ 일본도 마찬가지로, 높은 성장률 대신 낮고 안정적인 수익률로 갈아탄 것뿐이다.

이로써 앞서 본 중국의 준고정환율도 비로소 완전히 설명된다. 아직 부를 빨아들여야 하는 단계의 나라는, 통화가 강해지는 순간 이 ‘자원의 저주’에 걸려 수출 경쟁력을 잃는다. 그래서 환율을 의도적으로 낮게 묶는 것이다 - 돈을 흡수하는 입장에서는 자국 통화가 약할수록 유리하다. 강한 통화는 부를 다 빨아들이고 ‘은행’이 된 뒤에야 감당할 수 있는 사치인 셈이다.

여기서 5번의 이야기와 일본이 다시 맞물린다. 미국이 무제한 발권으로 달러 가치를 떨어뜨릴 때, 그 손실은 중국만의 것이 아니다. 일본 역시 미국 국채를 산더미처럼 쥔 또 하나의 최대 채권국이라, 달러가 찍혀 나올 때마다 일본의 자산도 똑같이 깎인다 - 적국 중국과 우방 일본이 동시에 같은 상처를 입는 셈이다. 차이는 미국의 대응에 있다. 적국 중국은 그 손실을 그대로 떠안게 두지만, 우방 일본에게는 ‘너도 엔을 찍어 그 손실을 상쇄하라’를 용인한다. 2008년 미국의 양적완화, 2013년 시작된 일본의 아베노믹스, 그리고 코로나 발권에 이르기까지 - 두 나라가 번갈아 돈을 찍으면서도 서로를 무너뜨리지 않은 것은, 사실상 같은 통화 진영으로 발을 맞춰 움직였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한 배’라는 말의 실체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엔 발권이 이제 또 다른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일본의 베이비부머 세대가 사망하기 시작하면서 상속세를 통해 막대한 자본이 국가로 환수되고, 동시에 양적완화로 일본 물가가 오르면, 해외에 나가 있던 엔화가 본국으로 돌아온다. 엔화가 강세가 되면 일본은 수입 물가가 안정되어 좋지만, 그 반대급부로 달러는 약세가 된다 - 미국이 끝내 피할 수 없는 구조적 귀결이다.

정리하면 일본은 ‘세계 최대 빚쟁이’가 아니라 이미 번 것을 담보로 세계에 돈을 빌려주는 채권 국가, 곧 세계의 은행이다. 국가부채가 죄가 아니라 신용이라는 이 글의 명제가, 일본에서 가장 선명한 실물로 증명되는 셈이다.

7. 빚이 아니라 통화 주권 -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진짜 방식

통화 주권을 빼앗는 것, 그것이 미국식 지배의 본질이다. 이 교훈을 서방에 똑똑히 새겨준 사건이 1차 대전 패전국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이다.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에 1,320억 금마르크(당시 약 33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배상금을 물렸다. 독일이 한 해 벌어들이는 국민소득(GDP)의 두 배가 넘는(약 2.5배 / 지금 한국기준으로 6천조임) 액수로, 온 국민이 2년 반 동안 번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통째로 바쳐야 갚을 수 있는 빚이었다 - 경제학자 케인스마저 당시 “독일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라 경고했을 정도다.

패전 독일은 두가지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 하나는 자국민에게 진 ‘안의 빚’(마르크로 표시된 전쟁국채)이고, 다른 하나는 승전국에 갚을 ‘밖의 빚’(금으로 고정된 배상금)이다. 그리고 이 둘은 정반대 방법으로, 그러나 똑같이 사라졌다 - 통화 주권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먼저 안의 빚. 독일은 1차 대전을 세금이 아니라 국민에게 판 전쟁국채로 치렀다. 이기면 1871년 보불전쟁 때 프랑스에게 그랬듯 패전국이 배상금으로 갚아 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졌다. 받을 배상금은커녕 거꾸로 물어줄 처지가 됐고, 국민에게 진 마르크 빚만 산더미로 남았다. 독일은 이 빚을 인쇄기로 지웠다. 패전 후 적자를 윤전기로 메우던 차에, 1923년 프랑스·벨기에가 루르를 점령하자 정부가 “파업으로 저항하라”며 멈춰 선 노동자 임금까지 새 돈으로 찍어 대면서 하이퍼인플레가 폭발한 것이다. 환율은 1921년 1월 1달러당 64마르크에서 1923년 11월 1달러당 4조 2천억 마르크로 폭주했고 - 지폐를 손수레로 나르고 돈다발을 땔감으로 쓰던 시절이다 - 그 광란은 마르크로 표시된 국내 빚을 하룻밤 새 휴지로 만들었다. 자국민이 ‘독일 승리’에 베팅하며 사 준 전쟁국채가, 정작 독일이 지자 윤전기 앞에서 증발한 것이다. (국내 빚이 통째로 사라지는 게 정부엔 차라리 이득이라, 인플레를 굳이 서둘러 막지 않았다는 해석마저 있다.)

그런데 이 ‘리셋’에는 회계장부를 넘어서는 무게가 있었다. 한 나라의 부의 지도를 통째로 다시 그리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국채를 사 모으며 ‘독일 승리’에 베팅했던 기존 부유층과 중산층이 하룻밤 새 빈털터리가 되자, 구체제를 떠받치던 돈의 질서가 허물어지고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신뢰도 함께 무너졌다 - 그 균열은 훗날 대공황이 덮쳤을 때 히틀러 같은 극단주의가 파고드는 틈이 됐다.

흥미롭게도 한국도 거의 같은 리셋을 겪었다. 1950년 농지개혁으로 지주들은 땅을 내준 대가로 정부의 지가증권(원화 보상)을 받았는데, 석 달 뒤 6·25가 터져 극심한 인플레가 닥치자 그 증서가 휴지로 변했다. 땅은 이미 농민에게 넘어갔고 보상은 녹아내려, 수백 년 이어온 지주 계급이 통째로 청산됐다 - 독일의 전쟁국채 보유층이 증발한 것과 판박이다. 차이는 그 빈자리에 누가 올라섰느냐였다. 독일에선 히틀러가, 한국에선 박정희가 그 자리를 채웠다. 둘 다 강력한 국가주의로 사회를 한 방향으로 몰아붙인 권위주의 체제였지만(박정희 시대를 ‘개발독재’, 더 날카롭게는 ‘개발 파시즘’이라 부르는 이유다), 한쪽은 그 에너지를 바깥을 향한 전쟁으로, 다른 한쪽은 안을 향한 산업화의 단합으로 풀어냈다는 점이 운명을 갈랐다.

그렇다면 밖의 빚, 배상금은? 이건 인쇄기가 닿지 않았다. 승전국이 영악하게도 배상금을 종이 마르크가 아니라 금 가치로 고정한 ‘금마르크’로 못 박아, 마르크를 아무리 찍어도 줄지 않게 해 둔 것이다. 그럼 독일은 이 빚만은 꼼짝없이 갚았을까? 천만에 - 인플레로 못 지운 빚을 이번엔 정치로 지웠다. 1924년 도즈 플랜으로 일정을 늦추고, 1929년 영 플랜으로 총액을 줄이고, 1931년 후버 모라토리엄으로 지급을 멈추더니, 1932년 로잔 회의에서 90%를 삭감해 사실상 폐기해 버렸다 - 히틀러가 집권하기도 전이다. 이어 히틀러는 남은 의무마저 내던졌고, 재무장 자금은 ‘메포(MEFO) 어음’(국가가 뒤에서 보증하는 유령회사 어음을 중앙은행이 받아 주는, 장부에 잡히지 않는 발권)으로 따로 찍어 냈다. 결국 1,320억 마르크 중 실제 지급된 건 약 200억, 7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독일은 그 천문학적 배상금을 거의 갚지 않은 채, 오히려 그 여력으로 전쟁을 준비한 것이다.

두 빚의 결말은 같았다 - 안의 빚은 인플레로, 밖의 빚은 정치로 지워졌다. 자기 화폐와 재정,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우길 힘을 쥔 주권국은 어떤 빚으로도 옭아맬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한 나라를 확실히 굴복시키려면 빚이 아니라, 그 나라의 발권·환율 결정권 - 곧 통화 주권 자체 - 을 빼앗아 자기 화폐 체계 안에 가둬야 한다.

그래서 이후 미국은 식민지를 직접 지배하는 대신, 해방시키되 통화로 종속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WTO·자유변동환율을 조건으로 독립을 보장하되, 모든 거래가 달러 체계 안에서 돌게 만든 것이다.

한국이 그 전형이다. 그 처지를 이해하려면 잠깐 4번의 그림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기서 통화량을 조절하는 레버는 발권(양을 직접)금리(가격으로 간접), 둘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라가 홀로 있을 때의 이야기다. 무역과 자본으로 세계가 엮이면, 내 통화량은 나 혼자 정하는 게 아니라 ‘남의 돈과의 교환비율’, 곧 환율에도 좌우된다. 환율을 낮게 누르면 수출로 외화가 밀려들어 와 돈이 풀리고(앞서 본 중국이 그랬다), 환율을 시장에 풀어 버리면 통화량이 자본의 변덕에 휘둘린다. 그래서 세계화는 발권·금리에 더해 환율이라는 세 번째 레버를 달아 줬다 - 4번의 도해가 이렇게 한 칸 더 진화한다.

통화량 조절 레버 - 세계화 3레버

세계화로 환율이 세 번째 레버로 붙는다 - 일국 레버(발권·금리)에 대외 레버(환율)가 더해져 양끝이 한 칸씩 늘어난다

(흔히 말하는 ‘불가능한 삼위일체’와 헷갈리기 쉬운데, 그건 ‘셋 중 둘만 가질 수 있다’는 제약을 말하고, 여기서 말하는 건 셋 다 통화량을 조절하는 ‘손잡이’라는 얘기다. 환율은 시장이 정하는 통제 불능 변수처럼 보이지만, 외환 개입이나 준고정환율로 얼마든지 정책적으로 쥘 수 있다 - 중국이 그 증거다.)

통화 주권이란 결국 이 세 손잡이를 다 쥐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중 환율 손잡이를 미국에 내줬다. IMF 이후 자본시장을 활짝 열고 원화를 시장 환율에 맡긴 한국은, 발권 손잡이마저 함부로 당기면 원화 가치가 폭락하니 묶여 버렸다. 남은 건 금리 하나뿐인데, 그마저 자본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한 미국 금리를 크게 벗어나는 순간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 결국 미국을 눈치껏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8. 미국의 마지막(?) 카드 - 스테이블코인으로 위안화를 무너뜨린다

지금까지가 ‘빚으로는 못 묶으니 통화 주권을 빼앗는다’는 미국식 지배의 원리였다. 이제 미국은 그 종속을 한 단계 더 밀어붙이려 한다. 영국이 은을 청나라에 떠넘기고 금으로 갈아탔듯, 미국은 달러를 디지털로 갈아타려 한다. 그 수단이 2025년 7월 18일 트럼프가 서명한 ‘GENIUS Act’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다.

그런데 먼저 풀어야 할 의문이 있다. 다른 나라들이 그냥 미국 국채를 사주면 될 텐데, 미국은 왜 굳이 ‘코인’이라는 우회로를 택할까? 답은 스테이블코인이 ‘국채를 사주는 효과’를 자동으로, 그것도 훨씬 강력하게 일으키기 때문이다.

GENIUS Act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그만큼의 달러나 단기 미국 국채를 100% 준비금으로 쌓아 두도록 의무화한다. 그러니 누군가 1달러어치 코인을 사는 순간, 발행사는 1달러어치 미국 국채를 사야 한다. 세계에서 이 코인이 1조 달러어치 돌면, 미국 국채에 1조 달러의 수요가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다. 세계가 무역과 결제에 이 코인을 쓰면 쓸수록, 그 뒤에서 미국의 빚을 떠받쳐 주는 구조다. 이게 직접 국채를 사주는 것보다 미국에 유리한 이유는 두 가지다.

  • 수요 주체가 통째로 바뀐다. 직접 국채 매입은 중국 같은 몇몇 정부·중앙은행의 ‘선택’이다. 그래서 중국이 그랬듯 무기로 쓸 수도, 어느 날 끊어 버릴 수도 있다(5번). 반면 스테이블코인 수요는 전 세계 수십억 민간이 일상 거래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라, 누가 전략적으로 끊거나 무기화할 수가 없다.
  • 같은 돈이 두 가지 일을 한다(신용창출 효과). 직접 국채 매입은 ‘빚 조달’ 하나뿐이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은, 준비금으로 쌓인 국채가 미국의 빚을 조달하는 동시에 그 코인 자체가 세계에서 달러처럼 굴러다니며 달러의 통용 영역을 넓힌다. 한 묶음의 돈이 ‘적자 메우기’와 ‘달러 패권 확장’을 한꺼번에 해내는 셈이다 - 은행이 받은 예금으로 채권을 사면서도 그 예금이 여전히 결제에 쓰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요컨대 직접 국채 매입이 ‘미국에 돈을 빌려주는’ 1차원 거래라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세계가 쓰면 쓸수록 미국 빚을 떠받치고 달러 영토까지 넓혀 주는 자가발전 장치다. 미국이 이걸 마다할 이유가 없다.

스테이블코인 자가발전 루프

세계가 쓸수록 미국 국채 수요와 달러 영토가 동시에 차오르는 자가발전 루프

그런데 이 구조를 4번과 겹쳐 보면, 스테이블코인은 사실 새로운 발명이 아니다. 준비자산(달러·국채)을 100% 쌓아 두고 딱 그만큼만 토큰을 발행하는 것 - 이건 금을 쟁여 두고 그만큼 지폐를 찍던 금본위제이자, 국채를 담보로 은행권을 찍던 영란은행의 발권(4번) 바로 그것이다. 화폐 3000년이 또 한 바퀴를 돌아, ‘준비자산을 담보로 한 신용 발권’이 디지털 옷을 입고 돌아온 셈이다. 그러니 4번의 교훈도 그대로 따라온다 - 준비금 규율이 무너지면 존 로의 미시시피 버블이 디지털로 재현되고, 그 규율이 지켜지면 영란은행처럼 패권의 무기가 된다. GENIUS Act가 ‘100% 준비금’을 법으로 못 박은 건, 바로 그 영란은행식 견제 장치를 디지털에 이식하려는 것이다. 다만 결정적으로 다른 게 둘 있다 - 영란은행의 담보가 ‘금’(누구의 빚도 아닌 자산)이었다면 스테이블코인의 담보는 ‘미국 국채’(미국의 빚)라, 코인이 돌수록 발권이 곧 미국 빚을 떠받친다. 그리고 발권자가 단일 중앙은행이 아니라 법의 규율을 받는 다수 민간 발행사다. 역사는 반복되되, 늘 이렇게 한 끗 다르게 온다.

준비자산 담보 발권의 재현

‘준비자산을 담보로 한 신용 발권’은 금본위제에서 영란은행으로, 다시 디지털 코인으로 - 같은 구조, 다른 얼굴

그럼 이 코인이 실제로 어떻게 세계를 잠식하는지 보자.

먼저 알아야 할 건, 화폐의 ‘형태’는 늘 더 가볍고 편한 쪽으로 진화해 왔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금으로 직접 거래하지 않게 된 첫 이유부터가 거창한 게 아니라 휴대성이었다 - 배에 금괴를 잔뜩 싣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금으로 바꿔 주겠다’는 약속을 적은 종이(지폐)가 금을 대신했다. 무게는 종이가 지고, 가치는 금이 맡는 분업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종이마저 거의 안 들고 다닌다. 카드를 긁고 폰으로 송금하며, 현금은 지갑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이미 ‘종이’를 대신한 디지털 신용수단이 우리 삶을 굴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디지털 결제망이 누구 것이냐다. 지금은 비자·마스터카드 같은 기업과 각국 은행·정부에 잘게 쪼개져 종속돼 있다. 미국이 노리는 건 이 ‘디지털 화폐층’을 달러 스테이블코인 하나로 통째로 차지하는 것이다. 지폐가 오가는 걸 국가가 보증해 주던 일을, 이제 전자(코인)가 오가는 걸 보증하는 것으로 갈아 끼우면 그만 - 금을 대신한 종이를, 이번엔 달러 코인이 대신하게 만들겠다는 얘기다. 그 ‘차지하는’ 방식은 이렇다.

  • 미국이 발행한 ‘달러 보증 스테이블코인’은 미국에서도, 동남아에서도, 어디서나 환전 없이 통용된다. 반면 원화·위안화는 반드시 그 나라 정부를 거쳐 환전해야 한다. 즉 스테이블코인은 각국의 환율과 통화 주권을 무력화하는 장치다.
  • 관세는 그 코인을 쓰게 만드는 ‘채찍’이다. 트럼프는 관세가 물가를 올린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협상 카드로 휘두른다 - “미국에 투자해라, 그러면 관세를 깎아 주겠다.” 그런데 그 대미 투자와 결제를 달러 현찰이 아니라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하도록 유도한다. 한국도 일본도 이미 트럼프와 관세 딜을 하러 줄을 섰는데, 그렇게 약속된 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오가기 시작하면 그 코인은 저절로 세계에서 돌게 된다. 과거 중국이 “시장을 내줄 테니 50대50으로 투자하라”며, 삼성이 들어가면 LG도 안 들어갈 수 없게 외국 자본을 옭아맸던 수법 - 그걸 미국이 관세로 거꾸로 거는 셈이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1번에서 본 첫 번째 원리가 그대로 되돌아온다. 화폐는 누군가가 그것을 ‘반드시 쓰게’ 강제할 때 비로소 돈이 된다. 옛 영주가 은을 화폐로 세운 비결도 백성에게 “세금을 은으로 내라”고 강제해 은의 수요를 만든 것이었다 - 국가가 자국 통화로 세금을 걷는 한 그 통화의 수요는 끊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이 노리는 것도 정확히 이것이다. 관세와 대미 투자라는 ‘현대판 공세(貢稅) 체계’로 세계가 무역·결제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들어, 그 디지털 달러의 수요를 강제로 빚어내는 것이다. 천 년 전 은이 ‘세금’으로 돌았다면, 디지털 달러는 ‘관세 딜’로 돈다.

한 가지 더 - 미국은 왜 비트코인이 아니라 굳이 ‘스테이블코인’을 골랐을까? 비트코인은 이 그림의 ‘실패한 원형’이기 때문이다. 원래 비트코인은 컴퓨팅 자원을 많이 가진 사람이 다음 블록을 채굴하도록 설계되어, “미래 컴퓨팅 사회의 금속과-은 관계”를 모방하려 했다. 하지만 채굴 전용 칩(ASIC)이 등장하면서, 모두가 ‘금속(실용 연산)’은 안 만들고 ‘은(코인)’만 캐는 대환장 파티로 변질됐다. 결국 비트코인도 ‘가진 자만 더 가지는’ 금과 똑같아졌다. 그래서 미국이 택한 건 주인 없는 비트코인이 아니라, 1등 국가의 달러에 단단히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다.

이 전략의 최대 표적은 중국이다.

  • 중국은 준고정환율(정부가 고시한 좁은 밴드 안에서만 움직이는 관리변동환율)을 유지하는데, 이 인위적 환율이 치명적 약점이 된다. 환율을 억지로 묶으면 공식 환율과 시장의 실제 가치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그 틈을 노린 암시장이 자라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보따리상이나 민간 거래자들은 정부의 환전 통제(사실상 세금)를 피하려고, 위안화나 달러보다 상대국 현지 통화 - 원화·엔화처럼 직접 거래되는 돈 - 로 주고받기를 선호한다. 정부를 거치지 않아야 실질 구매력을 고스란히 챙길 수 있어서다. 즉 중국 민간에는 ‘정부 통제를 빠져나가려는 수요’가 이미 잠재해 있다.
  • 여기에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끼얹어지면 그 수요에 불이 붙는다. 스페이스X가 깔아놓은 위성통신망과 휴대폰만 있으면, 중국 국민이 위안화 대신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페이로 쓸 수 있다. 미국은 중국에 군대를 보내지 않고도, 중국 민간인이 스스로 달러를 쓰게 만들어 위안화를 약화시키고 사회 불안을 키울 수 있다. 사실 중국이 우주·항공 기술에 그토록 사활을 거는 진짜 속내도 여기에 닿아 있다.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낭만이 아니라, 머리 위를 뒤덮은 미국 위성망 - 그리고 그 위로 흐를 달러 결제 - 을 감시하고 교란하고 끝내 무력화하기 위해서다. 중국이 스타링크에 맞서 자체 위성망(궈왕·첸판)을 미친 듯이 쏘아 올리는 것도, ‘우주굴기’의 본질이 실은 ‘결제 주권’을 지키려는 방어전임을 보여준다.
  • 그래서 중국이 꺼낸 맞불이 중앙은행이 직접 쥐고 통제하는 디지털 화폐다. 미국이 ‘민간이 자유롭게 굴리는’ 스테이블코인으로 가는 것과 정반대로, 중국은 정부가 발행·추적·통제하는 디지털 위안화(e-CNY)에 매달리고 민간 코인은 틀어막는다. 모든 거래를 국가의 손바닥 위에 묶어, 민간 자금이 달러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미국의 ‘자유로운 달러 코인’ 대 중국의 ‘통제된 위안 코인’ - 디지털 화폐 전쟁의 전선은 정확히 여기서 갈린다.
  • 물론 한국도 스테이블코인을 쓰면 통화 주권이 약해진다. 다만 이미 자유 통화에 가까운 나라들은 그 충격이 상대적으로 작다. 충격이 치명적인 쪽은 고정환율의 벽 안에 갇힌 중국이다.

이 모든 갈래를 한데 모으면, 스테이블코인이 왜 미국에는 ‘꽃놀이패’이고 중국에는 ‘독’인지가 분명해진다.

미국은 가만히 앉아서 이긴다. 세계가 코인을 쓰면 쓸수록 미국 국채 수요가 자동으로 차오르고(앞서 본 국채 효과), 그 수요는 중국이 보유 국채를 내던지듯 무기화하거나 어느 날 끊어 버릴 수가 없다 - 전 세계 수십억 민간의 일상 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중국에는 칼끝이 급소를 겨눈다. 첫째, 인위적으로 묶어 둔 위안화의 환율 방어벽이 뚫린다. 국민이 페이 한 번으로 달러 코인을 쥐는 순간, 정부가 그토록 지켜 온 준고정환율과 자본 통제는 구멍투성이가 된다. 둘째, 그 구멍을 막을 길이 마땅찮다. 위성과 휴대폰만 있으면 되는 일을, 군대로도 만리방화벽으로도 완벽히 틀어막을 수 없다. 셋째 - 가장 무서운 건 이게 중국 내부의 불평등에 불을 댕긴다는 점이다. 정보와 연줄을 쥔 도시 엘리트부터 먼저 달러 코인으로 갈아탈 테고, 위안화에 묶인 다수는 그 가치 하락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청나라가 외세가 아니라 내부 분란으로 무너졌듯(3번), 미국은 중국을 바깥에서 때리는 대신 안에서 균열을 키우는 길을 고른 셈이다.

9. 중국은 18세기 프랑스를 다시 걷는다 - 빨아들이는 패권은 어디로 가는가

지금 중국이 처한 자리는 18세기 프랑스와 소름 끼치게 닮았다. 단순히 비슷한 게 아니라, 하나의 흥망 법칙을 똑같이 밟고 있다 - 권력과 부는 여럿으로 나뉘어 ‘견제’하면 나라를 키우고, 한 손에 ‘융합’돼 핏줄로 대물림되면 나라를 무너뜨린다. 프랑스는 그 한 바퀴를 다 돌아 1789년에 폭발했고, 중국은 지금 같은 궤도로 들어가고 있다.

① 견제가 나라를 키운다. 프랑스를 떠받친 두 기둥은 무력을 쥔 귀족지식을 쥔 성직자였다. 기반이 다른 둘이 서로 견제하고, 그 긴장 위에서 왕이 균형자로 군림하며 나라가 강해졌다. 그 토대 위에서 재무총감 콜베르가 중상주의를 폈다 - 자국 통화를 약하게(저평가) 유지해 물건을 싸게 팔고, 관세로 수입을 막고 수출만 키워 유럽의 금·은을 빨아들였다(리슐리외·마자랭·콜베르로 이어진 세 재상이 그 절대왕정을 빚었다). 중국도 똑같이 출발했다. 덩샤오핑은 마오의 1인 독재가 대약진·문화대혁명으로 나라를 절단낸 걸 보고 집단지도체제와 임기제로 당내 견제를 심었고, 상무위원들이 파벌을 대표해 서로 견제한 그 30년이 곧 고속성장기였다. 거기에 준고정환율로 위안화를 눌러 세계의 달러를 빨아들이니, 콜베르의 프랑스처럼 세계 2위 경제·최대 외환보유국이 됐다 - 단, 약한 통화가 국민 구매력을 짓눌러 ‘나라는 부자, 국민은 가난’이라는 그늘도 똑같이 졌다.

② 견제가 융합·암투로 무너진다. 프랑스에선 18세기 들어 귀족 가문의 차남들이 주교·수도원장 같은 고위 성직을 통째로 차지했다(루이 16세 때 주교는 전원 귀족). 무력과 지식이 한 핏줄·한 이권으로 융합하자 견제가 사라지고, 둘은 면세 특권을 공유하는 담합 카르텔이 됐다. 중국에선 시진핑이 그 견제 장치를 뜯어냈다 - 2018년 임기제를 폐지해 종신집권의 길을 열고, 반부패를 명분으로 정적을 숙청하며 집단지도체제를 1인 독재로 되돌렸다. 그러자 당내 다툼은 ‘성과로 겨루는 견제’가 아니라 ‘이권을 두고 서로 죽이는 암투’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견제와 암투는 전혀 다르다 - 견제는 정당성으로 경쟁해 사회를 키우지만, 암투는 ‘지들끼리 나눠먹기’로 곪을 뿐이다. 융합한 프랑스 카르텔이 걸은 바로 그 길이다.

③ 부와 권력이 핏줄로 고착된다. 견제 잃은 특권은 곧 세습으로 굳는다. 프랑스에선 귀족 작위도, 고위 성직도, 면세도 모두 핏줄로 내려갔다 - 면세가 곧 그들 신분의 존재 근거였기에, 튀르고·네케르·칼론이 ‘귀족에게도 세금을’ 매기려 해도 번번이 좌절됐다(1787년 명사회는 균등 과세를 끝내 거부). 중국은 그 세습 장치가 더 노골적이다. 가계 자산의 70%인 부동산조차 ‘소유’가 아니라 당이 빌려준 임대지만, 상속세가 아예 없어(현금 상속 0원, 70년째 ‘검토만’) 부는 세금 한 푼 없이 대물림된다 - 자수성가 1세대(부자의 98%)가 고령화하는 지금, 향후 10년간 약 3천조 원이 무세금으로 내려간다(상속세로 부를 환수·순환시키는 6번의 일본,한국과 정반대다). 그런데 당이 상속세를 끝내 안 만드는 진짜 이유가 핵심이다 - 상속세를 만드는 순간 부가 ‘법으로 보호되는 사유재산’으로 굳어, 지금은 당이 마음만 먹으면 100% 회수하는 ‘임대주의 권력’(마윈·앤트그룹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게 그 증거)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도 부도 세습 통로만 열어둔 채 법적 보호는 막아 둔다. 다만 아직 엘리트가 1세대라, 이 융합된 권력과 부가 두 세대만 더 핏줄로 내려가면 그때 비로소 프랑스식 세습 귀족 사회가 완성된다.

④ 잉여가 사치와 전쟁으로 터진다. 빨아들이기만 하는 중상주의는 생산이 소비를 넘는 ‘잉여’를 구조적으로 낳는데, 내수가 죽어 그 잉여가 안에서 돌지 못하면 반드시 두 곳으로 샌다 - 위로는 사치, 밖으로는 시장을 빼앗으려는 전쟁이다. 프랑스가 그랬다. 갈 곳 없는 잉여는 베르사유로 타올랐고(그 궁은 단순 낭비가 아니라 호족을 중앙에 가둬 길들인 ‘지배 인프라’였다 - 사치의 본질은 ‘비싼 것’이 아니라 ‘들인 것보다 못 건지는 비효율’이다), 미국 독립전쟁 지원이라는 시장 쟁탈전에 13억 리브르를 쏟아부었다가 그 전쟁 비용이 재정을 거덜 내 1789년 혁명으로 터졌다. 중국도 똑같다. 빨아들인 잉여가 안으로는 일대일로·유령도시 같은 과잉 인프라(인프라도 유지비가 산출을 넘으면 베르사유의 영광이 아니라 ‘비효율=사치’로 전락한다)로, 대표적인 잉여가 전기다 - 발전량은 미국의 2배인데 65%가 산업용, 가정용은 15%뿐이고, 저장도 안 돼 멈추면 순손실이라 줄일 수도 멈출 수도 없이 내다 팔아야 한다. 그리고 아직 전쟁은 시작도 안했으나 대만·티베트를 둘러싼 충돌(아직 오지 않은 ‘미국 독립전쟁’)로 향한다.

중국은 18세기 프랑스를 다시 걷는다 - 4단계 흥망 법칙

중국은 18세기 프랑스와 같은 흥망 법칙을 단계마다 다른 얼굴로 밟고 있다 - 단, ④의 결말은 아직 ‘?’

역대 중국 왕조는 대개 200~250년을 갔고, 공산당은 이제 겨우 100년을 넘겼다. 약한 고리는 지금 이미 박혀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터져 나오는’ 건 ③에서 본 대로 권력과 부가 두 세대 이상 세습돼 귀족 사회가 굳을 때다 - 자수성가 1세대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지금이 아니라, 빠르면 한 세대, 길게는 또 한 세기 뒤의 일이다. 무너뜨리는 건 늘 바깥의 적이 아니라 안에서 깨진 균형이고(청나라가 외세가 아니라 내부 분란으로 무너졌듯), 그 긴 시계 앞에서는 빨아들이는 중국도, 나눠주다 지쳐 가는 미국도 끝내 예외가 아니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자. 은에서 스테이블코인까지 3000년을 돌아온 이 이야기는, 실은 돈에 관한 우리의 통념을 하나씩 뒤집는 과정이었다.

돈의 원형은 금이 아니라 은이었고(1번), 그 은조차 귀해서가 아니라 세금이라는 강제된 수요 위에서 비로소 돈이 됐다. 돈이 한 나라에 고이는 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으며(청나라, 3번), 발권은 죄가 아니라 무기였다(코로나, 5번). ‘세계 최대 빚쟁이’ 일본은 사실 세계의 은행이었고(6번), 천문학적 빚을 진 독일은 그 빚을 인플레와 정치로 지워 버렸다(7번). 존 로의 신용화폐는 원리가 틀려서가 아니라 견제가 없어 무너졌고(4번), 그 빈자리를 채운 영란은행의 발권은 오늘 디지털 스테이블코인으로 되돌아왔다(8번). 이 여덟 번의 뒤집기는 한 문장으로 모인다 - 돈은 금이나 자산 같은 ‘실물’이 아니라, 사람과 나라 사이의 ‘관계와 권력’이다.

그래서 돈의 운명은 실물의 양이 아니라 그 관계가 어떻게 도느냐에 달린다 - 흐르면 살고, 고이면 터진다. 은이 생산성과 어긋나 평민의 노후를 무너뜨리고(2번), 청나라에 은이 고여 물가가 폭등하고(3번), 프랑스·중국의 잉여가 안에서 돌지 못해 사치와 전쟁으로 샐 때(9번) - 터진 건 늘 ‘고임’이었다. 반대로 일본이 번 것을 세계에 빌려주고 미국이 달러를 세계에 풀 때, 산 건 늘 ‘흐름’이었다. 그리고 이 법칙은 한 번도 똑같은 얼굴로 오지 않았다 - 금본위제가 영란은행으로, 다시 디지털 코인으로 가면을 갈아 쓰듯. 역사는 분명히 반복되지만, 단 한 번도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금 미국이 19세기 영국으로 남을지 18세기 프랑스가 될지조차, 아직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처음의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국가부채는 줄여야 할 죄가 아니라, 생산성과 균형을 맞춰 흐르는 문명의 다른 이름이다. 나라가 크는 만큼 부채가 느는 건 부가 건강하게 돌고 있다는 증거다. 정말 위험한 건 부채의 크기가 아니라 - 코로나식 과잉 발권이든 빨아들이기만 하는 중상주의든 - 생산성과 어긋나 한쪽에 고이는 불균형이다. 불균형은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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