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부유했던 독일 자동차 도시들은 왜 파산하는가 - 그리고 왜 한국이 더 위험한가
독일은 지방이 튼튼해 국가를 떠받치는 나라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1인당 소득 전국 최상위를 자랑하던 독일의 자동차 도시들이 지금 줄줄이 파산 위기로 몰리고 있다. 흔히 중국 전기차 탓이라 하지만, 진짜 원인은 도시의 운명을 단 하나의 기업에 통째로 걸어온 구조, 그리고 그 명문 기업마저 주인을 잃어버린 데 있다. 더 불편한 건, 똑같은 구조를 한국이 더 허술한 안전장치로 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 게다가 한국에선 기업이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 있어도 도시가 죽는다.
독일 바이에른주에 인골슈타트(Ingolstadt)라는 인구 14만 명의 작은 도시가 있다. 우리로 치면 충북 제천 정도 규모다. 그런데 이 14만 명 중 약 4만 명이 아우디(Audi) 직원이고, 가족까지 합치면 인구의 약 60%가 직간접적으로 아우디와 연관돼 있다. 도시 곳곳에 아우디 박물관, 아우디 스타디움, 아우디 직원·가족이 가입하는 보험사가 있다. 한마디로 “아우디 마을”이다.
이 도시는 아우디 덕분에 독일에서 1인당 시민소득 GDP가 두 번째로 높을 만큼 부유했다. 그런데 지금 이 도시가 파산을 걱정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왜 독일 도시들이 잇따라 파산하고 있는가”라는 기사로 이 현상을 다뤘다.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해, 독일 자동차 산업의 지배구조와 역사를 거쳐, 결국 같은 함정에 더 깊이 빠져 있는 한국의 지방도시를 비교한다.
도시 하나가 기업 하나에 걸려 있을 때
독일은 회사가 번 돈이 도시로 직접 꽂힌다
한국과 독일은 기업 세금이 도시로 흘러가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은 기업 순이익에 법인세 25%를 매기고, 이 돈은 일단 중앙정부로 간다. 그중 약 10%가 지방으로 다시 내려오니, 결국 기업 순익의 약 2.5%만 그 도시로 간다.
독일은 다르다. 기업은 나라에 내는 연방 법인세(약 15.8%)와 별도로, 사업장이 있는 도시에 사업세(Gewerbesteuer)를 따로 낸다. 이 사업세율은 도시마다 달라 보통 10~20% 사이인데, 인골슈타트는 14%다. 즉 아우디가 번 순이익의 14%가 곧바로 인골슈타트 시 금고로 들어온다. 한국(2.5%)과는 차원이 다른 결속이다.
그래서 기업이 흔들리면 도시가 즉사한다
2023년 아우디가 인골슈타트에 낸 사업세는 약 1억 9천만 유로로, 시 예산의 약 20%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듬해 아우디 실적이 악화되자 이 세수가 8천만 유로로 반토막 났다. 1년 사이 1억 유로가 증발한 것이다. 예산의 20%를 책임지던 기업이 휘청이자 도시 재정이 곧바로 붕괴 위기로 몰렸다.
아우디가 안 팔리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전기차 전환에 밀렸고,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뛰고 원전까지 닫으면서 독일에서 차 만드는 비용 자체가 비싸졌다.
누가 독일 자동차를 지배하는가 - 가문, 정부, 그리고 주인 없음
자동차로 먹고사는 독일 도시 지도
인골슈타트는 빙산의 일각이다. 독일은 주요 도시마다 특정 대기업이 박혀 있다.
| 도시 | 결합 기업 | 도시 | 결합 기업 |
|---|---|---|---|
| 볼프스부르크 | 폭스바겐 (본사) | 발도르프 | SAP (본사) |
| 인골슈타트 | 아우디 (본사) | 본 | 도이체텔레콤·도이체포스트DHL |
| 슈투트가르트 | 벤츠·포르쉐 | 프랑크푸르트 | 도이체방크·코메르츠방크 |
| 뮌헨 | BMW·지멘스·알리안츠 | 에센 | RWE·티센크루프 |
| 바이작 | 포르쉐 R&D | 뒤셀도르프 | 헨켈 |
| 레버쿠젠 | 바이엘 | 귀터슬로 | 베르텔스만 |
| 루트비히스하펜 | BASF | 하노버 | 콘티넨탈·TUI |
| 헤르초게나우라흐 | 아디다스·푸마·셰플러 | 프리드리히스하펜 | ZF·MTU |
| 에를랑겐 | 지멘스 헬시니어스 | 함부르크 | 에어버스·항만 |
| 쾰른 | 포드 독일 | 보훔 | (옛) 오펠 → 산업 전환 |
특히 소도시일수록 의존도가 극단적이다. 발도르프(SAP)·헤르초게나우라흐(아디다스·푸마·셰플러)·바이작(포르쉐)처럼 인구 1~2만 안팎 도시가 글로벌 기업 본사를 떠받친다. 반대로 보훔은 오펠 공장이 2014년 문을 닫은 뒤 산업 전환을 겪은 도시로, 뒤에 나올 한국 군산과 견줄 만한 사례다.
독일 자동차의 “최상단”은 어디인가
흔히 “독일 자동차의 정점이 벤츠냐 폭스바겐이냐”를 헷갈린다. 답은 기준에 따라 다르다.
- 규모·매출로는 폭스바겐 그룹이 압도적 1위다. 연 매출 2,500억 유로 이상에 임직원 65만 명, 유럽 시장 점유율 1위를 20년 넘게 지킨 독일 최대 기업이다. 아우디·포르쉐·람보르기니·벤틀리·스코다·세아트·쿠프라(승용)에 스카니아·만(상용트럭), 두카티(모터사이클)까지 12개 브랜드를 거느린다.
- 브랜드 위상으로는 메르세데스-벤츠가 고급차의 대명사다.
- 그리고 메르세데스-벤츠 그룹과 BMW 그룹은 폭스바겐과 별개의 독립 그룹이다.
즉 독일 승용차 대형 그룹은 폭스바겐·벤츠·BMW 세 개이고, 셋은 지배구조상 서로 완전히 독립이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소유하지 않는다.
폭스바겐 - 가문 + 정부의 이중 지배
폭스바겐의 진짜 정점은 폭스바겐 자신이 아니다. 폭스바겐의 최대주주는 포르쉐 SE(지주회사)로, 지분 31.9%에 무의결권 우선주 구조 덕에 의결권의 53.3%를 통제한다. 그리고 그 포르쉐 SE의 의결권 주식 전부는 포르쉐-피에히 가문이 소유한다.
구조가 순환형이라는 게 묘미다. 가문 → 포르쉐 SE → 폭스바겐 → (스포츠카 제조사) 포르쉐 AG. “포르쉐”가 맨 위 지주회사에도, 맨 아래 제조사에도 등장한다.
여기에 더해 니더작센 주정부가 지분 11.8%와 이른바 “폭스바겐법(VW-Gesetz)”으로 주요 결정에 거부권을 갖는다. 즉 폭스바겐은 가문이 소유하고 정부가 견제하는 이중 구조다. (무언가 삼성과 국민연금이 떠오르지 않은가?)
벤츠 vs BMW - 분산 소유 vs 가문 지배
벤츠와 BMW는 둘 다 폭스바겐 계열이 아닌 독립 회사이고, 둘끼리도 무관하다. 하지만 주인 구조가 정반대다.
- BMW는 콴트(Quandt) 가문이 약 46~50%를 지배한다(슈테판 콴트, 주잔네 클라텐). 명확한 주인이 있다. (이는 LG와 유사하다.)
- 벤츠는 지배 가문이 없는 분산 소유다. 최대주주조차 중국 자본이다 - 베이징자동차(BAIC) 9.98%, 지리(리수푸) 9.69%로, 중국계가 가장 큰 지분 블록(합 약 20%)을 이룬다. 쿠웨이트투자청이 6.84%다.
이 “벤츠만 주인이 없다”는 사실이 왜 중요한지는 뒤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그전에, 독일이 도대체 언제부터 프리미엄의 제왕이었는지부터 짚어야 한다.
독일은 언제부터 ‘프리미엄 제왕’이었나 - 의외로 최근의 일
독일이 진짜 1위였던 건 ‘프리미엄’, 45년
독일이 일관되게 세계 1위를 지킨 영역은 프리미엄(고급차)이다. 벤츠·BMW·아우디 3사를 합치면 글로벌 럭셔리 시장의 약 80%를 약 20년간 지배했다(2위권과 4 대 1의 압도적 격차).
| 시기 | 프리미엄 주도국 | 비고 |
|---|---|---|
| 1890~1900년대 | 프랑스 | 초기 자동차·고급차의 중심 |
| 1920~30년대 (황금기) | 미국 + 영국·프랑스 | 패커드·캐딜락 / 롤스로이스·부가티 |
| 1945~1970년대 중반 | 미국 (캐딜락 전성기) | 독일은 재건·회복기 |
| 1970년대 후반~현재 | 독일 | 약 45년 |
1970년대, 독일이 미국에게서 왕좌를 빼앗은 비결
그렇다면 독일은 어떻게 1970년대에 미국으로부터 프리미엄을 가져왔을까. 핵심은 하나다 - 같은 방식으로 싸워 이긴 게 아니라, “럭셔리의 정의 자체를 바꿔서” 미국이 강했던 전장을 무력화했다.
미국식 럭셔리는 “크고, 부드럽고, 크롬 번쩍이고, 옵션 많은 차”였다(캐딜락·링컨). 독일은 여기 정면승부하지 않고 “진짜 럭셔리는 크기가 아니라 엔지니어링과 주행성능”이라고 기준을 다시 썼다. 메르세데스는 “최고가 아니면 무(The best or nothing)”, BMW는 “궁극의 드라이빙 머신(Ultimate Driving Machine)”으로 럭셔리를 재정의했다.
거기에 두 차례 오일쇼크(1973·1979)가 미국의 강점이던 대형 V8을 시대착오로 만들었다. 미국차가 규제로 출력이 거세되는 사이, 작고 효율적이면서 잘 달리는 독일차가 새 기준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미국 빅3가 평범한 차에 가죽만 씌워 럭셔리로 파는 배지 엔지니어링(캐딜락 시마론)으로 자멸한 것도 한몫했다.
이 “룰 체인지”가 핵심이다. 그리고 지금 중국 전기차가 독일에게 똑같은 수를 두고 있다 - “럭셔리 = 엔진 명가의 기계공학”을 “럭셔리 = 소프트웨어·전동화·디지털 경험”으로 바꿔치기하는 중이다. 독일이 미국에게 했던 일을, 50년 뒤 중국에게 당하고 있다.
F1과 함께 자란 ‘성능 신화’, 그리고 그 균열
독일의 ‘성능 신화’는 트랙에서 가장 먼저, 가장 오래 증명됐고, 그 흐름은 독일 양산차의 부흥과 정확히 한 궤를 그린다. 시작은 1930년대였다. 메르세데스와 아우토 우니온(아우디 전신)의 ‘실버 애로우’가 그랑프리를 휩쓸며 독일 자동차의 첫 황금기를 알렸다. 그리고 독일이 럭셔리를 ‘성능’으로 다시 정의한 1970년대 이후로 트랙과 쇼룸은 나란히 갔다. 1983년 BMW 터보 엔진이 F1 챔피언을 만들었고, 포르쉐가 만든 엔진(TAG-포르쉐)이 1980년대 중반 맥라렌의 연속 우승을 떠받쳤다. 하이브리드 시대(2014~2021)에는 메르세데스가 컨스트럭터 챔피언을 8년 연속 독식했다. 미하엘 슈마허(7회)·세바스티안 베텔(4회) 같은 독일 드라이버 왕조도 그 위에 섰다.
이건 단순한 스포츠 성적이 아니었다. 트랙에서 증명한 성능이 쇼룸의 브랜드가 되고, 그 브랜드가 다시 프리미엄 판매로 돌아오는 선순환이었다. F1 지배와 양산 프리미엄 지배는 같은 뿌리 - ‘엔진을 세상에서 가장 잘 만든다’는 독일 공학력 - 에서 함께 자라난 한 몸이었다. 독일에게 F1은 취미가 아니라 성능 신화의 가장 화려한 광고판이었다.
그래서 균열도 한 몸으로 온다. 메르세데스가 F1을 8년 내리 지배하던 바로 그 시기에, 양산차 시장에서는 중국 전기차에 밀리기 시작했다. 트랙에서는 이기는데 시장에서는 지는 디커플링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F1이 한 세기 가까이 증명해온 ‘성능 = 엔진 공학’이라는 가치 자체가, 시장에서 전기·소프트웨어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독일이 가장 강한 그 무기의 값이 통째로 떨어진 것이다. 가장 빠른 증기기관차를 만드는 챔피언인데, 세상이 전기철도로 넘어가는 격이다. 더 상징적인 건, 그 마지막 성역이던 F1조차 전동화 규정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이 한 세기 가까이 딛고 서 있던 무대 자체가 바뀌는 중이다.
벤츠는 왜 주인이 없는가
최상위 프리미엄 브랜드인 벤츠는, 어떻게 BMW(콴트 가문)·폭스바겐(포르쉐-피에히 가문)과 달리 유일하게 지배 가문이 없을까.
벤츠는 “가문이 떠난” 게 아니라 애초에 가문 회사가 아니었다. 창업자 고틀리프 다임러(1900년 사망)와 카를 벤츠(1929년 사망)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1926년 다임러-벤츠 합병은 가문 승계가 아니라 1차대전 후 경제위기 속 도이체방크 주도의 구조조정이었다. 합병 직후 지분은 플리크 그룹 37.9%, 도이체방크 25%, 콴트 그룹 12.75%로, 처음부터 은행·산업자본가들의 “주주 회사”였다.
도이체방크라는 ‘인내자본’이 가문을 대신했다
그렇다면 가문도 없는 벤츠가 어떻게 최고의 프리미엄이 됐을까. 비결은 역설적이게도 그 은행 주도 구조에 있었다.
도이체방크 같은 주거래은행(하우스방크)은 단기 주가가 아니라 장기 산업 경쟁력을 봤다. 분기 배당 압박이 없으니 전문경영진이 “단기 배당보다 장기 엔지니어링 투자”를 우선할 수 있었다. 은행은 지분과 대출을 함께 쥐었기에 회사가 망하지 않고 꾸준히 R&D에 재투자하길 가장 원했다. 흔히 가문이 한다고 여겨지는 “대를 잇는 장기 투자”를, 벤츠는 은행+전문경영 체제가 대신 해준 것이다. 이게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이다.
여기에 “자동차를 발명한 회사”라는 정통성, 디젤 승용차(1936)·크럼플 존(1959)·ABS·에어백을 앞서 도입한 기술 선도가 더해져 벤츠는 최고가 됐다. 즉 벤츠 프리미엄의 비결은 “가문의 혼”이 아니라 인내자본 + 엔지니어링 우선 + 발명자 정통성이었다.
그 닻을 푼 건 독일 정부였다 - 슈뢰더의 세제 개혁
그런데 벤츠를 최고로 만든 그 인내자본이 2000년대 들어 떠났다. 방아쇠는 정치였다.
2000년 이전 독일은 기업이 보유한 다른 기업 지분을 팔면 양도차익에 최대 약 50%의 자본이득세를 물렸다. 도이체방크가 수십 년 들고 있던 다임러 지분은 평가차익이 막대해 팔면 세금 폭탄이라 못 팔고 묶여 있었다(역설적으로 이게 인내자본을 강제했다).
2000년 슈뢰더(사민당:노동정당) 정부가 이 자본이득세를 폐지했다(2002년 발효). 개혁의 명시적 목표 중 하나가 은행-기업이 얽힌 폐쇄적 네트워크 “독일 주식회사(Deutschland AG)”의 해체였다. 빗장이 풀리자 도이체방크는 마침 영미식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변신 중이라 기다렸다는 듯 다임러 지분을 팔고 떠났다.
그 빈자리를 채운 중국 자본
도이체방크가 떠난 자리를 채운 건 중국이었다.
- BAIC(베이징자동차그룹)는 베이징시 정부가 소유한 국유기업이다. 벤츠·현대와 합작(베이징벤츠는 BAIC 51%/벤츠 49%)하며, 2021년 지분을 9.98%로 늘려 벤츠 최대주주가 됐다.
- 지리(저장 지리 홀딩)는 리수푸 개인이 소유한 민영기업이다. 볼보(2010년 포드에서 인수)·로터스·폴스타·프로톤·런던택시·지커 등을 거느린 “중국의 폭스바겐”으로, 벤츠와는 스마트(50:50 합작)로도 엮여 있다. 2018년 리수푸가 개인 자격으로 9.69%를 사들였다.
2018년 지리는 홍콩 페이퍼컴퍼니(Tenaciou3 → Fujikiro → Miroku)를 겹겹이 쓰고, 90억 달러 규모의 칼라(collar) 파생상품과 은행 자금을 동원해 공시 직전까지 은밀히 매집했고, 독일 금융당국(BaFin)이 공시규정 위반 여부를 조사했다.
후원자가 있느냐, 투자자가 있느냐
여기서 이 글의 핵심 명제가 드러난다. 벤츠는 사실 도이체방크 시절에도 지배 가문이 없었다. 주인이 없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그런데도 그때는 세계 최고에 올랐고 지금은 무너진다. 무엇이 달라졌나. “주인이 있느냐”가 아니라, 그 빈자리를 채운 자본이 후원자(patron)냐 투자자(investor)냐가 달라졌다.
도이체방크는 후원자였다. 회사가 오래 살아남아 더 좋은 차를 만들기를 바랐기에, 이익을 빼가기보다 R&D에 묶어 두고 위기 때 돈줄이 돼 줬다. 반면 지금의 중국 자본과 기관투자자는 투자자다. 벤츠를 키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벤츠를 발판으로 자기 목적 - 중국은 기술·브랜드·시장 접근, 펀드는 분기 수익 - 을 이루려 한다. 같은 ‘주인 없음’이라도, 후원자가 지키던 벤츠와 투자자가 올라탄 벤츠는 전혀 다른 회사다.
그래서 더 정확한 명제는 이것이다. 기업을 살리는 것은 ‘주인이 있느냐’가 아니라 ‘후원자가 있느냐’다. 가문(BMW·포르쉐)은 보통 가장 강력한 후원자다 - 자기 회사이기에 대를 이어 장기 투자한다. 그러나 가문이 없어도 후원자(과거 벤츠의 도이체방크)만 있으면 회사는 자란다. 최악은 후원자는 떠나고 투자자만 올라타는 것, 바로 지금의 벤츠다.
그 결과 - 프리미엄 1위를 내주는 중이다.
이 모든 게 지금 벤츠의 현주소로 나타난다.
- 글로벌 프리미엄 판매 1위는 BMW에 내줬다(2024년 BMW 220만 대 vs 벤츠 198만 대). 벤츠는 대중형을 줄이고 마이바흐·AMG 같은 초고가에 집중하는 “정상만 사수” 전략으로 후퇴 중이다.
- 그 정상마저 중국이 떠받친다. 2025년 전 세계에서 팔린 S클래스 3대 중 1대가 마이바흐, 중국에서는 2대 중 1대가 마이바흐였다.
- 그런데 그 중국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벤츠 중국 판매는 2024년 -7%, 2025년 -19%로 급락했다. 중국 부유층이 자국 럭셔리 전기차로 옮겨가고 있다.
소유(최대주주가 중국)·시장(판매의 3분의 1이 중국)·생산(베이징벤츠)·최고급(마이바흐의 절반이 중국)이 모두 중국에 묶인 지금, “요즘 벤츠는 중국차 느낌”이라는 인상은 과장이 아니다. 가문이 지킨 BMW가 아직 1위인 것과 대비하면, 결국 “주인이 있느냐 없느냐”가 프리미엄의 명운을 갈랐다.
한국 - 같은 함정, 더 약한 안전장치
이제 이 모든 구조를 한국에 대입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은 독일의 위기를 거의 그대로 재현하면서, 한 가지는 독일에도 없는 더 나쁜 형태로 겪고 있다.
거제 = 인골슈타트, 그러나 더 극단적
거제는 GRDP의 약 70%, 고용의 60% 이상, 수출의 90% 이상을 조선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에 의존한다. 인골슈타트의 “예산 20%”보다 훨씬 극단적인 단일산업 도시다. 2010년엔 1인당 GRDP가 전국 1위였다.
조선 불황기(2015~2017)에 그 대가를 치렀다. 조선 종사자가 1년 반 만에 25% 줄었고, 청년 인구는 2014년 7.7만에서 2023년 4.6만으로 약 3만 명이 빠져나갔으며, 아파트값은 20% 넘게 폭락했다.
그런데 여기서 독일에도 없는 한국 특유의 비극이 드러난다 - “호황의 역설”이다. 2025년 한화오션 영업이익이 +1,032% 폭증했는데도, 한화오션 본거지 옥포동 상가 공실률은 35.1%(전국 평균의 3배)에 달하고, 인구는 정점이던 2016년 25.7만 명에서 23만 명 선까지 줄었다. 이유는 낙수효과 단절이다. 조선업 신규 인력의 86%가 외국인이고(거제 외국인 5,404명 → 14,969명), 이들의 소비가 기숙사·사내식당에 갇혀 지역으로 돌지 않는다. 임금이 도시에 안 도는 것이다.
울산 = 볼프스부르크, 고소득의 그림자
울산은 독일 볼프스부르크(폭스바겐 도시, 1인당 소득 1위)의 한국판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세계 최대 단일 자동차공장(연 140만 대, 3.2만 명)이고, 석유화학단지까지 더하면 한국 경제의 중추로,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 하나가 국내 생산의 28%·수출의 32%를 담당한다.
1인당 GRDP는 9년 연속 전국 1위(8,519만 원)지만, “속 빈 1위”다. 10년 증가율은 11.9%로 전국 꼴찌이고, 소득의 약 20조 원이 역외로 유출돼 개인소득은 서울에 밀린 2위다. 인구는 2015년 117만 정점 후 110만 선이 무너졌다.
가장 직접적인 위협은 볼프스부르크와 똑같은 EV 전환 충격이다. 2030년 EV 비중 45%에 도달하면 울산 자동차부품 고용이 25%(9,406명) 줄고, 내연부품의 37%(엔진부품은 전량)가 소멸할 전망이다. 거기에 석유화학은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여천NCC·SK지오센트릭의 NCC 공장이 연쇄 폐쇄되는 중이다. 실제로 조선 불황기(2015~2017)에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는 조선 종사자가 5.7만 명에서 3.7만 명으로 35% 줄며 인구·상권이 함께 무너진 바 있다. 현대차 생산직 연봉 약 1억 원의 두터운 중산층은, 볼프스부르크의 “잘 보호된 고임금 기계공학 일자리”가 EV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과 정확히 겹친다.
군산 = 루르, 그러나 전환은 실패에 가깝다
군산은 1~2년 사이 자동차(한국GM 2018년 철수, 연 28만 대)와 조선(현대중 군산조선소 2017년 중단, 5,250명)을 동시에 잃는 이중 타격을 받았다. GM 철수만으로도 협력업체 포함 약 1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인구는 27.5만 → 25.7만으로 줄고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됐다.
루르가 선제적·협력적 전환으로 부활한 것과 달리, 군산의 전환은 사후적·정치주도였고 실패에 가깝다. “군산형 일자리”(전기차 클러스터)는 목표 대비 고용 32%, 생산 1.3%로 사실상 좌초했다(공장을 인수한 명신은 2024년 전기차 사업을 접었다). 새만금 이차전지 클러스터가 LG화학·SK온·에코프로 등 10조 원 투자를 유치해 그나마 성과지만, 자본집약적이고 입지가 분리돼 옛 GM·조선 실직 인력을 흡수하지 못한다. 루르가 수십 년에 걸쳐 정부·대학·기업이 협력한 것과 달리, 군산은 붕괴 후 급조한 국정과제라 시장성 검증이 부족했다.
POSCO·KT = 벤츠, 주인 없는 회사
벤츠가 가문도 은행도 없는 무주공산이듯, POSCO·KT는 2000·2002년 완전 민영화로 지배주주가 사라진 “소유분산기업”이다. POSCO는 국민연금(약 6.71%)이 유일한 5% 이상 주주이고 외국인이 약 27%로 흩어져 있으며, KT는 국민연금에 더해 신한은행(5.64%)·영국계 펀드 실체스터(5.07%)가 5%대로 어깨를 나란히 한다. 즉 둘 다 ‘주인’이 없다.
그 결과가 “회장 잔혹사”다. POSCO는 1~8대 회장이 전원 임기를 못 채웠고(정권 교체 때마다 교체), KT도 황창규를 빼면 모두 수사·교체됐다. 2024년에는 국민연금이 POSCO 최정우 3연임과 KT 구현모 연임을 반대해 좌초시켰다. 윤석열 정부가 2023년 “소유분산기업에 스튜어드십이 작동해야 한다”며 개입을 예고한 직후였다. KT&G·HMM·KAI 등 같은 취약구조의 기업들도 정권 교체기마다 같은 외풍에 노출된다.
다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벤츠의 외부 세력은 시장(중국 자본)인데, POSCO·KT는 최대주주가 국민연금(국가)이라 통제권이 시장이 아니라 정권으로 흘러간다. 한국이 더 정치적이다. 지역 종속도 똑같다 - 포항은 지방세의 23%(철강 포함 70%)를 POSCO에 의존하는데, 2023년 포스코 지방세가 1,071억 → 171억으로 급감하며 시 재정에 비상이 걸렸다.
F1과 같은 재벌의 역설
한국에서 재벌의 가문 지배는 늘 비판의 대상이었다 - 편법 승계, 황제경영, 일감 몰아주기. 다 맞는 지적이다. 그러나 자본 안보의 관점에서 보면 정반대 그림이 나온다.
벤츠를 보라. 가문도 은행도 없는 ‘깨끗한 분산 소유’가 된 결과, 그 빈자리를 중국 국유·민영 자본이 최대주주로 채웠다. POSCO·KT를 보라. 주인이 없으니 정권이 회장을 갈아치운다. 반면 BMW는 콴트 가문이 절반을 쥐고 있어 어떤 외풍도, 어떤 외국 자본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한 채 아직 프리미엄 1위를 지킨다.
한국의 삼성·현대차·SK·LG가 바로 BMW 쪽이다. 순환출자와 지주회사로 가문이 통제권을 단단히 쥐고 있어, 중국 자본이 삼성전자나 현대차의 최대주주가 되는 일은 구조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재벌 개혁’의 이름으로 허물려던 그 가문 지배가, 벤츠·POSCO의 운명을 보면 오히려 핵심 기업을 외국 자본과 정치 외풍으로부터 지켜온 방패였던 셈이다.
물론 가문 지배의 폐해(승계·사익편취)는 여전히 유효한 문제다. 하지만 “주인 있는 회사”의 그림자만 보느라 그 빛 - 장기 투자(삼성 반도체·현대 전기차)와 외부 자본 방어 - 을 통째로 잊고 있던 것은 아닌지, 벤츠의 추락이 되묻는다. 주인을 없애는 것이 늘 선(善)은 아니다.
파티는 끝났다 - 이미 시작된 동시다발 쇼크
2025년, 산업도시들이 줄줄이 “위기지역”으로 지정됐다
2025년 한 해에만 정부가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한 곳이 네 곳이다 - 여수(5월)·포항(8월)·서산(8월)·광양(11월). 철강 벨트(포항·광양)와 석유화학 벨트(여수·서산)가 동시에 무너진 것이다. 공통 원인은 하나, 중국발 공급과잉이다. 앞서 본 독일 자동차 도시들이 중국 전기차에 무너지는 것과 정확히 같은 구도가, 한국에선 철강·석유화학에서 한꺼번에 터지고 있다.
법인지방소득세가 증명한다 - “기업 실적 = 도시 세수”
이 글 내내 말한 “기업이 흔들리면 도시가 즉사한다”는 명제는, 한국 지자체 세수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인골슈타트의 사업세 반토막이 한국에선 “세수 9할 증발”로 나타났다.
| 도시 | 주력산업 | 법인지방소득세 변화 |
|---|---|---|
| 포항 | 철강(포스코) | 1,490억(2022) → 571억(2025), -62% |
| 서산 | 석유화학 | 429억 → 32억, -92.5% |
| 거제 | 조선 | 불황기 8년 정체 → 2025 약 1,800억(업황 회복분) |
특히 서산은 석유화학 기업의 국세 납부액이 2년 만에 1조 4,951억 → 1,160억으로 92% 급감했다. 거제만 조선 호황으로 세수가 반등했지만, 앞서 봤듯 그 호황조차 도시로 흐르지 않는다(호황의 역설). 즉 한국 산업도시의 세수는 “잘해야 제자리, 대부분은 붕괴”다.
조선의 “호황”마저 착시일 수 있다
유일하게 웃는 조선업도 안심할 수 없다. 지금 조선 빅3의 호황은 새 경쟁력이 아니라 과거에 비싸게 받아둔 일감(3~4년치)의 실적 반영이다. 정작 신규 수주 물량 점유율은 중국이 약 85%를 가져갔다(한국은 12.8%). 한국은 LNG선 같은 고부가 선별 수주로 버틴다 - 2025년 세계 LNG선 수주의 92%를 한국이 가져갔고, 수주 1척당 작업량(CGT)도 중국의 1.6배여서 ‘척수는 적어도 값나가는 배’를 쥔다. 이미 3.5년치 일감을 확보해 2028년까지 도크가 찬 상태다. 다만 수출입은행은 2026년부터 ‘수주절벽’ 위험을 경고한다. 즉 지금의 호황은 비축분이고, 진짜 시험대는 일감이 바닥나기 시작하는 2027~2028년이다. “조선은 살아났다”는 안도가 이른 이유다.
한국식 위기 대응 - “터뜨리지 않고 미루기”
더 우려스러운 건, 한국이 위기를 정면돌파가 아니라 지연으로 다루는 패턴이다. 부동산 PF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부실 사업장을 정리하는 대신 만기를 계속 연장하는 ‘폭탄 돌리기’로 충격을 미뤄왔다(이른바 “질서 있는 연착륙”). 그러나 미뤄둔 만기가 2026년 하반기에 몰린다 - 4분기에만 만기 도래 PF 채권이 약 13조 원이다. 석유화학의 구조적 저점(회복은 2027년 이후 전망), 조선의 수주절벽, PF 폭탄이 모두 2026~2028년에 겹쳐 온다.
결론 - 파티는 끝났다, 이제 쇼크에 대비할 때다
종합하면, 한국 산업도시의 파티는 이미 끝났다. 일부 도시가 아직 웃고 있다면(거제·조선), 그건 과거에 벌어둔 비축분 덕이지 새 동력이 아니다. 세수는 무너지고(포항 -62%, 서산 -92.5%), 청년은 떠나고, 위기지역 지정은 줄을 잇는다. 그리고 그 충격이 한꺼번에 닥칠 시점이 2026~2028년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에겐 아직 방패가 있다 -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글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기업과 도시를 지키는 것은 ‘주인’이 아니라 ‘후원자’다. 후원자(인내자본)를 잃고 투자자만 남은 벤츠는 중국 자본에 넘어갔고, 후원자도 주인도 없이 정권만 올라탄 POSCO·KT는 외풍에 휘둘렸다. 반면 가문이라는 가장 강한 후원자를 가진 BMW는 외풍을 막고 1위를 지켰고, 같은 이유로 삼성·현대차에는 중국 자본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그 점에서 한국에는 아직 후원자(가문)라는 방패가 있다.
그런데 후원자가 있다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더 불편한 진실은 따로 있다 - 그 후원자(국내 자본)가 대중적 정당성을 잃으면, 정작 위기가 닥쳤을 때 사회가 그들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홈플러스가 쿠팡에, JTBC가 넷플릭스·유튜브에 밀려 무너질 때 사람들은 “우리 산업의 손실”이 아니라 “꼴 좋다”를 먼저 느꼈다. 상속 자본과 사모펀드가 ‘우리 편’의 자격을 잃은 자리에서는, 외국 플랫폼이 우리가 서로 미워하는 사이에 이긴다(이 정서의 뿌리와 해법은 별도 글 왜 우리는 홈플러스와 JTBC의 몰락을 꼬시다고 말하는가에서 자세히 다뤘다).
두 글을 포개면 한국이 외국·중국 자본에 맞설 진짜 방어선은 두 겹이다.
- 1겹: 후원자의 존재. 가문은 외국 자본을 막는 방패이자, 대를 이어 장기 투자하는 후원자다. 벤츠는 이 후원자(은행)를 잃고 투자자만 남아 무너지는 중이고, 한국 재벌은 가문이라는 후원자를 아직 갖췄다.
- 2겹: 후원자의 정당성. 위기 때 사회가 “저건 우리 회사다”라며 함께 막아설 대중적 신뢰. 한국 재벌이 위태로운 건 바로 이 두 번째다.
그래서 한국의 과제는 가문 지배를 허무는 것이 아니다. 그건 중국 자본 앞에서 스스로 방패를 깨부수는 일이다. 진짜 할 일은 그 가문 자본에 책임·투명성·공정한 출발선을 묶어, ‘투자자처럼 빼가는 주인’이 아니라 ‘후원자다운 주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 세습하되 견제와 사회환원을 대가로 치르는 스웨덴 발렌베리처럼.
후원자다운 주인이 무엇인지는 뜻밖에도 축구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별도 글 KFA는 실패했고 JFA는 정답인가). 2002년 월드컵 4강 때 정몽준 회장은 히딩크를 직접 고르지 않았다. 전문가 기술위원회가 감독을 고르고, 회장은 전권과 연봉을 보장하며 초반 참패의 경질 여론을 막아주는 ‘후원자’에 머물렀다. 전문가가 판정하고 자본은 받쳐주는 분업이 4강의 토대였다. 반대로 그 뒤 정몽규 체제는 그 심판(기술위원회)을 없애고 회장 한 사람이 실권을 쥐면서, 감독 선임이 학연·불공정 논란을 반복했다.
여기에 자본의 올바른 자리에 대한 답이 있다. 재벌은 후원자여야 하지 지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돈과 자원은 대되, 공정한 룰을 판정하는 일은 독립된 심판에 맡기고 자신은 그 심판이 매수되거나 폐지되지 않도록 받쳐주는 것 - 이것이 후원자와 지배자를 가르는 선이다. 발렌베리가 세습하면서도 정당성을 인정받고, 도이체방크가 벤츠를 세계 최고로 키운 이유가 모두 같다. 그들은 받쳐주는 후원자였지, 룰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가 아니었다. 그래야 1겹(후원자)과 2겹(정당성)이 함께 서고, 중국 자본이 벤츠를 삼키듯 한국 핵심 기업을 노릴 때 비로소 공동체가 함께 막아선다.
독일의 오늘 - 후원자를 잃은 명문 기업이 투자자(중국 자본)에 넘어가고, 단일 산업에 걸린 도시가 무너지는 풍경 - 은 준비하지 않은 한국의 내일이다. 다만 우리에겐 아직 독일 벤츠에 없는 것, 즉 후원자(가문)라는 방패가 남아 있다. 남은 일은 그 후원자를 다시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방패가 녹슬어 정당성까지 잃기 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