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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조직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 무사와 조총의 교훈

나가시노 합전도 병풍

※ 1575년 나가시노. 왼쪽 목책 뒤에 조총병이 늘어서 있고, 오른쪽에서 일본 최강 기병대가 달려온다. 이 그림 한 장으로 AI 시대와 조직이 가야 할 길을 살펴본다.

1장.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던지는 질문

일본이 통일된 게 언제인가. 그리고 실제로 일본을 통일한 것은 사무라이인가.

세키가하라 합전도 병풍

※ 1600년 세키가하라. 이 그림에서 칼을 들고 일대일로 싸우는 사람을 찾아보라. 거의 없다. 대부분 창과 총을 든 집단이 대형으로 움직인다. 전국시대의 끝은 사무라이의 승리가 아니라 사무라이가 아닌 자들의 승리였다.

대중 전력화의 본질

사무라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유년기부터 20년이 걸린다. 장궁수는 10년이다. 아르케부스, 즉 화승총은 몇 주면 된다.

사무라이 20년 대 조총 몇 주

※ 왼쪽은 20년, 오른쪽은 몇 주다. 그런데 진짜 차이는 육성 기간이 아니라 그 아래 줄에 있다.

여기서 바뀐 것은 위력이 아니라 훈련비용이다. 축적된 개인 역량의 프리미엄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장을 한 겹 더 들어가면 진짜 변화가 보인다.

구분사무라이 체제조총 체제
역량 획득유년기부터 20년교범 몇 주
역량이 저장된 곳개인의 신체편성·보급·교범
그 사람이 죽으면역량 소멸조직에 잔존
승부 요인개인 무예조달·진형·타이밍
지배층무예를 가진 자편성하고 조달하는 자

★ 대중 전력화의 본질은 “다수화”가 아니다. 역량의 저장 위치가 사람에서 시스템으로 옮겨간 것이다.

사람이 죽어도 조직이 남는다. 이것이 개인 무예 체제를 이긴 진짜 이유다.

걸린 시간

전래 1543년, 세키가하라 1600년. 57년이다.

57년 타임라인

  • 1543~1560, 확산기 17년. 사카이·구니토모에서 복제 생산 시작. 아직 승부를 가르는 무기는 아니다.
  • 1560~1575, 전술화 15년. 나가시노에서 조총 집중 운용이 기병 돌격을 무력화한다. 여기서 판이 뒤집힌다.
  • 1575~1590, 재편 15년. 병농분리와 도수령으로 무력이 국가에 회수되고 통일된다.
  • 1592 임진왜란

구니토모 철포 대장간

※ 확산기 17년 동안 일본에서 벌어진 일. 오미의 구니토모와 사카이에서 총을 복제해 찍어내기 시작한다. 표착한 두 자루가 수만 자루가 되는 구간이다. 지금으로 치면 모델이 공개되고 다들 파인튜닝하던 시기다.

도수령

※ 1588년 도수령. “농민이 칼이나 창을 가지는 것을 금지한다. 거둬들인 무기는 대불을 만드는 못으로 쓴다”는 명분이었다. 무기를 나눠주며 시작한 시대가, 무기를 회수하며 끝난다.

유럽은 같은 전환에 훨씬 오래 걸렸다. 낭시 전투(1477)에서 소켓 총검으로 창병이 사라지기까지 200년, 신분질서가 바뀌기까지 300년이다. 일본은 57년에 끝냈다.

왜 일본이 빨랐나

두 가지다. 첫째, 이미 아시가루 대량 동원 체제가 돌아가고 있어서 총을 끼워 넣을 자리가 준비돼 있었다. 새 대형을 발명할 필요 없이 창 든 농민에게 총을 쥐여주면 됐다. 둘째, 전국이 100년째 실전 중이라 검증 주기가 극단적으로 짧았다. 안 되는 방식은 그 해에 죽어서 도태됐다.

2장.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던지는 질문

이 57년의 타임라인에서 AI가 확산되는 지금은 어디쯤인가.

판단

오다 초기, 1560년대 중반으로 보인다. 앞 타임라인에서 화살표를 찍었던 그 자리다.

1575년 전국 세력도

근거는 셋이다.

무기는 이미 퍼졌다. 다들 갖고 있다. 그리고 공급선 장악 경쟁이 한창이다. 엔비디아, TSMC, 전력, 데이터센터. 사카이를 누가 먹느냐의 국면이다. 조총이 통일한 것은 일본 열도가 아니라 초석 무역로였다. 총은 복제되지만 화약 보급선은 복제되지 않는다. 지금 초석에 해당하는 것은 첨단 노드 반도체와 전력과 자본이다.

아직 나가시노가 없다. 새 방식이 옛 방식을 명백히 압도한 결정적 사례, 누가 봐도 “저건 이제 안 된다”가 확인된 사건이 아직 안 나왔다. 그래서 다케다들이 여전히 기병을 몰고 있고, 그게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병농분리가 안 됐다. 조직들이 아직 옛 편성 그대로 새 무기를 들고 있다. 사무라이 조직에 조총만 지급한 상태고, 편성 자체를 다시 짠 곳은 거의 없다. 어느 조직이든 마주할 수 있는 문제다.

이 국면의 특징

당시엔 아무도 자기가 전환기 한복판에 있는 줄 몰랐다. 1565년에 오다는 그냥 오와리의 중견 다이묘였고, 최강자는 다케다 신겐이었다. 판이 기울었다는 것은 나가시노 이후에나 보였다.

다케다 신겐

※ 1565년 시점의 정답. 당대 누구에게 물어도 “다음 천하인은 신겐”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그때까지의 데이터로는 완벽하게 옳았다. 10년 뒤에 틀렸을 뿐이다.

★ 그리고 57년 중 실제 승부가 난 구간은 1560~1575의 15년이었다. 지금 그 15년의 초입이라면, 남은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3장. 조총의 20초

던지는 질문

조총은 강력한 무기다. 그런데 완전한 무기인가. 약점이 무엇인가.

재장전 공백

화승총은 한 발 쏘고 나면 재장전에 20~30초가 걸린다. 그 사이 사수는 무방비다. 기병이 그 공백을 노리고 돌격하면 총병은 그대로 쓸린다. 그래서 초기 총병은 혼자 서 있을 수 없었고 장창병 뒤에 숨어야 했다.

▶ 영상 화승총 사격 순서 실연 - 영상을 보며 재장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보자. 그 공백의 길이가 이 장의 논지 전부다.

지금 AI 도구가 정확히 이 상태다.

한 발의 위력은 강하다. 몇 시간 걸리던 초안이 몇 분에 나온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맞는지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줄지 않았다. 생산 비용은 90% 떨어졌는데 검증 비용은 그대로다.

조준경이 거짓말을 한다

여기에 조총보다 더 나쁜 조건이 하나 붙는다.

탄착점 피드백 비교

※ 총은 빗나가면 빗나간 게 보인다. 그래서 다음 발을 고칠 수 있다. AI 산출물은 빗나간 자리에 구멍이 안 뚫린다.

소총 사수는 자기 탄착점을 볼 수 있었다. AI 산출물은 그럴듯하게 틀린다. 사거리는 늘었는데 조준경이 거짓말을 하는 상태다. 검증 체계가 사거리 증가를 못 따라가면 산개는 그냥 통제 상실이 된다.

예전에도 남의 문서를 복붙해 오는 사람은 있었다. 다만 그때는 티가 났다. 지금은 표면 완성도가 높아서 티가 안 난다. 그게 진짜 차이다.

목이 무한정 생산되면

사무라이 시대의 전공 산정 단위는 목(首)이었다. 벤 목을 들고 가서 대장에게 확인받는다. 목 하나 베는 데 목숨을 걸었으니 판정 요청이 드물었다.

지금은 목이 무한정 생산된다. 그래서 대장 앞에 시체가 쌓인다.

AI를 돌려서 계속 상급자에게 검토만 요청하는 것은 엄호 없이 사격만 하는 병사와 같다. 화력은 늘었는데 전선은 안 밀린다.

일제 사격

화력은 이만큼 늘었다. 문제는 이 연기가 걷힌 뒤에 전선이 실제로 밀렸는지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개인의 태만이 아니라 합리적 대응이다. 생산 비용은 0에 가깝고 검증 비용은 상급자(혹은 고객이나 다른 부서)가 부담하니, 던지는 쪽에겐 던지는 게 언제나 이득이다. 구조가 그렇게 설계돼 있으면 사람은 그렇게 행동한다.

방치하면 반드시 악화된다. 그리고 더 나쁜 게 있다. 판정을 계속 밖에 맡기면 판단 능력 자체가 자라지 않는다.

4장. 나가시노 해부

던지는 질문

1575년 나가시노에서 일본 최강 기병대가 전멸한다. 조총이 세서 이긴 것인가.

나가시노 합전도 병풍 전도

무슨 일이 있었나

다케다 가쓰요리는 아버지 신겐이 평생 갈고닦은 최강 기병대를 갖고 있었다. 그 돌격으로 계속 이겨왔다.

오다는 정면으로 붙지 않았다. 강 건너 완만한 오르막에 목책(마방책)을 길게 세우고 그 뒤에 조총병을 배치했다. 기병은 강을 건너느라 속도가 죽고, 오르막에서 또 죽고, 목책 앞에서 완전히 멈춘다. 멈춘 기병은 그냥 표적이다. 다케다 정예 무장들이 그 앞에서 차례로 죽고, 가문은 재기하지 못한다.

핵심은 셋이다.

조총이 세서 이긴 게 아니다. 기병이 멈추도록 지형을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 이겼다. 목책이 없었으면 재장전 20초 사이에 기병이 도달한다.

승부는 전투 전에 났다. 어디서 싸울지 고르고 며칠에 걸쳐 진지를 만든 시점에 결정됐다.

다케다도 조총을 갖고 있었다. 몰라서 진 게 아니다. 자기가 가진 최강 자산을 버릴 수 없어서 그 자산이 무력화되는 지형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세 요소의 대응

요소나가시노일반적인 개발 조직
기병대검증된 최강 자산, 버릴 수 없음소수 정예 시니어 의존 구조, 축적된 개인 판단
마방책적 강점을 멈춰 세움, 사전 구축검증 장치 (테스트·계측·인수조건)
지형강+오르막, 기병 속도를 무력화판정 가능한 영역 (회계·규정·데이터 정합성)
패인무지가 아님. 과거 승리 경험어제까지 맞았던 근거로 오늘 결정

마방책의 성질

시타라가하라 마방책 복원

※ 현재 시타라가하라에 복원된 마방책. 사진으로 보면 그냥 나무 울타리다. 화려하지도 않고 무기라고 부르기도 뭣하다. 그런데 이 울타리가 일본 최강 기병대를 소멸시켰다.

마방책은 공격 무기가 아니다. 적을 죽이지도 않는다. 적의 최강 자산이 도달하지 못하게 멈춰 세울 뿐이다. 그런데 멈춘 순간 조총의 20초 공백이 사라지고, 그때부터 화력이 일방적으로 작동한다.

안개 속 마방책

※ 다른 각도. 이 길이가 약 2km였다. 며칠 동안 병사들이 목재를 지고 와서 박았다. 아무도 이 작업으로 전공을 인정받지 못했다.

병풍 속 목책

※ 병풍에서 목책 부분만 본 것. 목책 뒤 총병들은 자세가 편안하다. 앉아서 장전하는 사람도 있다. 20초의 공백을 목책이 대신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 목책은 판단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못 지나가게 할 뿐이다.

이게 결정적이다. 테스트도 판단하지 않는다. 통과냐 실패냐만 낸다. 판단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방책의 핵심 성질이다.

그래서 “AI가 만든 것을 다른 AI에게 리뷰시키자”는 답이 아니다. 판정 주체가 사람이든 다른 LLM이든, 읽어서 판단하는 구조인 한 같은 병목이다. LLM 리뷰는 검토를 대신하는 게 아니라 검토 대상을 하나 더 만드는 쪽에 가깝다. 그럴듯하게 통과시키면 아무도 못 잡는다.

그리고 방책은 싸우기 전에 미리 세워야 한다. 다케다가 도착한 다음에 목책을 짜기 시작하면 의미가 없다. 구현이 끝난 다음 검증 기준을 논의하는 조직은 이미 진 것이다.

지형이란 무엇인가

판정 가능한가 아닌가의 문제다.

좋은 지형은 맞고 틀림이 확정되는 일이다. 회계 계산, 규정 준수, 데이터 정합성, API 동작. 답이 하나라서 방책이 서고, AI가 틀리면 바로 걸린다.

나쁜 지형은 판정이 흐린 일이다. UX, 디자인, 카피, 우선순위 판단. 틀렸다고 증명할 수단이 없어서 방책을 못 세운다. 여기서 물량으로 밀면 그럴듯한 오답이 그대로 통과한다.

지형 선택이란 AI를 어디에 투입할지 고르는 일이다. 판정되는 곳에 물량을 붓고, 안 되는 곳은 사람이 소수로 붙는다.

다케다는 어리석었나

다케다 가쓰요리

※ 다케다 가쓰요리. 이 사람은 무능하지 않았다. 나가시노 직전까지 아버지도 못 뺏은 성을 뺏으며 영토를 최대로 넓히고 있었다. 성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돌격했다.

목책이 보였고, 가신단이 강하게 반대했다. 그런데도 돌격했다. 이유가 있었다.

  • 퇴로가 좋지 않았다. 등을 보이고 물러나면 추격당한다.
  • 정보가 틀렸다. 오다는 깃발과 진지를 숨겨 병력을 감췄다.
  • 과거 데이터가 돌격을 지지했다. 2년 전 미카타가하라에서 총을 가진 도쿠가와군을 정면으로 깨부순 실증이 있었다.
  • 정치적 압박. 신겐의 후계자로서 정통성이 약했고, 물러나면 가신단 통제가 흔들린다.

★ 어리석음이 아니라 합리적 판단이 겹겹이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었던 경우다. 그리고 이게 훨씬 무섭다. 멍청해서 지는 건 드물다. 대개는 어제까지 맞았던 근거로 오늘 결정해서 진다.

여기서 자문할 것

각자의 조직에서 기병대의 자리에 놓일 것이 무엇인가. 답은 조직마다 다르고, 대개 자기 조직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그 자리에 있다. 버리기 아까운 게 아니라 버릴 생각조차 안 해본 것.

5장. 무엇이 코드리뷰를 대체하는가

비개발 인원을 위한 배경

코드리뷰는 개발자가 짠 코드를 다른 개발자가 한 줄씩 읽으며 확인하는 절차다. 지난 10여 년간 개발 문화의 표준이었다. 기획으로 치면 선배가 후배 기획서를 빨간펜으로 봐주는 것에 해당한다.

던지는 질문

사무라이 시대에 코드리뷰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이었나. 그리고 그것은 왜 확장되지 않았나.

도장의 사범

검술 도장의 지도

※ 도장.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본다. 이 구조에서 사범의 처리량은 사범 한 명분을 절대 넘지 못한다.

사무라이 시대의 검증은 도장의 사범이다. 스승이 제자의 검을 옆에서 보고 손목 각도를 고친다. 일대일이고, 검사자 본인이 그 기술의 최고 숙련자여야 성립한다.

코드리뷰가 정확히 이 구조다. 더 잘 쓰는 사람이 덜 쓰는 사람의 결과물을 한 줄씩 봐준다. 그래서 검사 능력이 검사자의 개인 역량에 묶여 있고, 확장이 안 된다. 사범 한 명이 볼 수 있는 제자 수는 정해져 있다.

소수의 최종 검토자에게 의존하는 조직에서는 이 병목이 드러나기 쉽다.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마지막 확인자라서 AI의 도움을 받기 어렵고, 그 사람에게 시켰다가는 그 자리가 병목이 된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상태다.

조총 체제는 그것을 셋으로 쪼갠다

검술 전서

※ 검술 전서. 사범이 없는 자리에서도 기술이 전달되게 하려는 시도다. 다만 검술은 이게 잘 안 됐다. 글로 적어도 몸이 따라오지 않는다. 조총은 됐다. 그 차이가 시대를 갈랐다.

교범. 장전 12동작이 문서로 고정된다. 누가 하든 같은 동작이 나오고, 검사는 “교범대로인가”만 보면 된다. 사범이 필요 없고 하사관이면 된다. → 코딩 컨벤션, 정적분석, 린터

삼단격 도해

※ 삼단격의 개념도. 1열이 쏘고 물러나면 2열이 쏘고, 그 사이 1열은 장전한다. 개인의 숙련도가 아니라 순번과 대형이 화력을 만든다. 실제로 이 대형이 나가시노에서 그대로 쓰였는지는 논쟁 중이지만, 개념 자체는 정확히 이 시기의 발명이다.

사격장. 실전 전에 표적에 쏴본다. 사람이 판단하지 않고 표적지가 판단한다. 결정적으로 이건 사람 수에 비례해 늘어나지 않는다. 표적 100개 놓는 비용은 사범 100명 구하는 비용과 비교가 안 된다. → 테스트, CI, 회귀검사

표적지

※ 표적지는 판단하지 않는다. 뚫렸는지 아닌지만 있다. 그리고 표적지는 사범과 달리 밤에도 일하고, 화내지 않고, 100장을 동시에 놓을 수 있다.

군수 검사. 총이 폭발하지 않는지, 화약 배합이 맞는지를 쏘기 전에 본다. 병사가 아니라 무기와 보급품을 검사하는 것이다. → 의존성·라이브러리·인프라 검증

검사 대상이 바뀐다

사범은 사람의 기량을 봤고, 조총 체계는 산출물과 장비를 본다. 행위 검사에서 효과 검사로 옮겨간 것이다.

그래서 검사자가 최고 숙련자일 필요가 없어지고, 인원이 열 배로 늘어도 검증 체계가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범이 없어진 게 아니다. 자리를 옮긴다. 교범을 쓰는 자, 사격장 규격을 정하는 자, 어느 표적을 쏘게 할지 정하는 자로. 개인을 지도하는 일에서 판정 기준을 설계하는 일로 이동한다.

새 이름

코드리뷰를 대체할 것의 이름을 붙이면 두 축이다.

  • 의도 리뷰(사전): 결과물을 검사하는 게 아니라 문제 정의와 접근 방식을 착수 전에 검토한다. 코드는 이제 싸니까, 틀린 방향으로 3일 쓴 코드를 리뷰해서 반려하는 건 낭비다. 30분짜리 설계 합의가 3일치 리뷰를 대체한다.
  • 계측 통과(사후): 사람이 코드를 읽는 대신 계측이 판단한다.

사람이 눈으로 보는 중간 단계는 없어진다.

※ 남는 영역은 있다. 계측이 못 잡는 것 - 도메인 정합성, 회계 처리가 실제 규정에 맞는지 - 은 여전히 사람이 본다. 다만 그건 코드리뷰가 아니라 도메인 검수고, 봐야 할 사람도 개발자가 아니다.

6장. 그래서 조직은 무엇을 바꾸는가

던지는 질문

전공 산정이 목(首) 단위였다가 부대 단위로 바뀌면 개인은 무엇으로 평가받는가.

전공 산정이 무너진다

조총병 전투는 누가 누구를 맞췄는지 아무도 모른다. 목을 세는 게 불가능해지니 부대 단위 성과로 옮겨간다. 누가 잘했는지가 아니라 어느 부대가 누구와 싸워 이겼는지로.

개발 조직도 같다. 커밋 수, 라인 수, 작업량 산정 - 전부 무의미해진다. 남는 건 그룹 단위 결과다. 이게 조직 입장에선 가장 아픈 부분이다. 잘하는 개인을 식별하던 기존 장치가 다 죽는다.

그리고 사무라이에게 그랬듯, 개인 무공이라는 개념의 소멸은 상급 숙련자에게 존재론적 위기다. 코드를 잘 짜서 존경받던 사람이 그 근거를 잃는다. 이 층을 어디로 옮길지가 실무보다 조직 운영의 난제다.

준비가 전투보다 길어진다

지금은 구현이 오래 걸리고 기획이 앞에 짧게 붙지만, 뒤집힌다. 구현이 짧아지면 승부는 어디서 싸울지 정하는 단계에서 난다. 축성처럼 - 문제 정의, 도메인 규칙 확정, 판정 기준 수립에 시간을 쏟고, 구현은 그 위에서 빠르게 끝난다.

그리고 전투는 길어지고 지루해진다. 격렬하게 짜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만들고 검증하고 되돌리는 반복이 업무의 대부분이 된다. 결정적 순간은 짧고 앞뒤가 길다. 이걸 지루하다고 느껴서 건너뛰면 그게 곧 패인이다.

진형이 실력을 대체한다

조총 진형

※ 목책과 총병의 배치. 개개인이 어디에 서느냐가 이미 결과를 결정하고 있다. 같은 병사라도 목책 앞에 세우면 죽고 목책 뒤에 세우면 이긴다.

도메인 지식이 깊은 영역에 붙은 사람은 AI로 10배를 내고, 낯선 영역에 붙은 사람은 그럴듯한 오답을 양산한다. 배치가 곧 성과가 된다.

직능은 유지하고 무게중심을 옮긴다

사무라이를 아시가루로 바꾸는 시도는 실패한다. 오다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무라이는 지휘와 편성으로 올렸고, 새 병종은 새로 뽑았다. 기존 인원의 직능을 바꾸려 하면 자존과 정체성이 걸려서 저항이 나온다.

직능줄어드는 것옮겨갈 것
기획화면정의서 작성 비중판정 기준 수립, 프로토타입 직접 제작
백엔드개별 API 구현도메인 규칙·정합성 계측 자산 소유
프론트화면 구현UX 판단, 컴포넌트 표준
기술 리더코드리뷰검증 장치 소유 (사범 → 교범 저자)

권한 개방은 사격 구역 지정이다

농민에게 조총을 쥐여준 게 성립한 이유는 셋이다. 표준 교범이 있었고, 사격할 구역이 지정됐고, 지휘 계통이 있었다. 총만 주고 알아서 쏘라고 한 게 아니다. 그냥 무기만 나눠주면 그건 잇키(농민 반란)지 군대가 아니고, 잇키는 초기엔 이겨도 결국 조직된 군대에 다 정리됐다.

대상(가상 예시)개방근거
공통 자료 열람O작업 맥락을 공유해 왕복 확인을 줄임
개인 작업 공간 수정O공식 반영 권한과 분리하면 관리 가능
공식 결과물 반영X검증되지 않은 변경이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막는 차단선
가상 데이터 실험O실제 정보 없이 구조와 관계를 검증
실제 서비스 데이터 변경X실제 이용자와 서비스에 직접적인 영향

원칙은 하나다. 되돌릴 수 있는 것(프로토타입, 검증용 화면, 단발성 조회 스크립트)은 열고, 되돌릴 수 없는 것(스키마 변경, 공용 모듈, 인증·권한, 배포 설정)은 닫는다.

아시가루는 목책을 짓지 않았다. 목책은 사무라이가 지형 보고 설계했고, 아시가루는 지정된 자리에서 쐈다. 구조를 만드는 일과 그 안을 채우는 일을 애초에 분리한 것이 편성의 핵심이었다.

선결 조건: 방책이 먼저다

권한을 열면 검토 시간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맞는 우려다. 그런데 이건 기획자에게 코드를 열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개발자끼리도 이미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개방은 이 문제를 드러낼 뿐 만들지 않는다.

7장. 히데요시는 병참에서 올라갔다

던지는 질문

테스트 자동화 업무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한 일이다

일부 조직에서 테스트 자동화는 남이 만든 것을 뒤에서 받쳐주는 일이고, 성과가 안 보이고, 잘해도 티가 안 난다. 아무도 병참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목을 베어야 전공이 되는 시대에 목책 세우는 일을 누가 하겠는가.

그런데 히데요시가 그 자리에서 올라갔다

아시가루 출신으로 무예 없이 관백까지 간 사람이다. 그의 전공은 전투가 아니라 축성, 수공, 병참, 협상이었다. 스노마타 하룻밤 성, 다카마쓰 수공, 주고쿠 대반전 - 전부 준비와 이동과 조직력의 성과다.

스노마타 일야성

※ 스노마타. 적진 코앞에 하룻밤 만에 성을 세웠다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자재를 미리 상류에서 조립해 강으로 흘려보내 조립만 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게 더 대단하다. 싸움이 아니라 공정 설계로 이겼다는 뜻이니까.

다카마쓰 성 수공

※ 다카마쓰 수공. 성을 공격하지 않고 둑을 쌓아 물을 채웠다. 성벽도 병사도 건드리지 않고, 성이 서 있는 지형 자체를 바꿔서 이겼다. 4장에서 말한 “지형을 미리 만든다”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 그리고 이 사람이 최종적으로 천하를 가진다. 검을 잘 써서가 아니라, 시대가 결정적 변수를 무예에서 조직력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남들이 안 하려던 일이었고, 새 시대가 그 일을 결정적 변수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가 최상위로 갔다.

일이 인기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그 일이 아직 승부를 가르지 않아서 인기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순서가 반대다

실질 권한. 검증 담당자가 만든 장치를 통과 못 하면 아무것도 배포되지 않는 구조. 검증을 책임지는 팀에게 그 권한을 준다.

이름과 정의. “테스트 자동화”라고 부르면 QA 보조로 읽히고, “검증 체계 소유”라고 하면 미래 지향적 일이 된다.

전환기 인물 유형

전환기 인물 4인

인물전략시사점
오다사카이 장악, 초석 수입로 확보무기가 아니라 공급선을 쥐었다
히데요시축성·수공·병참으로 상승인기 없던 자리가 결정적 자리가 됐다
다케다최강 자산 고수성공 경험이 전환을 막았다
이에야스무기 보편화 후 정치로 결착도구가 평준화되면 변수는 다른 데 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쪽에 서 있는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는 확실하다. 시대의 조류는 총으로 가고 있다. 지금도 검도는 있고 사무라이의 후예는 있다. 칼이 없어진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세는 이미 기울었고, 아직 증명되지 않았을 뿐이다.

어떤 회사가 시작부터 끝까지 새 방식으로 구성되어 이겼다는 상징적 사례가 아직 없다. 나가시노가 아직 안 나왔다.

이런 전환을 먼저 이뤄내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다만 지금 이 국면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는 기회다. 신대륙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게임을 하는 사람과 모르고 하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 이 글은 그 지도를 공유하려는 시도다.

나가시노 합전도 병풍

※ 마지막으로 첫 장면을 다시 본다. 이제 이 그림에서 목책과 그 뒤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대입시킬 수 있다면 이 글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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