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홈플러스와 JTBC의 몰락을 꼬시다고 말하는가 - 외국 플랫폼과 상속 자본의 시대
홈플러스와 JTBC의 몰락은 단순히 사모펀드와 재벌 3세의 실패담이 아니다. 한쪽에서는 쿠팡·넷플릭스·유튜브 같은 미국계 또는 미국식 플랫폼 자본이 한국 유통과 미디어의 수익 구조를 바꿔놓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내 자본이 대중에게 더 이상 "우리 편"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플랫폼에 밀리는 장면을 보면서도 산업의 손실보다 특권층의 몰락을 먼저 본다. 이것이 진짜 위기다. 무너지는 것은 기업 하나가 아니라, 위기 때 같이 막아설 공동체적 방어선이다.
JTBC가 206억 원을 못 갚았다는 뉴스는 처음엔 이상하게 들린다. 국내 주요 종편이고, 중앙일보를 가진 중앙그룹 계열사인데 고작 206억 원 때문에 무너진다고? 하지만 206억 원은 원인이 아니었다. 이미 무너진 현금흐름이 밖으로 드러난 신호였다.
홈플러스도 비슷하다. 대형마트 2위였던 회사가 왜 이렇게까지 몰렸는가. 겉으로는 소비 방식 변화와 온라인 쇼핑의 부상 때문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MBK파트너스의 차입인수, 점포 매각, 세일앤리스백, 누적 적자, 이자 부담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을 각각 “능력 없는 재벌 3세”와 “등쳐먹은 사모펀드”로만 보면 또 다른 핵심을 놓친다.
홈플러스는 쿠팡과 싸우다 밀렸다.
JTBC와 SLL은 넷플릭스·유튜브가 바꿔놓은 시장에서 버티다 무너졌다.
즉 이 사건은 한국 기업이 미국계 또는 미국식 플랫폼 자본과 맞붙어 패배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중은 이 패배를 “우리 산업의 손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꼬시다”에 가깝다.
왜 그렇게 됐을까.
1. JTBC의 206억 원은 원인이 아니라 신호였다
2026년 6월 12일 JTBC는 약 206억 원 규모의 유동화 차입금을 만기 상환하지 못했다. 이후 중앙그룹 지주사 중앙홀딩스, 콘텐트리중앙, 메가박스중앙, 중앙피앤아이 등이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한겨레는 JTBC 채무불이행 이틀 만에 중앙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
이것은 206억 원짜리 사고가 아니다. 그 정도 금액을 못 막았다는 사실은, 이미 더 큰 부채 구조가 막혔다는 뜻이다.
중앙그룹의 구조는 원래 이렇게 짜여 있었다.
JTBC가 돈을 빌린다.
그 돈이 SLL의 콘텐츠 제작과 성장에 들어간다.
작품이 흥행하면 IP와 2차·3차 유통 수익은 SLL에 남는다.
그런데 빚은 JTBC 쪽에 남는다.
JTBC는 빚 도관이고, SLL은 가치 그릇이었다. 문제는 이 구조가 2021년 콘텐츠 호황기에는 영리한 금융 설계처럼 보였지만, 시장이 꺾이자 그룹 전체를 압박하는 폭탄이 됐다는 점이다.
2. SLL 상장 베팅은 성장자금이 아니라 풋옵션 폭탄이 됐다
2021년은 K콘텐츠가 가장 뜨거웠던 시기였다. 오징어게임 이후 넷플릭스와 디즈니 같은 글로벌 OTT가 한국 콘텐츠에 돈을 쏟아붓고 있었다. SLL도 분위기가 좋았다. 이태원 클래스, 부부의 세계 같은 히트작이 있었고, 중앙그룹은 SLL을 상장시키면 대규모 회수 이벤트를 만들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프랙시스캐피탈과 텐센트 계열 FI가 4,000억 원대 프리IPO 자금을 넣었다. 당시 SLL은 1조 원대 미래가치를 인정받았다.
문제는 조건이었다.
이 돈은 그냥 들어온 돈이 아니었다. 3년 안에 상장하고, 안 되면 1년씩 두 번 더 기회를 주되, 최종적으로 2026년 3월까지 IPO를 못 하면 원금에 이자를 붙여 돌려줘야 하는 구조였다. 호황이 계속되면 성장자금이지만, 시장이 꺾이면 풋옵션 시한폭탄이다.
그리고 시장은 꺾였다.
OTT 경쟁은 처음엔 한국 제작사에 돈을 몰고 왔다. 하지만 곧 제작비 인플레이션으로 바뀌었다. 회당 9억 원도 비싸다던 드라마 제작비가 2020년대에는 회당 30억 원대로 뛰었고, 스타 출연료도 함께 올랐다. 작품은 유명해졌지만, 회사에 남는 돈은 줄었다.
SLL은 재벌집 막내아들, 힘쎈여자 강남순 같은 흥행작이 있었는데도 적자를 냈다. 콘텐츠를 못 만든 게 아니다. 콘텐츠를 잘 만들어도, 제작비와 금융비용을 덮을 만큼의 현금흐름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JTBC 사태의 핵심은 이것이다.
206억 원 빚이 중앙그룹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1조 원짜리 미래가치를 배팅했으나 무너진 것이다.
다른 종편은 왜 멀쩡했나
같은 종편이라도 TV조선·채널A·MBN은 이런 위기를 겪지 않았다. 차이는 확장의 폭에 있다. 이들도 콘텐츠 투자는 했지만, JTBC·중앙그룹처럼 방송·드라마 스튜디오·영화관·영화 배급·해외 제작사·FI 투자금·IPO 약속까지 한 줄로 묶은 공격적 확장은 하지 않았다. TV조선은 트로트 예능 중심으로 수익성 있는 포맷을 만들고 드라마 제작 편수를 줄여 비용을 통제했고, 채널A와 MBN은 상대적으로 뉴스·시사·교양·예능 같은 방송 본업에 가까웠다. 같은 업종에서 한쪽만 무너졌다는 사실은, 이번 위기가 ‘방송업 자체의 불황’이 아니라 ‘특정 구조의 베팅이 터진 것’임을 거꾸로 증명한다.
3. 홈플러스도 같은 병이었다 - 저금리 레버리지의 청구서
여기까지가 JTBC 한 건의 미시적 해부다. 그런데 시야를 넓히면, 같은 시기 잇따른 ‘제국의 붕괴’가 같은 병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홈플러스는 업종은 다르지만 병의 성격은 비슷하다. MBK파트너스가 2015년 7조 원대 차입인수(LBO)로 떠안은 부채가 고금리 국면에서 부담으로 돌아왔다. 주채권자 메리츠금융이 2024년 1조 3천억 원을 부동산 담보로 대출했으나 부동산 가치가 급락해 추가 자금 투입을 거부하면서 자금줄이 끊겼고, 결국 전국 매장의 1/3이 넘는 37개 점포를 폐점하고 이미 5천 명가량이 일자리를 잃었다.
두 사례 모두 사업 자체의 경쟁력 문제가 아니다. ‘저금리 때 빚으로 덩치를 키운 구조’가 고금리에서 역회전한 것이다. 그래서 “잘 나가다 겪는 성장통”으로 보기 어렵다. JTBC의 SLL 풋옵션과 홈플러스의 LBO 부채는,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이 ‘저금리 시절의 레버리지가 고금리에서 청구서로 돌아온’ 사건이다.
그러나 단순히 매크로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분명 ‘경쟁’에서도 밀린 것은 사실이다.
홈플러스는 원래 오프라인 유통 공룡이었다. 그런데 사모펀드 인수 이후 자산은 유동화되고, 점포는 줄고, 임대료 부담은 늘고, 온라인 전환은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 그 사이 쿠팡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쿠팡은 한국에서 사업하지만, 회사 스스로를 “미국 기술 기업”이자 “Fortune 150 company”라고 설명한다. 쿠팡 공식 홈페이지 쿠팡은 2021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상장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840억 달러로 집계됐다. 김앤장
이 말은 “쿠팡은 외국 회사니까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쿠팡은 한국에서 고용도 만들고, 물류 혁신도 만들고, 소비자의 생활 편의도 크게 높였다. 문제는 자본의 성격이다. 홈플러스는 부동산과 점포와 임대료를 안고 싸웠고, 쿠팡은 뉴욕 자본시장과 플랫폼·물류·데이터 모델을 들고 싸웠다.
한쪽은 점포를 팔아 현금을 만들었다. 다른 한쪽은 적자를 견디며 물류망과 회원제 플랫폼을 깔았다.
그 결과 대중은 홈플러스를 “우리 유통”으로 보기보다 “MBK가 뽑아먹다 망한 회사”로 본다. 반대로 쿠팡은 미국식 자본시장 위에 올라탄 플랫폼이지만, 소비자에게는 빠르고 편한 서비스로 경험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무서운 반전이다. 국민이 산업 국적보다 자기 경험을 먼저 믿기 시작하면, 국내 자본이라는 말만으로는 아무 방어선도 생기지 않는다.
JTBC도 넷플릭스·유튜브와 싸웠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JTBC도 마찬가지다.
JTBC와 SLL은 한국 콘텐츠 생태계를 키운 측면이 있다. 좋은 작품을 만들었고, 국내 제작 역량을 글로벌 시장에 연결했다. 하지만 그들이 싸운 시장은 더 이상 과거의 방송 시장이 아니었다.
유튜브는 시청 시간을 가져갔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가격과 제작비의 기준을 바꿨다.
OTT 광고형 요금제와 디지털 광고 성장은 방송 광고 시장을 직접 압박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자료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2024년 방송광고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6.8% 감소했고, 광고 수요가 TV에서 OTT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IT조선 2025년에도 방송광고 매출 감소세가 이어졌고, 모바일 광고 시장은 성장하는 반면 방송광고 매출은 연평균 두 자릿수 감소했다는 보도도 있다. Daum 뉴스
이 환경에서 JTBC는 두 가지 베팅을 했다.
하나는 SLL 상장 베팅이었다.
다른 하나는 월드컵·올림픽 중계권 베팅이었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로 광고를 끌어오고, 지상파에 재판매해 투자비를 회수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TV 광고 시장 자체가 약해지고 재판매가 기대만큼 풀리지 않자, 이 베팅은 현금흐름을 더 압박했다.
그러면 이 사건은 이렇게도 읽힌다.
한국 방송사가 넷플릭스·유튜브가 바꿔놓은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다 과도하게 베팅했고, 실패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능력 없는 재벌 3세가 돈놀이하다 망했다.”
“중앙일보·JTBC가 양쪽 정치 진영에서 장사하다 버림받았다.”
“언론사가 주제도 모르고 드라마와 중계권에 돈을 태웠다.”
이 반응들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실제로 중앙그룹의 지배구조와 상장 베팅, 링펜싱 회생은 비판받을 지점이 많다. 그러나 그 비판이 전부가 되면 더 큰 구조가 사라진다.
국내 콘텐츠 플랫폼이 글로벌 플랫폼에 밀리는 장면이, 상속 자본의 자업자득이라는 감정으로만 소비되는 것이다.
거시 지표는 불황의 전조를 가리킨다
이건 두 기업의 우연이 아니다. 3년 연속 이자조차 못 갚는 한계기업 비중이 17.1%로 2010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대기업 한계기업 비중도 12.5%→13.7%로 동반 악화됐다. 법인 파산은 사상 처음 연 2,000건을 돌파(1~11월 2,037건)하며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건설과 석유화학도 마찬가지다. 건설은 저금리 때 우후죽순 실행된 브릿지론이 고금리·공사비 상승에 막혀 본PF로 전환되지 못하고 표류했고, 2026년 1~4월 부도 건설사가 약 150곳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급증했으며 폐업 건설사는 823곳으로 12년 만에 최대다. 석유화학은 중국 증설로 마진이 붕괴해, 정부가 NCC 생산능력의 18~25% 감축을 주도하고 있다.
이게 두 기업의 우연이 아님은 거시 지표가 확증한다. 3년 연속 이자조차 못 갚는 한계기업(좀비기업) 비중이 17.1%로 2010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 한계기업 비중도 12.5%→13.7%로 동반 악화되어 규모를 막론한 전방위적 부실이고, 3년 이상 한계 상태가 지속되는 비중이 36.5%→44.8%로 급증해 부실이 만성화·고착화되고 있다.
파산 통계는 더 직접적이다. 법인 파산이 사상 처음 연 2,000건을 돌파(1~11월 2,037건)하며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법인 파산 신청은 2021년 955건에서 3년 새 2배로 불어났고, 배경으로는 고물가·고금리에 더해 1,400원대로 고착된 환율이 지목된다. 게다가 한계기업의 누적은 건전한 기업에도 전염된다. 산업 내 한계기업 비중이 1%p 오르면 같은 산업 정상기업의 투자·고용 증가율이 0.14~0.18%p 하락하는 ‘혼잡효과’가 작동해, 부실이 추가 부도를 부르는 악순환 위험이 있다.
건설과 석유화학 - 같은 불황의 두 얼굴
위기는 유통(홈플러스)·미디어(JTBC)에 그치지 않고 건설·석유화학 같은 기간산업에도 터지지 않았을 뿐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석유화학에서는 롯데케미칼이 2조 원대 EOD(기한이익상실) 위기에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하며 그룹 유동성 위기로 번졌고, 단기 위기는 넘겼지만 최근 주요 계열사에서 연쇄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건설에서는 신동아건설이 어음 60억 원을 못 막고 회생을 신청했고, 태영건설이 3조 원대 PF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건설업의 병인은 수요(국내 부동산) 붕괴 + 고금리 PF로, 시장이 무질서한 도산으로 청산하고 있다. 뿌리는 저금리 때 우후죽순 실행된 브릿지론이 고금리·공사비 상승에 막혀 본PF로 전환되지 못하고 표류한 것이다. 2026년 1~4월 부도 건설사가 약 150곳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급증했고, 폐업 건설사는 823곳으로 12년 만에 최대다. 위기가 부실 중소사를 넘어 대형사로 올라와, 5대 건설사 직원이 1년 새 2천여 명 감소했고 롯데건설이 기본급 최대 30개월치 위로금을 걸고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정부 처방은 ‘수요 떠받치기’로, CR리츠(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로 미분양을 매입해 건설사 현금흐름과 금융권 PF를 동시에 푸는 연착륙을 모색한다.
또한 석유화학도 저금리 기조에 증설을 공격적으로 했으나,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감산·통폐합하고 있다. 2020~2024년 세계 에틸렌 증설 4,500만 톤 중 2,500만 톤이 중국에서 나왔고, 그 결과 국내 석화사 합산 영업손실이 2024년 1.1조 → 2025년 1.5조 원으로 확대됐다. 정부가 NCC 생산능력의 18~25%(연 270만~370만 톤)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고, 대산에서 롯데케미칼이 110만 톤 NCC를 멈추고 HD현대케미칼과 통합, 여수에서 여천NCC가 2·3공장을 폐쇄하고 롯데·한화·DL이 3분의 1씩 공동 지배하는 통합법인을 세운다. 기업활력법으로 상환유예·신규자금·세제·R&D를 묶은 지원 패키지를 주되, “희생(감산)이 있어야 지원이 있다”는 조건을 못 박았다.
이 그림을 한 장으로 줄이면 이렇게 된다. 지금 한국 경제는 반도체라는 단 하나의 기둥이 지붕(고용·소비·세수) 전체를 떠받치고 있다. 유통·미디어·건설·석유화학 같은 근간 산업들은 글로벌 경쟁과 고금리에 금이 가 부러지는 중이고, 그 무게를 받쳐야 할 바닥 - 자영업과 중소기업 - 은 이미 꺼져 텅 비었다. 더 공격적으로 빚 내 키운 기둥일수록 먼저 부러진다는 것이 그 붕괴의 순서다.
그런데 왜 우리는 ‘꼬시다’고 말하는가
여기까지는 차가운 경제 분석이다. 그런데 이 사태를 보는 대중의 정서에는, 분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 가지 아이러니가 있다.
홈플러스와 JTBC는 업종이 다르지만, 둘 다 미국식 플랫폼 자본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측면이 있다. 홈플러스는 오프라인 대형마트의 무거운 고정비를 안고 쿠팡의 물류·멤버십 구조와 싸워야 했다. 실제로 대형마트 3사가 유통업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17.9%에서 2026년 4월 7.9%로 6년 만에 절반 아래로 떨어져 역대 최저를 찍었다. JTBC와 SLL은 방송 광고가 유튜브로 옮겨가고, 콘텐츠 제작비가 넷플릭스식 글로벌 경쟁으로 폭등하는 환경에서 버텨야 했다. 글로벌 OTT가 제작비 전액에 마진을 얹어주는 대신 IP(지식재산권)를 가져가는 ‘Cost-Plus’ 방식이 한국 제작사의 자산 축적을 갉아먹는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 이건 “한국 기업이 글로벌 플랫폼에 밀리는 장면”으로도 읽을 수 있다. 과거 같으면 어느 정도 산업적 위기감이 생겼을 것이다. 우리 유통이 밀린다, 우리 방송과 콘텐츠 생태계가 흔들린다, 하고. 그런데 지금 대중의 정서는 전혀 다르다. 홈플러스가 무너지면 “MBK가 등쳐먹다 터진 것”으로 읽히고, JTBC가 무너지면 “능력 없는 재벌 3세가 무리하다 망한 것”으로 읽힌다. 사람들은 이들을 더 이상 ‘우리 편’으로 보지 않는다. 한국 기업이 외국 자본에 맞서다 진 것이 아니라, 사모펀드와 상속 자본이 자기들끼리 돈놀이하다 실패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안타까워하기보다 통쾌해한다.
결국 상속을 얼마나 받았느냐의 차이다
이 ‘꼬시다’는 정서를 단순한 시기심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 바닥에는 한국 자본의 더 깊은 정당성 위기가 있다.
과거 창업 1세대에게는 “맨손으로 일군 사람”이라는 서사가 있었다. 정주영도 이병철도 공장을 짓고, 직원을 먹이고, 수출을 하고, 때로 무리한 도전을 하다 휘청여도 사회는 어느 정도 응원했다. 그들의 성공이 개인의 탐욕만이 아니라 국가의 성장과 한 줄로 연결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도전하다 무너지는 창업자에게는 비난보다 응원이 먼저 갔다.
하지만 지금의 상속 자본은 다르게 보인다. 많은 사람에게 그것은 도전의 결과가 아니라 출발선의 차이로 읽힌다. 그리고 이 감각에는 통계적 근거가 있다. 세계 400대 부호 중 자수성가가 약 65%인 반면, 한국에서 글로벌 상위 부호에 오른 인물은 대부분 상속자다. 중국은 같은 순위권 부호의 절대다수가 창업가이고, 일본·미국의 최상위 부호도 자수성가가 주류다. 유독 한국만 부의 정점이 상속으로 채워져 있다.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그룹의 지분을 받고, 누군가는 평생 노동해도 집 한 채가 버겁다. 노동시장 안에서도 안정된 봉급계급과 불안정한 노동계급으로 계급이 갈라진 지 오래다. 그러니 “오늘 우리 사이의 차이는 결국 얼마나 상속받았느냐의 차이”라는 냉소가 자라난다. 그 냉소 속에서 상속 자본이 실패하면, 사람들은 ‘같이 지켜야 할 산업’보다 ‘특권층의 몰락’을 먼저 본다.
문제는 그 분노가 정당하더라도, 그것이 향하는 방향이다. 능력 없는 3세도, 등쳐먹는 사모펀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 비판이 ‘꼴 좋다’는 조롱으로만 분출되고 끝나면, 정작 그 몰락의 칼날이 누구 위로 떨어지는지를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감정은 위험하다 - 외국 플랫폼은 우리가 서로 미워하는 사이에 이긴다
여기서 균형이 필요하다. MBK의 홈플러스 경영을 비판해야 한다. 중앙그룹의 SLL 풋옵션과 링펜싱 회생도 비판해야 한다. 상속 자본과 무책임한 지배구조도 비판해야 한다. 하지만 그 비판이 국내 산업의 붕괴를 통쾌함으로만 소비하게 만들면, 우리는 더 큰 패배를 못 본다.
쿠팡과 넷플릭스·유튜브는 단순히 좋은 서비스를 만든 기업이 아니다. 이들은 자본시장, 데이터, 플랫폼, 물류, 광고, 구독, 알고리즘을 결합한 새로운 산업 권력이다. 국내 기업이 이들과 싸우려면 장기 투자, 인내자본, 신뢰받는 지배구조, 대중적 정당성이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국내 자본은 그중 마지막 하나를 잃었다.
대중적 정당성.
사람들이 “저 회사가 무너지면 우리도 손해”라고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잘됐다”라고 느낀다. 그러면 위기 때 사회적 방어선은 생기지 않는다. 정책적 지원도, 소비자 충성도도, 장기 투자에 대한 인내도 생기지 않는다. 외국 플랫폼은 우리가 그들을 좋아해서만 이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국내 자본을 더 이상 믿지 않기 때문에 이긴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내 일은 아니겠지” - 침묵이 부르는 대가
여기서 떠오르는 역사적 오마주가 있다. 마르틴 니묄러의 유명한 고백이다. 독일 사회가 각 집단의 탄압을 “내 일이 아니다”라고 넘기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을 위해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구조다. USHMM
나치가 독일을 장악할 때, 많은 사람은 “내 일은 아니겠지” 하며 침묵했다. 처음 그들이 공산주의자를 잡아갈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다음엔 노동조합을, 다음엔 유대인을 잡아갔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그것을 남의 일로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함께 항의해 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홈플러스와 JTBC 사태를 나치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사건의 성격도, 폭력의 수준도 전혀 다르다. 그러나 구조적 교훈은 닮아 있다. 내가 싫어하는 집단이 무너질 때 박수 치는 사회는, 결국 자기 차례가 왔을 때 함께 막아줄 이웃을 잃는다. 그리고 이번 디레버리징의 칼날은 결코 재벌 3세와 사모펀드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칼날은 이미 홈플러스에서 일자리를 잃은 5천 명에게, 1년 새 2천 명이 줄어든 5대 건설사 직원에게, 그리고 다음 사이클에 차입에 의존하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으로 차례차례 옮겨간다.
물론 홈플러스와 JTBC를 나치 독일의 폭력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비교 대상은 사건의 크기나 도덕적 무게가 아니다. 오마주는 구조에 있다.
“사모펀드니까 내 일이 아니다.”
“재벌 3세니까 내 일이 아니다.”
“언론사니까 내 일이 아니다.”
“대형마트니까 내 일이 아니다.”
“방송사니까 내 일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각자 싫어하는 집단의 몰락에 박수치다 보면, 마지막에는 내가 속한 산업이 무너질 때도 아무도 남지 않는다.
제조업이 무너질 때 플랫폼 노동자는 웃고,
플랫폼 노동이 무너질 때 정규직은 웃고,
대기업이 무너질 때 중소기업은 웃고,
중소기업이 무너질 때 공무원은 웃고,
공무원의 안정성이 무너질 때는 이미 모두가 각자도생에 익숙해져 있다.
이미 노동자라는 단일한 이름이 깨져버린 자리에서는, 누구의 몰락도 끝내 남의 일로만 보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제조업과 플랫폼 노동이 같은 ‘우리’로 묶이지 않으니, 함께 막아설 전선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진짜 위험이다. 사회가 더 이상 함께 손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외부 충격은 각 산업을 하나씩 떼어내며 들어온다. 우리는 매번 “내가 싫어하던 집단이 당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다 자기 차례가 오면, 이미 같이 막아줄 사람이 없다.
답은 재벌 편들기가 아니다
오해하면 안 된다. 이 글은 MBK를 옹호하려는 글도 아니고, 중앙그룹 오너를 감싸려는 글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국내 자본이 대중적 정당성을 잃은 이유를 직시해야 한다는 글이다.
사모펀드가 회사를 사서 자산을 팔고, 고용을 줄이고, 회생절차로 손실을 사회화한다면 대중은 당연히 분노한다. 재벌 3세가 상속받은 지배력을 바탕으로 과도한 베팅을 하고, 실패하면 채권자와 노동자와 투자자가 손실을 떠안는다면 대중은 당연히 조롱한다. 언론사가 정치적 신뢰보다 시장 점유율을 좇아 양쪽 진영을 오가다가 위기 때 아무 진영에도 보호받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자업자득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한국 사회가 해야 할 질문은 “망해서 꼬신가”가 아니다. 어떻게 해야 국내 자본이 다시 응원받을 수 있는가. 그 질문으로 가야 한다.
답은 단순하다. 그러나 실행은 어렵다. 상속받은 자본은 더 높은 책임을 져야 한다. 사모펀드는 엑시트 이전에 산업과 고용에 남긴 장기 비용을 설명해야 한다. 언론사는 정치적 편의가 아니라 신뢰를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
대기업은 위기 때 지원을 요구하려면 평시의 지배구조와 이익 배분에서 정당성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 외국 플랫폼과 싸울 때 “국내 기업이니까 도와달라”는 말이 힘을 얻는다. 그 정당성 없이 애국심만 호출하면, 대중은 더 차갑게 반응한다.
홈플러스와 JTBC는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인다. 하나는 유통이고, 하나는 미디어다. 하나는 사모펀드 문제이고, 하나는 재벌 3세와 콘텐츠 베팅 문제다. 하지만 둘은 같은 질문으로 합쳐진다.
한국 기업이 외국 플랫폼과 싸우다 밀릴 때, 사람들은 왜 그것을 우리의 손실로 느끼지 않는가. 답은 불편하다.
국내 자본이 더 이상 “우리”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창업 1세대의 도전 서사는 사라졌고, 상속 자본과 사모펀드의 회수 서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서 실패는 모험의 실패가 아니라 특권의 실패로 읽힌다. 그 틈으로 미국계 플랫폼과 미국식 자본시장이 들어온다. 쿠팡은 더 편한 유통 경험을 주고, 넷플릭스와 유튜브는 더 강한 콘텐츠·광고 플랫폼을 제공한다. 소비자는 그들을 선택한다. 국내 자본은 “애국”을 말하지만, 대중은 “너희가 언제 우리 편이었나”라고 되묻는다.
이건 비단 산업계만의 일이 아니다. 지금 북중미 월드컵에서 남아공에 0-1로 지며 32강 자력 진출을 놓친 홍명보호, 그리고 그 감독을 선임 절차 논란까지 무릅쓰고 끝까지 밀어붙인 대한축구협회에 쏟아지는 비난도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우리 대표팀”이라는 말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패배를 안타까워하기보다, 자격 없는 자들이 자리를 차지한 결과로 읽는다. 성적이 아니라 축구협회의 지배구조 자체가 만든 실패라는 진단도, 결국 기업과 똑같은 정당성의 문제를 가리킨다.
같은 분열은 경제의 표면 곳곳에 드러난다. 거리에는 수입차가 넘쳐나고,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순이익의 30%, 약 3조 원을 성과급으로 달라”며 파업을 가결했다. 반면 반도체 기업만 사상 최대 실적의 초호황을 누리며 산업과 산업, 계층과 계층 사이의 격차를 새로 벌린다. 누구는 순이익의 3분의 1을 나눠 갖자고 깃발을 들고, 누구는 그 회사의 주가 근처에도 못 가는 - 새로운 빈부격차, 대분열의 시대에 우리는 이미 들어섰다.
당신도 재벌 3세가 아닐 뿐, 세계를 무대로 똑같이 경쟁하는 같은 사람이다. 부모 세대가 겪은 삶의 고통을 모른 채 자리를 물려받은 명분 없는 상속자들과, 본질에서 그리 멀지 않다. 다만 과거 우리 부모 세대는 서로를 최소한 같은 편으로 여겼다. 남의 실패를 고소해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빨리, 누구보다 근면하고 희생적으로 살았다. 그러나 부가 대를 이어 상속되면서 상대적 격차에서 오는 불만이 쌓였고, “애초에 같은 출발선에 서지 못했다”는 감각이 사회의 신뢰와 공정 경쟁을 함께 갉아먹고 있다.
그래서 시기심을 막는 길은, 시기하지 말라고 설교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시기심이 자라지 않을 출발선을 다시 긋는 것이다. 상속으로 만들어진 신흥 귀족과, 그 바깥에 밀려난 이들이 같은 규칙 위에서 실력으로 겨룰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결국 노동개혁의 문제다. 깨져버린 노동자라는 이름을 다시 묶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제조업과 플랫폼 노동 사이의 칸막이를 낮추고, 상속된 지분이 아니라 일한 만큼의 몫이 정당하게 분배되는 제도를 쌓아야 한다.
공정과 신뢰는 구호가 아니라 설계다. 누구의 자녀로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느냐로 경쟁하는 사회를 제도로 만들어 낼 때, 비로소 “꼬시다”는 냉소도 멈춘다. 그때서야 국내 자본은 다시 “우리 편”이라 불릴 자격을 얻고, 우리는 외국 플랫폼과 맞설 단 하나의 진짜 방어선 - 서로를 같은 편으로 여기는 공동체 - 을 되찾는다.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문화다.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이미 습관적 실패에 익숙해져 있고, 부모들은 너무 나이 들어 버렸으며, 아이들은 설계되지 않은 고통 속에서 무기력해지고 있다. 고통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의미 있게 설계되어야 할 것이고, 실패는 한 번으로 끝나는 사형선고가 아니라 다시 일어설 에너지로 바뀔 수 있어야 한다. 공정한 출발선을 다시 긋고 포기하지 않는 한 시험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결국 다음 세대가 무너지지 않게 받쳐 줄 마지막 토대를 다시 쌓는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 공정과 신뢰를 다시 세우는 네 가지
방향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정과 신뢰는 구호가 아니라 설계라고 했으니, 무엇을 어떻게 설계할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다행히 같은 문제와 먼저 싸운 나라들이 있고, 그들의 결정적 사례가 답의 윤곽을 보여준다. 핵심 원리는 하나다. 강자에게 규칙을 먼저 적용하고, 약자에게 길을 연다.
1. 손실의 사회화를 끊는다 - 토이저러스가 보여준 것
지금 가장 큰 불신의 원천은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다. 홈플러스가 한국판이라면, 미국 토이저러스는 그 원형이다. 2005년 베인캐피털·KKR·보나도가 66억 달러에 차입인수하며 회사에 50억 달러 부채를 떠넘겼고, 멀쩡하던 회사는 연 4억 달러 이자에 짓눌리다 2017년 파산했다. 그 결과 3만 3천 명이 일자리를 잃고 사모펀드 출자자들도 투자금을 전액 날렸지만, 정작 인수자들은 보유 기간 수수료와 이자로 4억 6,400만 달러를 챙겼다. 직원들이 약속받았다는 7,500만 달러 퇴직금은 끝내 2,000만 달러짜리 구제기금으로 쪼그라들었고, 채권자들은 임원들이 “실제 서비스도 없이 매분기 거액 수수료를 빼갔다”며 소송을 냈다.
교훈은 분명하다. 제도가 없으면 손실의 사회화는 기본값이고, 토이저러스 직원들은 조직적 저항과 의회 조사가 있고서야 일부라도 돌려받았다. 그러니 차입인수 이후의 과도한 배당과 세일앤리스백에 제동을 걸고, 회생 단계에서는 자산을 빼간 쪽의 책임을 먼저 물어 고용·연금·하청 변제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빼간 쪽에서 걷어, 떠안은 쪽에 돌려주는 것이다.
2. 상속 자본에 ‘책임’을 묶는다 - 삼성 합병과 발렌베리의 거리
세습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견제 없는 세습이 문제다. 두 사례가 그 차이를 정확히 보여준다.
한쪽 끝에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있다. 합병비율은 제일모직 1주에 삼성물산 0.35주. 당시 이재용은 제일모직 지분 23.23%를 갖고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으니, 제일모직 가치를 띄울수록 승계 지배력이 커지는 구조였다. 그 비용은 국민연금이 8년 누적 2,451억 원 손실로, 그리고 외국 주주들의 국제중재로 정부가 메이슨에 746억 원을 세금으로 배상하며 떠안았다. 승계의 청구서를 일반주주·국민연금·납세자가 나눠 낸 셈이다.
다른 쪽 끝에 스웨덴 발렌베리가 있다. 이들도 세습한다. 재단이 지분 23.3%로 의결권 50.2%를 쥐는 차등의결권 구조다. 그런데도 정당성을 인정받는 이유는, 단기 이익보다 장기 육성을 앞세우는 경영, 고용·교육·R&D로 이어지는 사회환원, 그리고 노동조합의 경영 참가와 투명성·외부 견제가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계는 발렌베리를 승계 옹호의 근거로 쓰지 말라고 못 박는다. 이 사례는 “지배가 용인되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가”의 사례이지, 세습 그 자체를 정당화하는 사례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은 순환출자로 견제 없이 지배하고, 발렌베리는 책임·투명성·견제를 대가로 지배한다. 처방은 세습 금지가 아니라, 상속된 지배력에 검증과 책임과 투명성을 묶는 것이다. 능력 검증을 우회하는 통로부터 좁혀야 한다.
3. 패자부활을 제도화한다 - 시기심의 진짜 해독제
사람들이 남의 실패를 고소해하는 건, 나의 실패는 한 번이면 끝이라는 공포의 거울상이다. 숫자 하나가 이를 압축한다. 한국 벤처 창업가의 평균 실패 경험은 1.3회로, 미국·중국의 2.8회의 절반에 못 미친다. 한 번 망하면 법인 평균 4.7억, 개인 평균 2.3억의 채무를 대표 개인이 연대보증으로 떠안고 신용불량 낙인으로 재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2018년 공공기관 연대보증 폐지는 실패를 자산으로 바꾸려는 시도였지만, 보증기관의 소송 남발과 민간금융에 남은 연대보증이라는 한계도 함께 드러났다. 미국 파산제도(Chapter 11)가 처벌이 아니라 재출발의 발판이라는 철학 위에 서 있는 것과 대비된다.
처방은 연대보증 폐지를 민간금융까지 확대하고, 부정적 신용 정보의 낙인을 걷어내는 것이다. 실패가 사형선고가 아닐 때, 비로소 타인의 실패를 응원으로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4. 규칙은 단순하게, 책임은 무겁게 - 복잡한 규제가 강자를 보호한다
마지막은 앞의 셋을 작동시키는 방식의 문제다. 지금 한국 규제의 병은 “무엇을 달성하라”가 아니라 “이 서식을 이렇게 채우라”를 강요하는 데 있다. 그런데 복잡한 세칙은 규율하려던 강자에게는 빠져나갈 지도가 되고, 보호하려던 약자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된다. 1,000페이지짜리 규정은 대기업 법무팀에게는 허점의 목록이지만 신참에게는 진입장벽이다. 게다가 세칙에 안 적힌 새 편법은 합법이 되니, 규제는 늘 한발 늦고 자본은 늘 한발 앞선다. SLL 풋옵션도, 세일앤리스백도, 장부 밖 SPV도 모두 “세칙엔 안 걸리는” 설계였다. 서류는 완벽한데 실질은 약탈인 상황, 이것이 대중이 “규칙 밖에서 부를 만든다”고 느끼는 바로 그 지점이다.
그렇다고 세칙을 모호한 원칙으로 바꾸기만 하면 역효과다. 해석의 여지는 결국 힘 있는 자가 가장 잘 활용하고, 집행이 독립적·유능하지 않으면 원칙 중심 규제는 자의적 규제로 변질된다. 그래서 답은 규칙이냐 원칙이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무게중심을 사전에서 사후로 옮기는 것이다. 진입은 금지선만 굵게 긋는 네거티브·원칙 중심으로 단순하게 풀어 신참에게 길을 열되, 위반은 서식이 아니라 실질로 판단하는 실질 우선 원칙과 포괄주의로 무겁고 확실하게 묻는다. 단, 이것이 작동하려면 독립적이고 유능한 집행과 판례의 축적이 전제다. 원칙은 사건이 쌓여 예측 가능해질 때만 공정해진다.
한 줄로 줄이면 - 규칙은 단순하게, 책임은 무겁게, 집행은 독립적으로. 복잡성이라는 강자의 방패를 걷어내야, 강자를 규율하는 일과 신참에게 길을 여는 일이 동시에 가능해진다.
이 네 가지의 공통점은 하나다. 강자에게 먼저 규칙을 적용하고, 그것을 반복해서 보이게 하는 것. 신뢰는 선언이 아니라 반복 게임의 산물이고, 사람들은 약속이 한 번 지켜지는 걸 본 뒤에야 다음을 믿는다. 이것이 쌓일 때 국내 자본은 애국심을 호출하지 않고도 다시 “우리 편”이라 불릴 자격을 얻고, 외국 플랫폼과 맞설 공동체적 방어선도 그제야 복원된다. 다음 전쟁은 자본의 국적이 아니라, 그 자본이 공정한 규칙 위에 서 있느냐에서 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