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는 왜 2천억 앞에서 멈췄나 -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위험을 떠안을 사람이 없어서다
홈플러스가 영업을 정상화하는 데 필요한 돈은 2천억 원이다. 대형마트 2위였던 회사가 고작 그 돈을 못 구해 파산으로 간다고들 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돈의 크기가 아니다. 살릴 종잣돈이 모자란 게 아니라, 그 돈을 댈 사람도 손실을 떠안을 사람도 없는 것이다. 대주주는 이미 회수를 끝냈고, 최대 채권자는 회사가 죽어도 안전하다. 그렇다면 이 회사가 무너질 때, 그 손실은 대체 누구 위로 떨어지는가.
홈플러스 회생절차 이후 공급 불안정으로 일부 선반이 비어 있는 매장 내부. 사진은 코리아타임스 보도에 실린 서울 동대문구 홈플러스 스페셜 매장 모습.
홈플러스 매장의 신선식품 냉장고가 빈 식품 용기로 채워지고, 과일 매대에 가위가 진열되는 풍경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다음 달부터는 일부 매장의 배송 서비스까지 끊긴다. 그리고 7월 3일, 법원이 회생계획안 가결 시한을 연장하지 않으면 회사는 파산으로 직행할 수 있다.
회사가 살아나는 데 필요하다고 밝힌 돈은 2천억 원. 대형 유통기업 규모에 비하면 결정적으로 큰 액수가 아니다. 그런데도 돈줄이 막혔다.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 메리츠금융이 서로 “네가 내라”며 책임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MBK는 “회사와 김병주 회장이 이미 4천억 원을 부담했으니 담보를 쥔 메리츠가 대출하라”고 하고, 메리츠는 “경영을 맡았던 대주주가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며 “추가 대출은 배임”이라고 맞선다.
겉으로 보면 두 거대 자본의 유치한 책임 떠넘기기다. 하지만 그 밑을 파보면, 이건 돈이 없어서 멈춘 사고가 아니라, 처음부터 누가 위험을 안 질지가 정해져 있던 구조가 드러난 사건이다. 그 구조를 이해하려면, 회사가 빚을 못 갚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부터 따라가야 한다.
1. 회사가 빚을 못 갚으면 - 세 갈래 길
회사가 빚을 못 갚는 ‘채무 불이행’ 상태가 되면 길은 셋으로 갈린다.
채무 불이행 이후의 로드맵. 협상으로 살리는 사적 정리(워크아웃), 법원이 개입해 살리는 회생절차(법정관리), 회사를 끝내는 파산. 홈플러스는 가운데 회생절차에서 ‘회생계획안 가결’이라는 관문에 걸려 멈춰 있다.
첫째는 사적 정리(워크아웃)다. 법원을 거치지 않고 채권단과 직접 협상해 만기를 미루고 이자를 깎아 살리는 길이다. 둘째는 회생절차(법정관리)다. 법원이 개입해 빚을 강제로 동결하고, 빚을 조정해 회사를 살린다. 셋째는 파산이다. 살릴 가망이 없다고 보고 회사를 끝낸 뒤, 남은 자산을 팔아 순위대로 나눠 갖는다.
세 길을 가르는 분기점은 하나다. “새 돈을 넣어 살릴 수 있는가.” 살릴 수 있으면 워크아웃이나 회생으로 가고, 가망이 없으면 파산으로 간다. 홈플러스는 지금 둘째 길, 회생절차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2. 워크아웃과 회생은 뭐가 다른가 - 강제력과 거래처
둘 다 “회사를 살려서 빚을 갚는다”는 결과가 같아 헷갈린다. 하지만 영업이 유지되는 ‘질’이 완전히 다르다.
첫 번째 차이는 강제력이다. 워크아웃은 합의한 채권자끼리만 효력이 있어서, 한 명이라도 “난 못 깎아준다”며 버티면 깨진다. 이 버티는 한 명을 막을 방법이 없다. 반면 회생은 법정 비율 이상이 찬성하면 반대한 채권자까지 법원이 강제로 묶는다. 워크아웃이 ‘전원 동의’를 요구한다면, 회생은 ‘다수결 + 법원 도장’으로 소수를 제압한다.
두 번째 차이가 실전에서 더 중요하다. 누구의 빚을 건드리느냐다. 워크아웃은 보통 은행 같은 금융권 빚만 조정하고, 거래처(납품업체)는 평소처럼 대금을 받는다. 그래서 공급이 끊기지 않고, 밖에서 보면 회사가 어려운 줄도 잘 모른다. 거의 정상 영업이 유지되는 것이다.
회생은 다르다. 모든 빚이 묶인다. 회생 전에 거래처가 받지 못한 외상까지 전부 동결된다. 그러면 거래처는 “우리 돈 떼이는 것 아니냐”며 납품을 거부하거나 현금 선결제를 요구한다. 홈플러스 진열장이 비어가는 게 바로 이것이다. 회생에 들어가면서 거래처 채권까지 묶이니, 납품업체가 물건을 대주지 않는 것이다. 만약 워크아웃이었다면 거래처는 건드리지 않았을 테니 공급이 유지됐을 것이다. 회생으로 ‘영업을 지속한다’는 말은, 실제로는 반쯤 마비된 채 버티는 영업에 가깝다.
3. 이 싸움의 진짜 무기 - 담보와 압류는 다르다
이 사태의 핵심을 이해하려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헷갈리는 두 단어를 구분해야 한다. 담보와 압류는 전혀 다르다.
압류는 빚을 못 받게 된 채권자가 사후에 법원의 힘을 빌려 채무자 재산을 묶는 것이다. 흔히 “먼저 압류한 사람이 임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회생이나 파산이 시작되면 그 전에 박아둔 압류는 효력을 잃는다. 먼저 압류한 사람도 그냥 다른 채권자들과 똑같이 줄을 서서 비율대로 나눠 받는다. 이건 법의 의도다. “먼저 압류한 놈이 이득”이라면 위기설만 돌아도 모두가 압류 경쟁에 뛰어들어 회사가 그 자리에서 찢겨 죽기 때문에, 법은 일부러 압류의 순서를 지워 그 경쟁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담보는 다르다. 돈을 빌려줄 때 미리 “못 갚으면 이 물건을 가져간다”고 약속해, 그 물건 자체에 붙여둔 권리다. 담보가 강한 이유는 네 가지가 겹친다. 미리 약속했고(위기 때 새치기가 아님), 물건에 붙어 있어 회사가 망해도 그 물건을 따라가 1순위로 가져가며, 등기로 공개돼 모두가 알고 거래했고, 판결 없이도 곧장 경매를 실행할 수 있다.
그래서 정답은 “먼저 압류한 사람이 이긴다”가 아니라 “미리 담보를 잡아둔 사람이 이긴다”이다. 압류는 담보 없는 사람이 쓰는 약한 무기일 뿐이고, 그마저도 파산·회생이 시작되기 전에 회수를 끝내야만 의미가 있다.
4. 그래서 메리츠가 칼자루를 쥔다 - 2.8조짜리 점포 신탁
이 구분을 알고 나면, 왜 메리츠가 그렇게 느긋하게 버틸 수 있는지가 단번에 보인다. 메리츠는 단순한 채권자가 아니라 압도적인 담보를 쥔 채권자다.
2024년 5월, 메리츠그룹(증권·화재·캐피탈)은 홈플러스에 약 1조 3천억 원을 부동산 담보로 대출했다. 그 대가로 대형마트 점포 62개를 담보로 잡았고, 회생이 진행되며 68개까지 늘었다. 삼일회계법인이 평가한 담보 신탁자산의 가치는 약 2조 8천억 원으로, 빌려준 원금(1.2조)의 두 배가 넘는다. MBK가 “현금화 가능한 알짜 자산은 메리츠가 다 잡았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게다가 그 방식이 단순 저당권이 아니라 부동산담보신탁이다. 점포를 아예 신탁회사 명의로 넘겨놓고 메리츠를 1순위 우선수익권자로 지정한 구조라, 다른 채권자가 그 부동산을 압류하려 해도 이미 홈플러스 소유가 아니라서 손을 댈 수 없다. 압류로부터 한 겹 더 차단된, 담보의 끝판왕 형태다. 여기에 표면 8%에 추가 수익을 더해 실질 연 11.5~14%의 이자를 받았고, 이미 원리금으로 약 2,500억 원을 회수했다.
그런데 결정적 반전이 있다. 회생절차에서는 담보권자도 경매를 할 수 없다. 파산에서는 담보권자가 ‘별제권자’로서 담보물을 따로 팔아 1순위로 회수할 수 있지만, 회생에서는 ‘회생담보권자’로 묶여 담보권 실행이 금지된다. 회사를 살리려면 담보물도 못 건드리게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홈플러스가 회생을 신청한 순간, 메리츠의 경매 권리도 함께 동결됐다. 메리츠가 지금 경매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메리츠가 경매로 담보를 회수하는 길은 파산으로 가야 다시 열린다. 회생이 폐지되고 파산이 선고되면, 메리츠는 별제권자로 부활해 2.8조 담보를 1순위로 회수할 수 있다. 메리츠에게 파산은 두려운 결말이 아니라, 막혀 있던 담보 회수의 출구인 셈이다. 위험한 추가 대출 2천억을 넣어가며 회생을 살릴 동기가 약할 수밖에 없다.
5. 회생계획안은 누가, 어떻게 통과시키나
그렇다면 회생을 결정하는 ‘회생계획안’은 무엇이고 누가 통과시키는가. 여기에도 오해가 많다.
계획안을 쓰는 건 법원이 아니다. 관리인, 즉 사실상 회사(기존 경영진)가 직접 작성한다. “우리 빚을 이렇게 깎고 이렇게 갚겠다”는 안을 회사가 짜서 내는 것이다. 법원은 그걸 만드는 게 아니라 검증하고 최종 승인(인가)하는 심판이다.
그럼 왜 투표를 하나. 계획안의 내용이 결국 채권자의 돈을 깎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의 돈을 강제로 깎는 걸 법원이 혼자 정해 통보하면 그건 몰수다. 그래서 손해를 보는 당사자인 채권자들이 직접 “이 정도면 받아들이겠다”고 동의해야 하고, 그 동의 절차가 ‘가결’이다.
투표권은 머릿수가 아니라 빚의 액수에 비례한다. 받을 돈이 많을수록 표가 크다. 그리고 채권자를 성격별 ‘조’로 나눠 각 조가 따로 투표하고 모든 조에서 통과해야 가결된다. 담보권자 조는 금액의 3/4, 일반 채권자 조는 2/3, 주주 조는 1/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부채가 자산을 넘으면 주주는 투표권조차 없다).
여기서 사태의 법적 급소가 드러난다. 메리츠는 1조 3천억 규모의 담보권자라, 담보권자 조에서 금액의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그 조는 3/4이 찬성해야 통과하므로, 메리츠 혼자서 그 조를 부결시킬 수 있다. 거래처 수천 곳이 다 찬성해도, 메리츠가 반대하면 가결이 안 된다. “메리츠가 안 따라오면 회생이 멈춘다”는 건 감정이 아니라, 법적으로 메리츠가 거부권을 쥐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한 조가 반대해도 법원이 강제로 인가하는 ‘강제인가’라는 길이 있다. 하지만 그건 반대한 조에 “최소한 청산했을 때 받을 만큼(청산가치)은 보장”해야 가능하다. 메리츠의 청산가치는 2.8조 담보를 1순위로 회수하는 것이라 이미 매우 높다. 그만큼을 보장할 돈이 있으면 애초에 회생이 막힐 일도 없으니, 담보가 탄탄한 채권자는 강제로 깎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담보가 강하다는 사실이 여기서 또 작동한다.
정작 홈플러스의 수정 회생계획안 자체는 나쁘지 않다. 대형마트를 126개에서 67개 핵심 점포로 줄이고, 익스프레스 사업을 매각하고, 인력을 절반으로 줄여 약 1조 2천억 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그 결과 핵심 점포는 상품 공급만 정상화되면 즉시 800억 원대 영업이익을, 3년 내 1,500억 원까지 낼 수 있고, 흑자와 폐점 부동산 매각 대금으로 빚을 전액 변제하겠다는 것이다. 청산이 아니라 살리는 계획이다.
그런데 이 계획의 고통분담은 메리츠에게 통하지 않는다. 회생의 고통분담은 순위대로 차등이라, 주주가 가장 크게(지분 소각), 무담보 채권자가 그다음으로 아프고, 담보권자는 청산가치가 보장되어 거의 아프지 않다. 홈플러스 안은 “전액 변제”를 표방하니 메리츠에게 요구하는 건 원금 삭감이 아니라 “흑자 날 때까지 몇 년 기다려달라”는 시간과 불확실성의 분담이다. 하지만 메리츠는 파산시키면 담보로 즉시·확실하게 받을 수 있으니, 그 기다림조차 손해라고 본다. “다 같이 고통을 나누자”는 회생의 명분이, 담보를 쥔 메리츠 앞에서 무너지는 것이다.
6. 그래서 이건 ‘돈’ 문제가 아니라 ‘위험을 누가 지느냐’ 문제다
여기까지 오면 처음의 질문에 답할 수 있다. 홈플러스를 멈춰 세운 건 2천억 원의 부족이 아니다. 손실을 떠안을 주인이 처음부터 사라지도록 설계된 구조다.
대주주 MBK부터 보자. MBK는 2015년 7조 2천억 원의 차입인수(LBO)로 홈플러스를 샀는데, 그중 약 5조가 회사 자산과 미래수익을 담보로 한 빚이었다. 회사 등에 빚을 업혀서 산 것이다. 이후 점포·물류센터를 팔고(누적 매각대금 약 4조), 세일앤리스백으로 부동산을 유동화하고, 배당으로 1조 이상을 빼가며 회사를 ‘빈 껍데기’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다만 “MBK가 투자금을 다 회수했다”는 단정은 정확하지 않다. 실제로 MBK가 회수한 건 투자 원금의 10% 미만이고, 자산 매각 대금 대부분은 인수 때 진 빚을 갚는 데 들어갔다는 반론도 강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돈에는 이름표가 없다는 점이다. 사모펀드(GP)는 운용보수를 펀드 운용 기간 내내 성과와 무관하게 챙긴다. 10년이면 이미 거둬들인 금액이고, 딜이 망해도 토해내지 않는다. 반면 자본 손실의 대부분은 GP가 아니라 출자자(LP)가 떠안는데, 홈플러스 펀드의 LP에는 국민연금이 있다. 즉 MBK 본체는 보수로 빠져나오고, 자본 위험은 국민 노후자금에 얹힌 구조다.
메리츠는 더 순수하다. 메리츠는 성장에 배팅하지도 않았다. 2.8조 담보를 깔고 연 14% 이자를 받는 구조라, 회사가 성장하든 망하든 안전하다. 위험 없는 수익 추출이다.
두 주체의 공통 DNA는 “성장에 배팅했다”가 아니라 “내 자리는 위험 없게 짜두고, 진짜 위험은 남에게 얹었다”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구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시나리오가 ‘성장’이었다. 홈플러스가 쿠팡을 이기고 흑자를 냈다면 모두가 무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은 오지 않았고, 미리 전가된 위험이 그대로 현실이 됐다. 설계자(MBK 본계정, 메리츠)는 멀쩡하고, 위험을 떠안은 쪽만 박살난다. 그 떠안은 쪽이 바로 - 담보도 없고 압류해도 무효가 되는 거래처 4천 곳, 이미 5천 명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그리고 국민연금이다.
7. 위험의 사전 전가가 사회의 불신을 만든다
이 사태가 남기는 진짜 교훈은 법률 지식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사람들이 홈플러스의 몰락을 안타까워하기보다 “꼴 좋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안다. 이 자본들은 처음부터 우리와 위험을 나눠 진 적이 없다. 그들은 남의 위험 위에서 보수와 이자라는 통행료를 걷는 자였지, 같은 배를 탄 동업자가 아니었다. 그러니 배가 가라앉을 때 “함께 막자”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공동운명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들통난 순간, 정당성은 사라진다.
이건 손실이 사후에 사회로 떠넘겨지는 ‘손실의 사회화’보다 한 단계 더 깊은 문제다. 손실의 사회화가 결과라면, 위험의 사전 전가는 설계다. 망하든 말든 나는 안 다치게, 위험은 처음부터 LP와 거래처와 근로자에게 얹어두는 것. 토이저러스를 인수해 수수료와 이자로 4.6억 달러를 챙기고 직원 3.3만 명을 해고한 미국 사모펀드도, 삼성 합병의 비용을 국민연금과 납세자가 떠안은 것도 모두 같은 문법이다. 이익은 내 본계정으로, 위험은 공적 계정으로.
그래서 답은 재벌이나 사모펀드를 편드는 것도, 단지 조롱하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위험을 자기 본계정에서 빼내 남에게 얹는 설계 그 자체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차입인수 이후의 과도한 배당과 세일앤리스백에 제한을 두고, 회생 단계에서는 자산을 빼간 쪽의 책임을 먼저 물어 고용·하청·연금 변제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 빼간 쪽에서 걷어, 떠안은 쪽에 돌려주는 것이다.
홈플러스가 무너질 때 박수를 치고 나면, 그다음 디레버리징의 칼날은 거래처와 노동자, 그리고 차입에 의존하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으로 차례차례 옮겨간다. 내가 싫어하는 자본이 무너질 때 통쾌해하는 사회는, 정작 그 칼날이 내 차례에 왔을 때 함께 막아줄 이웃을 잃는다. 이 구조가 왜 ‘꼬시다’는 냉소로 끝나면 안 되는지, 그리고 국내 자본이 어떻게 다시 ‘우리 편’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지는 별도의 글에서 더 깊이 다뤘다.
8. 사실 홈플러스는 살릴 수 없다 - 청산조차 깔끔한 정답이 아닌 이유
여기서 가장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돈 2천억을 누가 내느냐를 따지기 전에, 그 돈을 넣어도 홈플러스는 살아나지 못한다.
홈플러스의 패배는 경영 실수가 아니라 구조적이다. 대형마트 3사의 유통업 매출 비중은 2020년 17.9%에서 2026년 7.9%로 6년 만에 반토막 났다. 뉴욕 자본과 물류망을 든 쿠팡, 검색과 커머스를 결합한 네이버에게 진 것이지, 자금 한 번 수혈해서 뒤집을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토이저러스가 LBO 빚 이전에 이미 아마존과 모바일 게임에게 시장을 빼앗겼듯, 홈플러스도 대형마트라는 업태 자체가 저물고 있다. 그러니 “67개 점포로 흑자를 내 빚을 전액 갚겠다”는 회생안은, 흑자 전환과 부동산 매각이라는 희박한 가정에 기댄 명분 포장에 가깝다. 냉정히 보면 청산이 현실적인 결말이다.
문제는 그 청산조차 깔끔한 정의가 아니라는 데 있다. 청산하면 메리츠는 2.8조 담보를 1순위로 회수해 무위험 고수익을 확정받고, 그 이면에서 국민연금은 손실을 떠안는다. 자본을 가진 쪽은 ‘확정 수익’을 가져가고, 국민은 ‘변동성(손실)’을 떠안는다. 부의 집중을 가속하는 바로 그 엔진이, 청산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럼 자산은 어디로 갈까. 입지 좋은 홈플러스 점포는 다크스토어·물류 거점으로 가치가 높아, 청산되면 쿠팡이나 네이버가 인수해 물류센터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자본 효율만 보면 죽어가는 마트보다 생산적인 재배치다. 그러나 그 효율에는 두 가지 청구서가 따라붙는다. 첫째, 마트 2만 명의 일자리는 자동화된 물류센터에서 훨씬 적은 인원으로 대체된다 - 자본은 효율적으로 재배치되지만 노동은 버려진다. 둘째, 그 자산이 쿠팡·네이버로 흘러가면 국내 유통이 플랫폼 자본에 자리를 내주는 흐름이 완성된다. 효율의 승리가 곧 약자의 패배이자 플랫폼 독점의 완성인 셈이다.
9. 그래서 법원과 정치는 각각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사태에는 두 종류의 책무가 있다. 하나는 법원의 몫이고, 하나는 정치의 몫이다. 그리고 둘을 혼동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법원이 할 수 있는 것부터. 법원은 적어도 이 구조를 명확히 지적하고,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MBK와 메리츠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분담을 물어야 한다. 위기 직전에 빼간 배당이나 편파적으로 챙긴 자산을 부인권으로 환수하고, 경영진의 선관주의의무 위반을 따지는 것이다. 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메리츠의 담보는 적법하게 계약된 것이라, 법원이 사후에 그걸 깎으면 담보금융 시스템 전체가 흔들린다. 부당하되 불법은 아닌 것을, 법원은 되돌릴 수 없다.
토이저러스가 그 한계의 증거다. 채권자들이 전 경영진을 선관주의의무 위반·사기로 고소했을 때, 법원은 8개 청구 중 7개를 각하하지 않고 진행시켰다. 책임을 물을 여지는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핵심인 DIP 융자는 “공정·합리적”이라 인정해 대출자를 면책했고, 소송은 결국 2022년 비공개 합의로 덮였다. 공급업체는 1달러당 22센트, 노동자는 퇴직금 0원에서 압박 끝에 받아낸 2천만 달러 기금이 전부였다. 법원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다해도, 이미 벌어진 약탈은 깔끔하게 정리될 뿐 되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진짜 답은 법원(사후)이 아니라 정치(사전)에 있다.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은 셋이다.
첫째, 이 구조에서 소외된 이들 - 거래처, 노동자, 국민연금 - 을 대변하고 지키는 것. 담보를 쥔 자본은 스스로를 지키지만, 흩어진 약자에게는 대변자가 없다.
둘째, 재발을 막는 제도를 세우는 것. 차입인수 후의 과도한 배당과 세일앤리스백을 제한하고, “위험 프리미엄(고금리)은 받으면서 위험은 초과담보로 없애는” 이중 취득 대출을 규제하고, 국민연금 같은 출자자(LP)를 보호하고, 회생·파산 단계에서 고용·하청·연금 변제를 앞순위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셋째, 가장 근본적으로 - 흩어진 약자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결속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담보 가진 자본은 계약 한 줄로 1순위를 확보하지만, 거래처와 노동자는 흩어져 있어 함께 막아설 전선조차 만들지 못한다. 그들이 연대할 권리를 제도로 보장하지 않으면, 위험은 언제나 가장 약하고 가장 흩어진 쪽으로 흘러간다.
7월 3일,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 단기 연장이든 파산이든 - 홈플러스는 끝내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이야기의 끝이어선 안 된다. 법원은 이미 벌어진 일을 정리할 뿐이고, 위험을 가장 약한 자에게 떠넘기는 설계 자체를 막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그 설계를 사전에 끊고, 약자가 결속할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한 - 다음 홈플러스는, 반드시 또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