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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정말 어리석은 나라인가?

우리는 북한을 가난하고 폐쇄적인 '어리석은 나라'로 깔보는 데 익숙하다. 그런데 김정은이 어떻게 권력을 잡았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정반대의 결론이 나온다 - 북한은 어리석은 게 아니라, 자기 생존 조건 안에서 지극히 합리적이고 영악하게 움직이는 체제다. 그들을 깔보는 시선을 거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한국이 가야 할 길도 보인다.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 사회에는 북한을 향한 일종의 합의된 정서가 있다. “비합리적이다”, “철 지났다”, “곧 망할 것이다”, “어리석다.” 그리고 이 시선은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도, 이재명 정부도 - 대북 정책의 방향은 달라 보여도 - 근저에는 같은 전제가 깔려 있다. “우리가 손을 내밀면 결국 저들도 따라올 것”이라는,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전제다.

문제는 바로 이 전제가 틀렸다는 데 있다. 북한을 깔보는 시선은 마음은 편하게 해주지만, 현실을 오독하게 만든다. 적을 우습게 보는 군대가 지듯, 상대를 어리석다고 단정하는 외교는 번번이 헛발질을 한다. 그래서 한 번쯤은 - 좋아하든 싫어하든 - 북한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김정은이 어떻게 권력을 잡았는지부터.

김정은은 어떻게 ‘벼락치기’로 권력을 잡았나

김정은의 권력 승계는 사실 굉장히 위태로운 ‘벼락치기’였다. 아버지 김정일은 2008년 8월(67세)에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그제야 다급하게 후계 작업이 시작됐다. 26세의 김정은이 군 경력 하나 없이 대장(4성 장군)과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오른 게 2010년 9월, 김정일이 사망한 게 2011년 12월이다. 검증 기간이 고작 3년 남짓이었다.

그런데도 이 벼락치기가 성공했다. 이유는 셋이다.

첫째, 정통성이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에 박혀 있었다. 백두혈통이라는 우상화 장치는 이미 60년간 완성돼 있었고, 김정은은 그것을 ‘획득’할 필요 없이 ‘상속’받기만 하면 됐다. 사실 더 어려운 승계는 2대(김일성→김정일)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세습이라는 이단을 처음 정당화하느라 김정일은 20년을 들였다. 그가 길을 닦아놓은 덕에, 3대 김정은은 포장된 도로를 달리기만 하면 됐다.

둘째, 죽어가던 아버지가 섭정 구조를 짜뒀다. 김정일은 여동생 김경희(순수 백두혈통)와 그 남편 장성택(실무 능력자)을 짝지어, 어린 아들을 받칠 후견 세트를 만들어뒀다. 미숙함의 공백을 인척의 섭정으로 메운 것이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 김정은은 물려받은 권력을 ‘사후에’ 피로 굳혔다. 2012년 자신을 받치라고 아버지가 붙여준 군부 실세 리영호를 전격 숙청했고, 2013년에는 자기 고모부이자 섭정이던 장성택을 정치국 회의장에서 끌어내 공개 처형했다. 2017년에는 이복형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VX 신경작용제로 암살했다. 자신을 세운 후견인마저, 백두혈통의 대안 카드마저 차례로 지운 것이다.

여기서 보아야 할 것은 잔혹함이 아니라 냉정한 합리성이다. 미숙한 승계자가 권력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그는 정확히 알고 실행했다.

한눈에 보는 연표 - 2008~2020

이 글의 골격이 되는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김정은의 시대는 안으로 권력을 굳힌 10년(2008~2017)밖으로 도박했다 회귀한 3년(2018~2020)으로 나뉜다.

[ 권력 공고화기 ]

  • 2008 - 김정일 뇌졸중 발병 (67세, 8월)
  • 2009 - 김정은 내부 후계자 내정(1월경) / 2차 핵실험 / 화폐개혁(대실패로 민심 이반)
  • 2010 - 김정은 첫 공개등장 (26세, 대장 +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9월) / 첫째 출생 추정
  • 2011 - 김정일 사망 (70세, 12월) / 김경희·장성택 사실상 섭정 / 김여정 첫 등장(장례식)
  • 2012 - 중앙군사위원장 취임(4월) → 후견인 리영호 숙청(7월) / 리설주 공개(23세)
  • 2013 - 고모부 장성택 공개 처형(12월) / 김주애 출생 추정
  • 2014 - 김여정 공식 직책으로 부상 / 김정은 약 6주 잠적(건강이상설)
  • 2015 -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미확인)
  • 2016 - 36년 만의 7차 당대회 → 당 위원장·국무위원장 취임 / 4·5차 핵실험
  • 2017 - 이복형 김정남 암살(2월, VX) / 6차 핵실험·ICBM 완성 / 셋째 출생 추정

[ 외교 도박과 회귀 ]

  • 2018 - 평창올림픽(2월, 김여정 방남) / 남북정상회담 3회 / 싱가포르 북미회담(6월)
  • 2019 - 하노이 노딜(2월) / 최룡해 명목상 국가수반(상임위원장) 등극(4월)
  • 2020 - 코로나 국경봉쇄(1월) /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6월)

[ 또 하나의 축 - 6번의 핵실험 ]

핵 개발은 위 정치 일정과 별개로 흐른 또 하나의 축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핵 보유’와 ‘핵실험’이 다르다는 점이다 - 핵실험은 단순히 핵이 있다는 게 아니라, 더 강하고·더 작고·더 진짜인 핵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발전시키는 과정이다.

  • 2006 (1차) - 첫 폭발. 플루토늄, 1kt 미만 (절반의 실패에 가까운 소형)
  • 2009 (2차) - 수 kt으로 향상
  • 2013 (3차) - 6~7kt, 우라늄탄 가능성
  • 2016.1 (4차) - ‘수소탄’ 주장 (실제론 증폭핵분열 추정)
  • 2016.9 (5차) - 10kt 이상
  • 2017.9 (6차) - 100~250kt의 수소탄(열핵). 직전까지와 자릿수가 다른 위력

여기에 2017년 ICBM(화성-14·15호)이 더해지면서, 북한은 “미국 본토까지 수소탄을 날릴 수 있다”는 위협을 손에 쥐었다. 1kt 분열탄에서 200kt 수소탄으로의 진화 + 미사일 탑재용 소형화 - 이 종착점이 곧 2018년 외교 도박의 밑천이 됐다.

↑ 인터랙티브 - 여섯 번의 핵실험 위력(1kt→250kt)과 탄두 수 증가. 선형↔로그 눈금을 바꾸면 왜 이 도약을 과소평가하는지 드러나고, 막대를 누르면 실험별 상세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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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축 - 민생을 죈 대북제재 ]

북한이 하노이에서 그토록 풀려 했던 제재가 바로 이것이다. 그 이전 제재가 무기·사치품 위주였다면, 4·5·6차 핵실험과 ICBM에 대응한 2016~17년 유엔 제재는 북한의 외화벌이와 에너지를 직접 끊었다.

  • 2270호 (2016.3) - 4차 핵실험 후. 석탄·광물 수출 제한, 화물 검색 의무화
  • 2321호 (2016.11) - 5차 후. 석탄 수출 상한(하드캡), 구리·아연 등 추가 금지
  • 2371호 (2017.8) - ICBM 후. 석탄·철·수산물 전면 금지, 노동자 신규 허가 동결
  • 2375호 (2017.9) - 6차(수소탄) 후. 섬유 수출 금지 + 정제유·원유 수입 상한
  • 2397호 (2017.12) - 화성-15 후. 정제유 90% 삭감 + 해외 노동자 전원 송환

요약하면 석탄·철·수산물·섬유 등 주력 수출 봉쇄 + 석유 수입 상한 + 해외 노동자 송환 + 합작 금지 - 한 나라의 돈줄과 기름줄을 동시에 죈 것이다. 이 제재의 무게가 곧 하노이 협상의 무게였다.

핵심은 2017년을 정점으로 안에서는 핵·권력을 동시에 완성하고, 2018~19년 그것을 지렛대로 외교 도박에 나섰다가, 하노이 노딜로 좌절하자 2020년 다시 문을 닫아건 흐름이다. 이 한 번의 큰 호흡을 머릿속에 넣어두면, 이어지는 분석이 한결 또렷하게 읽힌다.

권력의 문법 - 피, 자리, 그리고 외척

북한 체제를 이해하는 열쇠는 두 단어다. ‘피(혈통)’와 ‘자리(수령의 좌)’.

장성택이 어떻게 1년 만에 제거됐는지를 보면 이 문법이 드러난다. 장성택은 막대한 돈줄과 인맥을 가졌지만, 정작 그를 체포한 보위부(비밀경찰)의 충성은 장성택이 아니라 ‘수령의 자리’를 향해 있었다. 김정은이 “역적”이라 선언하자, 보위부는 자기들의 후견인이던 장성택을 그대로 끌어냈다. 인맥은 가졌어도 총은 자리의 편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벼락치기로 즉위한 26세 청년이, 어떻게 자기를 세운 후견인마저 처형할 친위 세력을 가졌을까? 답은 그가 친위대를 ‘급조’한 게 아니라 ‘완성품으로 물려받았다’는 데 있다. 김씨 일가를 지키는 호위사령부(수만 규모의 친위 병력), 정치범을 감시·처형하는 보위부, 모든 간부를 감시·인사하는 조직지도부(OGD) - 이 60년 묵은 억압 기계는 처음부터 특정 개인이 아니라 ‘수령의 자리’에 복종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김정은은 그 시동 키를 넘겨받기만 하면 됐다. 그가 급하게 조달한 건 자기 자신이었지, 살인 기계가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을 세운 섭정마저 그 기계로 갈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살릴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 - 아내 김경희(김정은의 친고모) - 는 남편을 막지 않았다. 피(왕조)와 혼인(남편)이 충돌하자, 그녀는 피를 택했다. 장성택 처형 뒤 남편은 총살됐지만 아내는 신분을 유지하고 살아남았다. 피는 살고, 혼인으로 들어온 자는 죽는다 - 이것이 이 체제의 철칙이다.

같은 원리가 곳곳에서 작동한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은 ‘피’라서 선전선동·대외정책의 실세가 되지만, 아내 리설주는 ‘혼인’으로 들어왔기에 권력 0의 상징적 영부인에 머문다. 외척에게 권력을 주면 독자 권력 중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장성택을 친 최룡해가 오히려 살아남아 명목상 국가수반까지 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 그는 혁명 가문의 충성 자산을 가졌으되 독자 세력을 쌓지 않고 철저히 복종했다. 이 체제에서 오래 사는 법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용어 하나를 짚자. 김여정을 ‘방계’라 부르는 건 모순처럼 보인다 - 그녀와 김정은은 같은 부모(고용희) 밑의 친남매이니 아버지 김정일 기준으로는 둘 다 직계다. 하지만 ‘옥좌가 다음 세대로 내려가는 줄기’를 기준으로 보면 다르다. 옥좌의 본류는 김정은 → 그의 자식이고, 그 여동생 김여정은 옆으로 뻗은 곁가지(방계)다. 곁가지인 데다 여성이라 스스로 옥좌를 주장할 수 없으니, 마음 놓고 권력을 줄 수 있는 분신이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체제라면 이렇게 정교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다음 세대의 수수께끼 - 김주애와 백두혈통

이 합리성은 후계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김정은은 자녀가 셋(2010·2013·2017년생 추정)으로 알려졌지만, 공개된 건 둘째 딸 김주애뿐이다. 2022년부터 미사일 발사 현장에 데리고 나와, 군 간부들이 허리를 굽히는 모습까지 연출하며 후계 수업을 받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화성-17형 ICBM 앞에서 딸 김주애의 손을 잡고 걷는 김정은 (2022년, 조선중앙통신 / DailyNK)

왜 어린 딸을 일찍 내세울까? 역설적이게도 김정은 자신의 ‘벼락치기 트라우마’ 때문이다. 그는 검증 기간이 3년뿐이라 즉위 초가 불안정했고, 그래서 “후계는 일찍 키워야 안전하다”는 교훈을 체득했다. 얼굴을 미리 익히고 우상화를 일찍 쌓아두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깊은 수수께끼가 있다. 세습 독재에서 형제는 안전망이 아니라 서로의 사형 집행 대상이다 - 한 명이 권좌에 오르면 나머지는 불만 세력이 결집하는 ‘대안 깃발’이 되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이 형제 살해를 법제화했고, 김정은 자신도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했다(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은 그래서 지금도 잠적 중이다). 그렇다면 자식을 무대에 올리는 것 자체가 미래의 골육상쟁을 예약하는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북한은 단 한 명(김주애)만 우상화하고, 나머지(아들로 추정되는 첫째 포함)는 숨겨 경쟁 깃발이 되지 못하게 동결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 딸이 이으면 백두혈통이 끊기지 않나? 그렇지 않다. 딸도 김일성의 피를 절반 물려받은 직계다. 북한은 이미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을 ‘백두의 여장군’으로 띄웠고, 여동생 김여정을 2인자로 키운 전례가 있다. 진짜 위험은 딸 본인이 아니라, 그 딸이 결혼해 낳을 손주 세대의 ‘사위(부마)’가 권력 중심이 되는 것 - 바로 장성택 같은 인척의 권력화다. 그래서 사위는 철저히 기반 없는 사람으로 골라 무력화할 가능성이 크다.

흥미로운 건 두 세대의 구조가 닮았다는 점이다. 김정일+고용희는 아들(김정은)과 딸(김여정)을 낳았고, 김정은+리설주도 아들(추정)과 딸(김주애)을 두었다. 다만 카메라가 반대편을 비춘다 - 지난 세대엔 미래의 왕(아들 김정은)을 키워 보여줬는데, 이번엔 딸(김주애)을 보여주고 아들을 숨긴다. 그래서 김주애가 진짜 후계인지, 아니면 김여정 같은 ‘혈통의 2인자’로 키워지는 것인지는 김정은이 일부러 흐려둔 채 끝까지 쥐고 있는 카드다. 실제로 한국 국정원은 2026년 들어 그간 써온 ‘후계 수업’이라는 표현을 사실상의 ‘후계자 내정 단계’로 상향했다 - 다만 숨겨진 아들이 있는 한 최종 확정으로 못 박기엔 이르다. 분명한 건 - 이 모든 것이 ‘피 외에는 누구와도 권력을 나누지 않는다’는 원칙 위에서 후계 리스크를 정교하게 관리하는 계산된 행보라는 점이다. 즉흥도, 어리석음도 아니다.

피(혈통)와 혼인(인척)의 운명 대비 도해 피(혈통)와 혼인(인척)의 운명 대비 - 두 세대에 걸쳐 같은 규칙이 반복된다

한국의 실책 - ‘중재자의 덫’

이제 한국의 이야기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뼈아픈 실책은 ‘중재자 역할의 과잉 판매’였다.

2018년 한국은 스스로를 북미 사이의 중재자로 자리매김했다. 김정은 입장에선 “문재인 말을 믿고 트럼프와 앉으면 제재가 풀린다”는 기대를 갖게 됐다. 그런데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은 ‘노딜’로 끝났다.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 폐기를 내주고 민생을 죄던 제재(2016~17년 유엔 제재)를 풀려 했지만, 미국은 “영변만으론 부족하다, 숨긴 시설·탄두·ICBM까지 전부 폐기하라”는 빅딜을 요구했다. 핵을 통째로 먼저 내놓으라는 ‘리비아 모델’은, 핵을 포기한 뒤 죽임당한 카다피를 본 김정은에겐 받을 수 없는 요구였다.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 이 악수 뒤 회담은 ‘노딜’로 끝났다 (연합뉴스)

문제의 핵심은, 한국에는 미국의 양보를 끌어낼 지렛대가 없었다는 것이다. 중재자는 양쪽을 다 움직일 힘이 있어야 하는데, 제재 해제 권한은 미국에 있었다. 그런데도 기대만 부풀려 김정은을 끌어냈고, 그가 빈손으로 돌아가자 배신감만 남았다. 그 분노가 2020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이어졌다.

더 뼈아픈 사실은, 이것이 ‘문재인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의 구조적 한계라는 점이다. 누가 청와대에 있어도 같은 벽에 부딪힌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부와 비슷해 보이는 것도 인물 탓이 아니다. 북한이 원하는 것(제재 해제·안전보장·핵보유국 인정)은 전부 미국·유엔 차원이지 한국이 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은 문재인 때보다 운신의 폭이 더 좁다 - 북한이 2024년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남한을 통일 상대에서 ‘적대적 외국’으로 강등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라는 생명줄까지 얻어 한국이 덜 필요해졌으니까.

북한의 스마트한 전략

그렇다면 북한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깔봄을 거두고 보면, 거기엔 일관된 그랜드 전략이 있다.

핵은 절대 팔지 않는다. 김정은에게 핵은 체제 생존의 마지막 보험이다. 그는 핵을 다 내주고 개방하려는 게 아니라, 핵은 쥔 채 제재만 풀어 경제를 돌리려 한다. 인도·파키스탄처럼 “결국 세계가 인정하고 거래해주는 핵국가”가 되려는 것이다. 2022년 핵무력 법제화, 2023년 헌법에 핵보유국 명시에 이어, 2024년 11월엔 김정은이 핵무력의 ‘무제한 확장’을 지시했고 2025년엔 고체연료 ICBM 화성-20형까지 공개했다. 추정 핵탄두는 이미 50기를 넘어 매년 불어나는 중이다 - “비핵화는 없다”는 선언은 말이 아니라 물량으로 증명되고 있다.

강대국과 핵 대 핵으로 협상하고, 제재는 중국·러시아로 우회한다. 여기엔 한 편의 이중극이 있다. 중국·러시아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 마음만 먹으면 거부권으로 막을 수 있었는데도 2016~17년 제재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 핵실험이 도를 넘자 국제적 체면상 반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2017~2018년 초엔 중국이 실제로 석탄 수입을 급감시키며 진짜로 조였다. 이 압박이 먹혀 김정은이 협상 테이블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2018년 외교 국면이 열리고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자, 중·러는 단속을 풀기 시작했다. 공해상 환적(배끼리 몰래 석유를 옮겨 싣기), 국경 밀무역, 정제유 상한 초과 공급, 노동자 잔류 등으로 몰래 우회 지원한 것이다. 2019년엔 아예 안보리에 “제재를 완화하자”는 결의안 초안까지 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한이 포탄·병력을 대주자 2024년 러시아는 제재 위반을 감시하던 유엔 전문가패널마저 거부권으로 해체시켰다. 그들이 이러는 근본 이유는 하나다 - 북한 붕괴(완충국 상실, 미국 동맹이 국경에 닿는 것)를 핵실험보다 더 싫어하기 때문이다. 북한 무역의 90%를 쥔 중국의 의지에 따라, 제재는 사실상 와해되는 중이다. 북한은 이 구도를 정확히 읽고, 남한이 아니라 중·러를 지렛대로 삼는다.

전쟁을 기회로 바꾼다. 이 그랜드 전략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 2023년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김정은은 남의 전쟁을 자기 체제의 생존 자원으로 환전했다. 러시아에 포탄 수백만 발과 1만 5천 명이 넘는 병력을 대주고, 그 대가로 세 가지를 챙겼다 - 2023년 여름부터 2025년 말까지 100억 달러가 넘는 외화, 방공망·미사일 정확도·잠수함·정찰위성으로 이어지는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 그리고 앞서 본 전문가패널 해체 같은 안보리 차원의 정치적 방패다. 2024년 6월엔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을 명문화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까지 맺어, 러시아를 문서로 묶인 후견국으로 끌어들였다. 7천 명이 넘는 사상자를 감수하고도 이 거래를 밀어붙인 건, 청년병 수천 명의 목숨보다 핵·미사일 고도화와 강대국 뒷배가 체제 생존에 비교할 수 없이 값지다는 냉정한 계산 때문이다. 개성공단식 푼돈과는 차원이 다른 판을, 그는 남한이 아니라 유럽의 전쟁터에서 찾아냈다.

2024년 6월 평양, 유사시 상호 군사지원을 명문화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에 서명한 뒤 악수하는 푸틴과 김정은 (뉴시스)

그리고 남한은 잘라낸다. 개성공단·금강산 같은 남북 교류는 들어오는 돈은 적은데, 남한의 부와 정보가 흘러드는 통로가 된다. 북한 노동자가 남한의 풍요를 목격하는 순간 그것은 체제에 독이 된다. 그래서 북한은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남한 영상 유포 시 사형)까지 만들며 차단에 사활을 걸었다. 2024년엔 한 발 더 나아가 통일 상징물인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하고 경의선·동해선 도로·철도를 폭파하며, 남북을 잇던 물리적 통로 자체를 끊어버렸다. 남한을 ‘통일 대상’에서 지우고 헌법에 ‘적대적 교전국’으로 새긴 것과 정확히 같은 손놀림이다. “적은 돈을 벌자고 체제가 침식되느니, 핵국가로서 중러와 거래하는 편이 낫다” - 이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냉정한 생존 계산이다.

이 전략이 영악한 이유는, 북한이 자기가 가진 패와 처지를 정확히 알고 둔다는 데 있다. 약자가 자기 약함을 알고 그에 맞춰 두는 수 - 그것을 우리는 어리석다고 부를 수 없다.

넘사벽 격차의 진실 - 그것은 ‘제재의 산물’이다

물론 경제력·군사력의 격차는 넘사벽이다. 한국의 GDP는 북한의 수십 배다. 하지만 이 격차를 보고 “거 봐, 저들은 무능하다”고 결론짓는 건 큰 착각이다.

북한의 가난은 상당 부분 ‘핵을 선택하고 그 대가로 받은 혹독한 제재’의 산물이다. 앞서 본 2016~17년 유엔 제재는 석탄·철·수산물·섬유 같은 주력 수출을 통째로 막고, 석유 수입을 90% 가까이 줄이고, 해외 노동자를 송환시키고, 합작 투자를 차단했다. 한 나라의 돈줄과 기름줄을 동시에 끊은 것이다.

여기서 냉정하게 물어보자. 만약 한국이 똑같은 제재를 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을 못 팔고 원유 수입이 끊기는 순간, 한국 경제는 북한보다 훨씬 더 빠르고 처참하게 무너진다. 자급 경제에 길든 북한이 오히려 그 고통을 더 오래 버틴다. 즉 북한의 빈곤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외부와 단절된 채로도 정권을 70년 넘게 유지해온 ‘생존력’의 역설적 증거이기도 하다.

격차는 실재한다. 그러나 그 격차를 ‘우열’로 읽는 순간 우리는 다시 상대를 오판하기 시작한다.

우크라이나가 보여준 길 - 장창병, 스마트폰, 그리고 브레이브원

그렇다면 핵을 쥐고 중러를 등에 업은 북한 앞에서, 약자에 가까워진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나. 뜻밖에도 그 힌트는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나온다.

14세기, 가장 비싼 병과였던 기사(기병)를 무너뜨린 건 값싼 평민의 도구였던 장창(파이크)이었다. 사냥·농사 도구가 시대를 바꾼 것이다. 21세기에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은 21세기의 장창병이다. 500달러짜리 자폭 드론이 50억짜리 전차를 잡는다. “정밀타격 = 비싼 것”이라는 등식이 깨졌다.

그 드론을 만든 건 사실 스마트폰이다. 폰을 만들려고 대량생산한 카메라·센서·배터리·칩이 헐값에 풀리니, 구멍가게 공방이 조립만 해도 무기가 됐다. 비용 교환비의 역전 - 값싼 대량생산품이 비싼 엘리트 무기를 끌어내린 것이다.

상용 부품에 페트병 모양 탄두를 테이프로 붙인 우크라이나의 값싼 FPV 자폭 드론 - 500달러짜리가 50억짜리 전차를 잡는다 (Business Insider)

그러나 진짜 핵심은 무기가 아니다. 장창병도 창 하나로 기사를 이긴 게 아니라 ‘밀집대형’이라는 조직이 있어야 이겼다. 우크라이나의 비밀은 ‘전쟁터의 배달의민족’ 브레이브원 플랫폼에 있다. 국가가 무기를 직접 찍어낸 게 아니라, 군납의 5~10년짜리 서류 장벽을 없애고 “실력만 있으면 와서 만들라”는 플랫폼을 깔았다. 그러자 7개뿐이던 드론 회사가 500개로 늘었고, 민간 스타트업들이 매일 실전에서 검증하며 미친 속도로 진화했다. 2025년 문을 연 ‘브레이브원 마켓’엔 약 1,000개 기업이 붙어 부대에 18만 대가 넘는 드론·로봇을 직접 납품하게 됐고, 이제 드론 부대의 95%가 이 온라인 장터에서 무기를 골라 쓴다 - 전시에 군납 병목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반대로 러시아는 국가가 다 하려 했기에 - 개발·승인·조달 단계가 너무 많아 - 옛 모델에 머물렀다. 자유로운 경쟁 생태계가, 경직된 국가 주도 체계를 속도에서 이긴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마주한 적은 전차가 아니라 핵이다. 그렇다면 이 ‘값싼 비대칭’의 논리를 핵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핵은 무력화될 수 있는가 - 창과 방패의 경제학

값싼 드론이 비싼 전차를 잡았듯, 지금 쏟아지는 어떤 값싼 기술이 핵을 무력화할 수는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 가능성은 있지만 길은 둘로 갈리고, 둘 다 만만치 않다.

첫째 길은 ‘쏘기 전에 그 자리에서 부수는’ 무장해제 선제타격(공격)이다. 그런데 이건 사실상 신의 눈을 요구한다. 숨은 이동식 발사대와 잠수함까지 전부 찾아내(전 국토 투시) 동시에 때려야 하고, 하나라도 놓치면 보복당한다. 북한이 고체연료·이동식·잠수함·갱도로 핵을 분산시키는 게 정확히 이걸 막기 위해서다. 더 위험한 건, 이런 무기가 존재한다고 믿는 순간 북한은 “기다리면 다 뺏긴다”며 위기 때 오히려 먼저 쏘려 든다는 점이다. 무장해제는 평화가 아니라 불안정을 부른다. 우크라이나식 ‘브레이브원 모델’이 이 공격 쪽에선 성립하기 어려운 이유다.

둘째 길은 ‘날아오는 걸 떨어뜨리는’ 요격(방어)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게 하나 있다 - “핵을 요격하면 그게 터지지 않나?” 아니다. 핵폭발은 무기 내부의 고폭약이 나노초 단위로 완벽히 동시에 압축해야만 일어나는데, 외부에서 때리면 그 정밀한 순서가 맞춰지는 게 아니라 망가진다. 게다가 현대 핵무기는 ‘단일점 안전’ 설계로, 충격을 받아도 핵 출력이 나올 확률을 100만분의 1 미만으로 만들어 둔다. 요격당한 탄두는 핵폭발 없이 부서지고 방사성 물질만 흩어질 뿐이며, 높은 고도에서 잡을수록 오염도 옅다. 미사일 방어의 진짜 난제는 ‘터질 위험’이 아니라, 초속 7km의 작은 표적을 가짜 표적(decoy)들 사이에서 맞추는 것이다.

요격은 무장해제보다 공학적으로 닿을 수 있는 길이다. 숨은 발사대를 찾을 필요 없이, 날아오르면 레이더에 잡히니 그때 대응하면 된다. 다만 두 가지 잔인한 함정이 있다. 단 한 발만 뚫려도 도시가 사라지므로 방어는 ‘거의 완벽’해야 하고(누수의 저주), 공격자가 싼 미사일과 가짜 표적을 잔뜩 쏘면 비싼 요격탄이 먼저 바닥난다(포화). 게다가 서울은 북한과 너무 가까워 단거리 위협엔 경고 시간이 거의 없다.

이 함정을 깨는 열쇠가 바로 드론을 만든 그 힘 - 값싼 대량생산이다. 상용 카메라·칩·AI로 만든 값싼 요격 드론, 그리고 한 발에 전기값만 드는 레이저(지향성 에너지)는 ‘비용 역전’과 ‘포화’를 동시에 푼다. 우크라이나가 이미 값싼 요격 드론으로 러시아 드론·순항미사일을 떨구고 있다. 브레이브원의 논리가 공격이 아니라 방어에서 부활하는 것이다. 다만 이 ‘드론의 순간’은 느린 위협엔 이미 왔고, 초속 7km ICBM 탄두엔 가장 늦게 온다 - 물리학이 가장 높은 곳에 마지막 성벽을 쳐뒀기 때문이다.

미국이 2025년 시작한 ‘골든돔’ - 값싼 발사(스페이스X) + 우주 센서·요격으로 본토 전체를 덮겠다는, 레이건 SDI의 부활 - 이 바로 이 길의 국가적 실험이다. 다만 출범 1년여 만에 공식 사업비 추정만 1,750억에서 1,850억 달러로 불어났고, 독립 추계로는 20년간 2,500억 달러를 넘본다. 우주 요격체 개발엔 노스럽 그루먼을 포함한 십수 개 업체가 뛰어들었지만, 막대한 비용·미검증 기술·군비경쟁 유발이라는 벽은 그대로다(좋은 방패는 상대의 창 증강을 부른다 - 실제로 북한·중국·러시아는 이를 명분 삼아 핵 증강에 나섰다).

미국 ‘골든돔’의 핵심인 우주 기반 요격체(NGI) 개념도 - 궤도에서 상승 단계의 미사일을 때린다는 레이건 SDI의 부활 (Lockheed Martin)

핵을 직접 무력화하는 길은 이렇게 멀고 험하다. 그러나 이 논의가 가리키는 방향만큼은 분명하다 - 답은 적보다 비싼 무기가 아니라, 값싸고 빠르게 진화하는 비대칭 체계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의 길이 있다.

이재명이 진짜 힘을 갖는 법 - ‘자유’를 무기로 새 국방을 짓다

북한의 힘은 수령의 자리로 모든 것을 한 점에 모으는 전체주의의 잔혹한 통일성이다. 한국이 그 게임을 같은 방식으로 이길 수는 없다. 핵을 핵으로, 물량을 물량으로 맞붙는 건 이미 기울어진 싸움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북한에 없는 단 하나의 결정적 자산이 있다. 자유. 분산된 창의, 매일 경쟁하며 진화하는 수많은 민간의 머리들 -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이긴 바로 그 힘이다. 그러니 이재명 정부가 진짜 힘을 가지는 길은, 북한을 어르고 달래는 낡은 중재자 게임이 아니라 자유에서만 나오는 경쟁의 방식으로 산업을 키우고, 그 산업으로 새로운 국방력을 짓는 것이어야 한다.

전략은 두 축으로 짠다. 군사적으로는 ‘너무 비싸서 못 삼키게’(고슴도치), 외교·경제적으로는 ‘너무 값져서 못 버리게’(얽힘) 만드는 것이다. 둘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한 몸이다.

[ 군사 축 ] 고슴도치 - 너무 비싸서 못 삼키게

첫째, ‘한국판 브레이브원’을 깐다. 국가가 무기를 직접 설계하는 대신, 방산의 진입 장벽과 서류의 벽을 허물고 민간 스타트업이 실전 요구에 맞춰 경쟁하는 플랫폼을 만든다. 드론, 무인 수상·수중정, AI 사격통제, 값싼 요격체 - 이런 것들은 거대 방산이 아니라 빠르게 진화하는 작은 회사들의 생태계에서 나온다. 자유 경쟁이 곧 국방의 진화 속도가 된다.

둘째, 재래식 무기를 대체할 비대칭 국방력을 갖춘다. 비싼 전차·전투기를 같은 방식으로 더 많이 사는 게임이 아니라, 값싼 대량생산 + AI로 그것들을 무력화하거나 대체하는 무기 체계로 옮겨가야 한다. 특히 한국의 약점 - 서울이 북한과 너무 가까워 경고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 - 을 메우려면, 값싼 요격 드론과 지향성 에너지(레이저)로 ‘싼 위협을 싸게 받아치는’ 두꺼운 방어망이 필요하다. 미국이 골든돔으로 우주에 베팅하듯, 한국은 자기 처지에 맞는 비대칭 방패를 자기 손으로 지어야 한다.

[ 외교·경제 축 ] 얽힘 - 너무 값져서 못 버리게

군사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깊은 안전장치는 세계가 한국의 운명에 자기 이익을 걸게 만드는 것 - 국제정치학이 ‘얽힘(entanglement)’이라 부르는 전략이다. 대만이 그 교과서다. 전 세계 첨단 반도체를 TSMC가 쥐고 있어, 중국이 대만을 치면 중국 자신과 세계 경제가 함께 무너진다. 그래서 미국·일본이 대만 방어에 사활을 건다. 이른바 ‘실리콘 실드(silicon shield)’다.

셋째, 한국을 ‘없으면 세계가 멈추는 급소’로 만든다. 들어오는 외국 투자와 공급망을 적극 유치하되, 핵심은 그것을 쉽게 빼갈 수 없는 형태로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삼성·SK하이닉스가 세계 D램의 60% 이상), 배터리, 조선 - 한국이 세계의 대체 불가능한 ‘급소(chokepoint)’가 될수록, 한국을 치는 것은 곧 투자한 모든 나라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 된다. 다만 이 얽힘은 법으로 자본을 가두는 강압이어선 안 된다(그러면 투자가 겁먹고 들어오지 않는다). 가두는 게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가치와 생태계로 묶어 너무 값져서 못 떠나게 하는 것이다.

넷째, ‘왕관의 보석’은 본국에 뿌리내리게 한다. 한국 기업이 핵심 역량을 통째로 해외로 옮기면, 그건 전시의 ‘탈출구’만 만들고 실드의 급소가 본국을 떠나는 셈이다(미국이 보조금으로 대만·한국의 첨단 공장을 자국으로 빨아들이는 게 정확히 이 위험이다). 그렇다고 해외 투자를 무조건 막을 일은 아니다 - 해외 투자는 동맹을 엮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미국에 지은 반도체·배터리 공장은 미국을 한국의 운명에 더 깊이 묶는다). 답은 확장하되, 최첨단·대체불가의 ‘왕관의 보석’만은 본토에 단단히 박아두는 것이다.

다섯째, 재외동포와 한류를 ‘전 세계 이해당사자 네트워크’로 키운다. 750만 재외동포와 전 세계 한류 팬은, 한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각국의 여론과 정책을 움직이는 살아 있는 자산이다(유대인·아일랜드 디아스포라가 그랬듯). 핵심은 그들을 강제로 의무 지우는 게 아니라(타국 시민을 강제할 수는 없다), 재외동포청·복수국적·투자·문화의 끈으로 묶어 스스로 한국 편에 서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나아가 혼자가 아니라 뜻 맞는 나라들과 공급망을 함께 엮어(집단적 회복력), 누구도 한국을 함부로 흔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물론 이 얽힘도 만능은 아니다. 상대가 손해를 감수하고 덤빌 수도 있기에(대만조차 실드만 믿지 않고 군사적 고슴도치를 함께 키운다), 얽힘은 어디까지나 군사 축과 한 몸일 때만 작동한다.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돈으로 적을 압도하는 게 아니라, 자유로운 경쟁으로 적보다 빨리 진화하고, 세계를 내 편으로 얽어매는 것. 너무 비싸서 못 삼키고 너무 값져서 못 버리는 나라 - 그것이 전체주의 국가가 구조적으로 따라올 수 없는, 민주주의가 가질 수 있는 결정적 우위다. 단, 여기엔 역사가 새겨둔 무거운 단서가 하나 붙는다.

마지막 경고 - 살아남는 체제가 우월한 체제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자유가 우리의 자산이라는 말은, 민주·공화정이 그 자체로 우월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정치 체제에 본질적 우열은 없다. 역사가 인정하는 우월한 체제는 단 하나 - 살아남은 체제다. 그것이 독재든, 군주정이든, 무엇이든.

역사는 오히려 그 반대를 끝없이 증명한다. 번영하고 자유로운 체제가, 더 거칠고 규율 잡힌 독재·군사 국가에 무너진 사례는 차고 넘친다.

  • 아테네의 민주정은 토론과 번영에 익숙했지만, 데모스테네스가 “필리포스가 쳐들어온다”고 거듭 경고했음에도 무장을 게을리하다 마케도니아 군주정(필리포스 2세)에 카이로네이아(BC 338)에서 무너졌다.
  • 상업으로 번성한 카르타고는 국방을 용병에 맡긴 채, 시민이 직접 싸우는 로마에 끝내 멸망했다(“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한다”).
  • 송나라의 부와 바그다드의 문명 등 화려한 정주(定住) 문명들은, 기민하고 잔혹한 전쟁 기계 몽골 앞에 차례로 스러졌다.
  • 로마 공화정조차 내부의 방종과 내전 끝에 카이사르·아우구스투스의 1인 지배로 무너졌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당대 가장 선진적인 헌법을 갖고도 스스로 나치 독재를 불러들였다.
  •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황금의 자유’를 자랑했지만, 그 자유가 (귀족 한 명의 반대로 국정을 마비시키는) 방종으로 타락하자, 주변 독재 국가들에게 나라가 통째로 분할당해 지도에서 사라졌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평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민주·공화정이 무조건 강하고, 번영이 곧 안전을 보장해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역사는 정반대를 말한다 - 번영은 종종 방심을 낳고, 방심한 자유는 가장 먼저 무너진다.

자유의 진짜 의미는 ‘하고 싶은 대로 방만하게 살 권리’가 아니다. 스스로를 지킬 무장의 자유, 그 무거운 책임을 짊어질 자유다. 그 책임을 내려놓고 독재보다 나태하게 산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 스스로 무장을 포기하고 노예가 되기를 선택한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자유란 단지 토론할 자유가 아니라 싸우기 위해 매일 진화한 자유여야 한다.

그러니 한국이 가야 할 길은,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무장시키는 것이다. 자유로운 경쟁으로 산업과 국방을 키우고, 그 힘으로 스스로를 지킬 때 비로소 자유는 우리를 지켜준다. 지킬 힘 없는 자유는, 다음 정복자를 기다리는 화려한 먹잇감일 뿐이다.

북한을 어리석다고 깔보는 한 우리는 그들의 영악함에 계속 당하고, 자유가 거저 우리를 지켜준다고 믿는 한 우리는 역사의 그 숱한 패배자들의 줄에 서게 된다. 적을 우습게 보지 않는 것, 그리고 자유의 대가를 기꺼이 치르는 것 - 그것이 살아남는 자의 유일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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